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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집회설교

대만대사명교회 3강/ 하나님의 동역자

by 오용주목사 2018. 10. 30.

3/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신다면 우리의 중보기도가 왜 필요합니까? 그 주된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고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역자의 삶을 살펴보면 중보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잘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동역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이름을 아담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담이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이름을 사람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담을 창조하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보면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을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혹은 대표하여 이 땅을 다스릴 자로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아담을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동역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26-28). 심지어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부여해 주신, 이 땅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가 얼마나 최종적이었던지, 하나님이 아니라 아담이 그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수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그만큼 이 땅에서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보여줍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4:5-7). 원래 그 권세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것이었는데, 아담이 사탄에게 복종함으로써 그 권세를 사탄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말은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영어 NIV 성경은 이 단어를 "God's fallow workers(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2. 동역자의 삶의 의미

 

동역자라는 말은 동업자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말하는 동업자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동역자의 삶에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를 올바로 이해해야 성경이 말하는 동역자의 삶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역자의 삶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동참입니다.

 

1) 하나님의 주도권

동역자의 삶의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주도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모든 면에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성취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성경 전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도 그렇고, 가나안 정복을 보아도 그렇고, 사울을 구원하여 바울을 만드신 것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역사들은 인간이 계획해서 인간의 노력으로 이룬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2) 인간의 동참

만약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모든 일을 이루신다면,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신비이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동역자의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동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십니다.

 

3. 동역자의 삶과 중보기도

 

중보기도의 한 대표적인 예는 엘리야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기도에서 동역자의 삶의 성격과 그 중요성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주도권

우선 3년 동안 가뭄이 있은 후 지면에 비가 다시 내린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엘리야의 계획에서 나온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비를 내리신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도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지 않으면 어떠한 지정한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중보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엘리야의 경우,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지면에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았는데 엘리야가 삼년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까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심한 것을 보고 비를 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더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비는 결단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의중은 묻지도 않은 채, 혹은 그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채, 우리가 듯을 정해놓고(그것이 좋은 뜻이면 더욱 좋고), 열심히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뜻을 이루어주실 것이락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러한 기도의 본보기로 엘리야의 기도를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기도는 전혀 그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주도권이 필수입니다.

 

2) 인간의 동참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고 계획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이 뜻을 정해놓고 그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반면, 다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면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둘 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잘 모르는 처사입니다. 동역자의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동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동참이 만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엘리야의 경우에도 이 부분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지면에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순종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아합의 궁에 있던 850명의 이방신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였습니다. 사실 엘리야가 이방신을 섬기는 850명의 제사장들과 벌인 대결에서도 동역자의 삶을 명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 일은 엘리야의 배짱에서 나온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엘리야의 기도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왕상18:36). 그 일은 또한 엘리야의 동참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실제로 이방신의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단을 쌓아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앞서 가실 때 엘리야가 믿음으로 동참했고, 그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왕상 18:36-39). 이 놀라운 일은 동역자의 삶의 두 가지 요소인,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동참 중 어느 한 가지 요소만 없었더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결에서 이긴 엘리야는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을 처단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엘리야에게 지면에 비를 내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 18:41). 여기서 엘리야가 들은 큰 비의 소리는 엘리야만 들은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큰 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들은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그 때부터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 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왕상 18:42-45). 엘리야는 땅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그것은 그 당시 팔레스타인 여인들이 아이를 낳는 자세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엘리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실제로 손만한 작은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일곱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그것 또한 엘리야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정입니다만, 만약 엘리야가 지면에 비를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다가오는 큰 빗소리를 듣고도 실제로 손만한 작은 구름이 떠오르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다면 비가 왔을까요? 아마 비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비를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보내셨다고 말하는 야고보서를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5:17-18). 이것이 바로 인간의 동참의 중요성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중보기도의 성격과 중요성이 있습니다. 중보기도도 정확하게 동역자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에 있어서도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주도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펼쳐 가시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십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앞장에서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보기도에 있어서도 또 다른 핵심은 인간의 동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이실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엘리야처럼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뜻을 붙잡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고 큰 비를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중보기도의 중요성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셔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당연히 동역자의 삶을 잘 이해하면 이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에서도 이 부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회복시키실 것은 예레미야 때부터 약속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실 시기까지 말씀하셨습니다(29:10-11, 14, 25:11도 참조).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고 해서 그 때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자동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해야 할 바를 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29장과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에 대해서 약속하십니다(36:16-38).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같은 시대의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이루시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36:37). 특히 에스겔 36장은 하나님께서 그 당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신 장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6:21-23). 이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회복시키실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절인 37절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유업을 주시되,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중보기도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만큼 중보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가 하나님의 길에 서야 할 중요성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구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장만 하더라도 하나님은 10-11, 14절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약속하시면서, 그 사이 12-13절에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2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32:36-41). 보십시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때 그들 안에 하나님을 경외함을 주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시는 에스겔 36장도 이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36:24-28).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시면 우리의 행실과 상관없이 우리의 삶속에서 그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준비되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 차례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앞서 가셔야 합니다. 그 일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잘하고 또 아무리 잘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준비된다고 하나님의 부흥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하나님의 때에 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의 길에 서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본질 가운데 행하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위 구절은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회복시키실 때 그들에게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길에 서야 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길에 서는 것이 필수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본질 가운데 서는 것이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역자로서 일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중보기도자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들에게 주시는 큰 상급 중 하나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를 이루시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4. 한 달란트 받은 자

 

동역자의 삶과 관련해서 우리가 반드시 보아야 할 성경구절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우리는 이 구절을 잘 압니다. 우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장사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 결과 그 두 사람은 주인(예수님)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주인의 집에서 더욱 더 많은 것을 맡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받은 대로 섬긴 두 사람이 받은 상급은 똑같았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그러한 이해는 틀린 이해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사역은 그저 우리가 임의대호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되, 자기에게 주어진 온 삶으로 동참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로 동참하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로 동참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포도나무교회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되, 목회자인 내가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과 지체 중 한 사람이 온 사람으로 동참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의미합니까? 그 사람은 자기가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을 뿐 아니라,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고, 그를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아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무익한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능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분의 능력으로 그분의 모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은 전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 해당합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 점을 분명하게 보면,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