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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다루심의 삶

04.하나님의 침묵 (대하7:13-14)

by 오용주목사 2018. 10. 29.

04.하나님의 침묵
대하7:13-14


지난 추석 전 한 성도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가장으로서 생활을 하지 못하고....

 

통화를 끊고 얼마나 마음이 무겁던지, 며칠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성도분과 통화 제가 고민 한 것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내일 아침이 오는 것이 걱정이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고민한 결과 두 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1)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안계시든지

2)아니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침묵하신다 는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의 여정 가운데 인도하신 것을 보면 안 계신다고 말할 수 없음.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침묵하신다는 것입니다.

 

대하7:13절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이런 일을 당할 때 내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침묵할 것이다 라고 수천 년 전에 말씀하심.

 

혹시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고

메뚜기가 온 땅을 황폐케 하고(가정이 황폐)

염병이 돌아 고통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몸의 질병)

이러한 상황인데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계시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1.다윗의 예

삼하16장은 다윗의 생애 가운데 가장 비참할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정권찬탈을 위해 아버지의 목에 비수를 겨누고, 백성들을 다 등을 돌리고 아들의 칼날을 피해 도망하는 비참한 일을 다윗이 겪게 됩니다.

 

이때 사울 가문의 사람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에게 돌을 던지고 조롱하고 저주합니다.

시므이 - 사울 왕가의 사람, 다윗 때문에 우리 왕가가 몰락 - 원한이 맺힘.

다윗이 힘이 있을 때, 표출되지 않고 잠복

다윗이 힘을 잃으니 표출됨.

 

삼하16: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16: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16: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이러한 상황, 환경에서 두 가지 반응

 

1)아비새의 반응

삼하16: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이는 이로, 칼은 칼로....세상적 가치관

 

2)다윗의 반응 - 시므이의 저주를 3가지 눈으로 봄

1)이러한 상황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에 일어나 상황인식

삼하16:10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심 - 하나님의 묵인

 

2)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삼하16: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3)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것이라는 믿음

삼하16: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삼하19:18 18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19:19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19: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2.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1대하7: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겸비, 기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함, 악한 길에서 떠나라는 이 4가지의 준엄한 말씀 앞에 어느 것 하나도 순종하는 것이 없음

 

1)스스로 겸비하는 것

상황 속에서 스스로 겸비함이 있어야합니다.

어떤 사람, 하나님 내게 이러시면 안되지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따지는 분들이 있음.

겸비함이란? 단순히 남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것이나 자신에 대해 늘 비하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에서 말하는 스스로 겸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동의하고, 그 말씀 앞에 엎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문제의 사람

설교하면 본인에게 적용해야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분

왜 설교를 수없이 들었는데 변화가 없느냐? 적용을 하는데 상대방에게 적용해서 거래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고 저렇고 잘 아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요.

 

막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하나님께서 비춰주시면 내가 그런자 라고 동의하는 거예요.

 

요즘 성도 말씀에 탐사 당하는 것을 싫어함

중요한 것 - 씨와 밭

 

 

 

2)기도하는 것

우리가 스스로 겸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에게 비쳐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선명하게 비쳐지고, 그 기준 앞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동의하고 엎드리는 것, 그것이 스스로 겸비함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서 비추신 그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도 한마디로 - 영적 회복을 추구하는 몸부림의 기도가 되어야 함

하나님께서 보이신 기준 가운데 서기 위해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부분을 말합니다.

 

3)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에게 임한 것은 우리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하시는 목적도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 가운데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면한 문제의 해결만을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금식하고, 철야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돌이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절대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회개는 절대로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무리 과거에 행한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서 회개했다 부분적으로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전존재로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돌이키지 않았으면, 어떠한 종류의 회개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해결책으로 제시하신 것은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들을 단순히 자기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할지라도, 단순히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구하여 나가면, 그것은 전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시대에는 심지어 제사장들도 그러한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반문했습니다(말 3:7). 오늘날도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세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찾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대하 15:12, 15, 34:31, 렘 29:13 등).

100으로 찾아야함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임하십니다. 아침이 되면 반드시 해가 뜨는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임하십니다(호 6:3).

 

 

4)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을 대체했던 모든 우상들을 철저하게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 우상들은 우리들이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물질주의, 돈을 사랑하고 중시하는 것, 형식적인 예배, 자기 자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의지하는 것, 전통적인 신앙, 신앙의 본질이 없는 성경 공부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삶에서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를 의지하기 신뢰하기보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모든 것,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구하기보다 화려하고도 감동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 모든 것, 소위 교회 성장을 위해 행했던 모든 그릇된 마음 자세와 행동,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보다 자기의 사람 만들려고 했던 것, 사람들을 대할 때 진정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로 끌어 들이려고 했던 모든 노력, 하나님께서 교회의 필요를 채워 주시도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기보다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정하여 헌금하게 하는 것,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직분을 남발한 것,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섬기도록 사람들을 세우기보다, 헌금하게 하고 일꾼을 세운 것,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일꾼을 분별하여 세우려고 힘쓰기보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는 것, 직분을 섬기는 직무로 이해하기보다 계급적인 신분으로 이해한 것, 하나님의 직분을 세상의 사업을 위해 이용한 것 등 이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버리고, 그러한 죄악들로부터 철저하게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는 이처럼 개인과 교회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포함합니다. 가치관, 삶의 목표와 목적과 형태, 사역에 대한 이해와 태도, 예배에 대한 이해와 자세와 형태 등 모든 면에서 인위적인 방법을 철저하게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으로 돌이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때로는 큰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스스로 겸비한 자,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기준을 발견하고, 그 기준에 비추어 본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는가를 깨닫고, 그 말씀 앞에 엎드린 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길로 돌아가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대가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치룰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개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네 가지 조건을 따라 회개할 때, 그는 회복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교회가 그렇게 회개할 때, 그 교회는 회복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는 공동체적인 회개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완전한 회개를 이루려면, 죄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우상을 허물어 부수는 것, 행동양식의 변화, 전통을 버리는 것, 재산과 물질을 파는 것, 잘못된 일에 대한 보상, 다른 사람들과의 화해 혹은 하나님이 용납한 사람들을 용납하는 일 등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부터 잘할께요.’라는 말로는 불충분합니다. 회개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구현되는 것입니다.”(『하나님과의 신선한 만남』, 165쪽)

 

요시야의 예

 

역대하 34장 33절에 의하면 요시야는 최종적으로 어떻게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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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의 그의 사는 날 동안 그 나라에 은혜를 베푸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