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고통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
왕상17:7-16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한데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시각,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보면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회의와 갈등이 많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도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입니다.
본문의 배경설명
왕상17: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사악한 왕중의 왕인 아합이 폭정을 휘두런 때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있는데 더디어 엘리야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악한 아합왕에게 전쟁을 선포함
모든 백성이 목말라 기다리던 영웅이 등장함
그러한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너무나 난감한 명령을 하심
왕상2-4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옴
17: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7: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17: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합에게 전쟁을 선포한 엘리야
모든 백성이 아합의 폭정에서 해방을 기대하는 상황인데
그러면 허풍 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어 지내는 엘리야를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참으로 귀한 사람입니다. 토하나 달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왕상17: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17: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17: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생명줄이 끊어진 것과 같음.
그런데 보세요.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그릿시냇가에 갔는데 물이 말랐다하면 이해가 되요. 그런데 처절하게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순종하여, 하나님을 믿고 그릿시냇가로 들어갔는데 시냇물이 말랐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겁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의 신음소리가 이거예요.
나름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가려고 애쓰는데
우리 가정에 시냇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또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이런 난감한 상황에 있는 엘리야에게 해법을 주시는데 너무 난감한 해법을 주시는 겁니다.
왕상17: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
1)그릿시냇가 ~ 시돈까지 거리가 너무 멈. 대략 400리길
아합에게 지명수배 내린 상황에서 400리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 아합에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
2)시돈으로 가면 안 되는 더 큰 이유는 그 땅은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친정 땅 - 한마디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임.
3)이방인의 땅에 가서 이방인 과부에게 빌어먹으라는 겁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 엘리야에게 떨어짐.
보세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다가 시냇물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달콤한 해법이 얼마나 많습니까? 눈 한번 질끈 감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이 땅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하나님은 그 어려운 상황에 빠진 주의 자녀들에게 인간의 관점에서 말도 안 되는 그런 일들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남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이 그릿시냇가를 마르게 하셨을까요?
왜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왜 말도 안 되는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실까요?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생각, 관점, 시각으로 점검하고 묵상하다 중요한 하나님의 시각 두 가지를 발견 합니다.
1.훈련의 측면 - 우리를 다루시기 위하여, 이것은 엘리야 자신을 위한 것임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사용하실 때 반드시, 다루심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 - 하나님은 모세를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불러 써시기 전에 무려 40년간 혹독한 광야의 다루심의 기간을 거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보면 모세는 이미 40세가 되기 전 모든 지도자의 자질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행7:21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역사학자 요셉퍼스는 모세는 궁중생활을 할 때 탁월한 지도력을 갖추었다고 함. 전쟁에 나가면 승리하는 용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모세가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겁니다.
다루심의 이유 -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우리는 자기자원, 자기목적, 자기방법을 따라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무엇을 다루시는 가? 타락한 본성, 자아, 자기중심적 삶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게서 무엇을 다루기를 원하시는 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루심에 있어서 두 가지를 보게 합니다.
첫째, 자신을 보게 합니다. (2절)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안에 선함이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2) 우리가 무능한 존재임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함을 알게 하십니다.
3) 우리의 관점에 편견이 있음을 보게 하십니다.
(갈릴리 바닷가 - 광풍)
나의 생각이 온전치 않음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으며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게 됩니다.
둘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3절)
1)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2) 말씀을 연구해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재적인 교제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2.다루심의 패턴
1)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기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허락하십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대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듣고자 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만 처방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3. 다루심의 결과
1) 겸손한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16-17절)교만하면 자기의 관점이 굳어지고 자기의 방법을 따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겸손하면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을 압니다.
2) 우리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십니다.
광야는 우리의 최종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나안입니다. 가나안의 특징은 안식인데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김으로 우리는 안식을 얻습니다. 여기에는 내 모든 미래를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며 상황과 상관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사람을 경외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환경에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반응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속사람이 강건케 되는 것입니다.
모세 40년
요셉 13년
다윗도 마찬 가지입니다.
진 에드워드가 쓴 세왕 이야기 다윗의 고통의 과정을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바깥에 있는 못된 사울왕을 들어서 다윗 내면에 있는 못된 사울의 성품을 죽이는 과정이었다.
두 번째 측면
섬김의 측면
왕상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 이제 과부를 만나서 생계를 위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하고 갔는데 엘리야의 상상하고는 전혀 다른 일이 펼처지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가서 하나님게서 시키시는 대로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기대하면서 부탁을 했더니 사르밧 과부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왕상17: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이 무슨 청청병력같은 이야기 입니까? 하나님은 분명 그 여자를 너를 먹여 살릴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먹여 살리기는 고사하고 자기들도 먹을 것이 없어 마지막 떡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진짜 난감했을 겁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하실 일이 있더라는 겁니다.
사르밧 과부를 섬기는 일이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말로 안되는 것 같은 것을 명령하실때가 있습니다.
뭐하려고요?
섬김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그 현장에, 그 장소에 보낸 것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시대 다른 사람을 향에 눈을 돌릴줄 아는 자리로 인도
너는 내 아들라
32세 이재왕 근무력증 , 무서운 병, 눈알빼고는 움직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
그대 하나님게서 만나주셨어요
결론: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옳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 때에 우리의 약함은 강함으로 바뀌고 우리의 상처와 아픔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옳으심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정직하게 하나님께 직면하며 하나님께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우리의 남은 인생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시리즈설교 > 다루심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04.하나님의 침묵 (대하7:13-14) (0) | 2018.10.29 |
---|---|
03.하나님의 다루심 (민14:22-24) (0) | 2018.10.29 |
02.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서 (히11:5-6) (0) | 2018.10.29 |
01.광야로 이끄신 하나님의 의도 (신8:1-3) (0) | 2016.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