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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집회설교

서울예수촌교회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도다 (고후5;14)

by 오용주목사 2018. 10. 30.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도다

고후5:14

 

제가 성경을 보다 보면 참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하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여러분, 제가 왜 사도바울이 왜 부러운지 아세요?

크게 두 가지

1)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 후 그가 순교의 재물이 되었던 그 순간까지 뒤 돌아 서지 않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렸갔기 때문입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요즘 새 생명 예배에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도 소중하지만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끝까지 지속적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 중 오이코스모임시 구원(복음)에 대해 나누었음

그 자리에 아내를 따라 처음 오이코스에 참석한 새 신랑이 이 복음을 듣다가 갑자기 아내를 향하여 고맙다. 정말 고맙다고 고백함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주님을 끝까지 놓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지체들을 섬기는 것 귀합니다. 그러나 끝가지 지속적으로 섬기는 것은 더 귀합니다.

? 한 두 번은 섬길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섬기는 것은 많은 희생과 대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힘들고 믿음의 끈을 놓아 버리고

환경이 조그만 어려워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로 섬기다가 조금만 속상해도 못해먹겠다고 내려놓고

주님 찾아야지 했다가도 조금 바쁘면 포기해 버리고, 해도 안되더만.....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2) 사도바울의 또 하나 부러운 것이 있는데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무슨 말입니까?

사도바울은 그의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이 얼마나 확실한 믿음입니까.

 

, 이준철 성도,

, 최은숙 자매

이 두 분의 공통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삶을 살았던 사도바울의 삶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고후11:23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였다.

또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다.

여러 번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이러한 살 소망이 끊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그의 마지막 고백은 무엇인줄 아세요?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내가 달려가야 할 길도 끝냈으며, 믿음도 지켰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달려갈 길을 마쳤다.

믿음을 지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러한 삶이 가능할까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도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십자가 사랑에 대한 감격 때문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여러분 바울의 세상적 지위가, 신앙의 연수가, 성경적 지식이, 그의 경험이 그의 신앙의 걸음을 끝까지 달려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늘을 사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안에 요동치는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나로 하여금 살 소망이 끊어질 것 같은 환경 속에서도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였으며, 달려갈 길을 다 달리게 하였으며, 믿음을 지키게 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말합니다.

강권하다 헬 쉬네코가까이에서 강한 영향을 끼치다.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사랑은 멀리서 흐릿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 가까이에서 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 십자가의 사랑이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로 번역합니다.

바울이 살 소망이 끊어지는 것 같은 삶속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힘듦 속에서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감격이 바울의 내면을 휘어잡았기에 바울을 끝까지 달려가는 인생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언제 휘어잡았을까요?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여러분 바울에게 있어서 이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아직 바울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이 못된 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요?

그런데 그 다메섹 도상에 주님은 사울을 찾아와 주시고 사울을 만나 주시고, 사울을 변화시켜주신 겁니다.

그 사랑의 감격, 그 사랑이 바울을 휘어잡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는 언제 기록되었느냐?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주후 52-56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 휘몰아치는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때가 언제 인가? 대략 주후 33~34년경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다메섹 도상에서 휘몰아치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것이 이미 20년 전 이야기에요. 그런데 아직 그 사랑이 휘몰아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울을 바울 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을 어떤 시련 속에서도 신앙의 걸음을 포기하지 않고 승리케 한 원동력이 되더라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신앙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오늘 무엇이 여러분을 견디게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인정, 평가, 칭찬은 아닌가요?

만약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 가까이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위험합니다.

그 열심은, 그 약발은 얼마가지 못합니다. 곧 식어지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 담임목사님께서 왜 주일학교 교사나 섬기는 분들에게 왜 꼭 1부 예배를 드리라 한 줄 아세요.

교사들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분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휘어 잡힘을 당해야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는다. 여러분 뭐가 은혜 받는 건가요?

찡한 감동을 받아야,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이 은혜 받는 건가요?

은혜 받는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은혜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리더가, 섬기는 이들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요.

오늘 성도를 가운데 권위자에게 상처 받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다 사라지고, 퇴색되어서 그래요.

 

오늘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 줄 아세요? 상처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럼 왜 교회 안에서 이렇게 상처를 많이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에요. 주님의 사랑의 감격이 말라 버리고 퇴색되어서 그런 겁니다.

 

요즘 청소년들 대화를 들어보면 심각합니다.

십원 짜리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안되요.

여러분 여기서 우리의 자녀들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럼 왜 이들이 이렇게 욕을 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 내면의 상처가 욕으로 분출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상처의 주범이 누구냐?

그것이 바로 부모님들이라는 겁니다.

오늘 왜 자녀들이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줄 아세요.

왜 일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감격이 퇴색 되어서 그래요.

십자가의 사랑의 감격이 우리를 휘어 잡힘을 당해야 하는데 그 사랑이 다 사라져서 그래요.

 

오늘 무엇이 우리의 마음, 생각, 언어, 행동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 대학, 좋은 직장, 이 땅에서 인정받고, 잘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십자가의 사랑이 퇴색되지 않도록 발버둥 처야 합니다.

여러분 국은 내버려 두면 저절로 식는 것처럼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내버려두면 저절로 식는 거예요.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지속적으로 배우려고 몸부림을 처야 겨우 평균을 유지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바울과 같이 휘몰아치는 20년 전의 십자가의 감격이 퇴색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 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 그렇다면 어떻게 십자가의 사랑을 알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성경은 아담 이후의 모든 시간 속에서 모든 인간들의 시간과 계획이 단 한순간도 한 가지도 선한 것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싹 쓸어버리기로 함

그 안에 노아도 포함

 

그러나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은 멸망의 저주에서 건져짐

어떻게?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나 의 은혜로, 잘나서 구원해 준 것이 아님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예 호바 베네 헨 마짜 노 아흐

베네라는 단어는 눈이라는 뜻

마짜 -> 입었더라 -> 발견하다 획득한다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하면 노아는 여호와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하여 획득하였더라

 

5절을 보세요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이때 여호와의 눈에는 사람들의 악한 것만 보였음

 

그런데 8절에 여호와의 눈에는 뭐가 있었어요? 은혜가 있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죄악된 세상을 바라보시는데 분노의 한탄의 근심의 눈으로 바라보시는데 창세전에 택한 어떤 무리들을 뭐로 바라보시느냐하면 은혜로 바라봐 주시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은혜를 발견하고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그랬고 우리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나 의 은혜

그러나의 은혜를 받았으니

노아는 의인이요, 왼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음

의인이요, 왼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러나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러나의 은혜를 받았기에 의인이요, 왼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고, 또한 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러나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함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길 기도해야 함.

그러나 의 은혜를 절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3: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 이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어지면 어떤 삶을 사는가.

 

1)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됨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이 사회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회입니다.

남을 위해사는자가 병신 쪼다 취급받는 사회가 오늘의 사회 아닙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도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신앙생활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예배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

헌금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

헌신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

 

여러분! 우리가 늘 기도하면서 은혜를 부어 달라고 기도하는데 은혜 받아 뭐하려고 은혜 달라고 하세요?

다 내 자신, 내 가족, 내 교회 잘되게 해달라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은혜의 마지막 관문은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마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산다면 누가 그들을 위해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면 오늘의 말씀과 같이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이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어지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됨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 다른 게 아니에요.

주님이 사랑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이란?

 

1. 외적인 형태나 모양이 아님 (원숭이 하나님 형상이 아님)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심 예수님을 연구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 알 수 있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1.사람의 이성 즉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의미

도덕성을 가짐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고 선을 행할 때 기뻐하고 악을 행할 때 괴로움을 느낌

도덕적인 삶을 추구

사랑과 용서와 인내의 삶을 보여주기도 함.

이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나님의 형상임

타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음

그런데 타락한 인간의 그 하나님의 형상의 잔여물인 사랑, 인내, 용서를 자기를 위해서 씀

 

그런데 참 하나님의 형상이신 주님은 어떻게 사셨는가?

완전한 도덕과 사랑과 용서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셨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원수를 위한 것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

이 자리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자리임

 

2.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음

 

3. 자율성을 의미

자율성을 부여 받음

따라서 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함

인격이 나타남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굳이 그 단어를 쓰심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애초에 만드신 목적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광을 돌리는 그러한 삶을 살도록 지으심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의 삶을 드리게 됨

주님이 사랑한 것

주님의 몸인 교회, 교회사랑 ->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

 

주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심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어린 양? 신앙적으로 어린 지체 뿐 아니라, 아직 나이가 어린 자녀들도 포함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남편, 아내를 사랑할 까요? 안할까요?

 

 

3) 이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어지면 화목케 하는 삶을 살게 됨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삶을 살으셨던 예수님의 삶이 무엇이었나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한 삶이 아닌가요?

주님이 이 삶을 사셨다면 우리 또한 그 길을 따라 화목케 하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작은 수고와 몸부림을 통해서

만역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는 이 일이 될 수 있다면

만약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한 사람 가슴앓이를 하는 그 사람의 상한 마음을 치유해 주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이 일을 마다하지 않고 기쁨으로 행하는 종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구원의 감격 기쁨을 가지고 화목케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12 멈출 수 없는 사랑 주소서

229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