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하나님의 다루심
민14:22-24
어떤 분이 굉장히 급한 일이 있어서 과속을 했습니다. 100키로가 제한속도라면 130,140을 밟으면서 막 열심히 달려갔는데 가다가보니 저 앞에 무인단속카메라가 있는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속도를 줄였는데 카메라를 지나가는데 퍽하고 사진이 찍힌겁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내가 100이하로 내린 것 같은데 왜 찍혔나.. 이 사람이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갔어요. 그래가지고는 정말 속도를 규정 속도에 맞추어 지나가는데 또 퍽하고 찍히는 거예요. 이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우리 나라사람들은 삼세판 아닙니까?
두 번해도 찍히는 것을 보니 이상하다 생각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완전히 속도를 줄여서 누가 봐도 시비를 걸 수 없을 정도로 속도를 줄여서 지나갔는데 여전히 퍽 하고 찍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 생각에 저것은 고장 난 기계였네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하고 일을 보러 갔습니다.
며칠 뒤에 딱지가 석장이 날라 왔습니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하고 화가 나서 딱지를 뜯어봤더니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안전벨트미착용,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이렇게 참 많이 한다는 것 아십니까?
오늘 설교 제목이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 인데요, 오늘 많은 성도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언제 세우실려나, 언제 내 길을 여시려나, 언제 사역을 열어 가시려나, 언제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시려나.. 이러한 것에 관심이 많은 것 아세요?
이 운전자가 속도에만 신경을 썼지 안전벨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이 나를 언제 세우시는가 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르심과 세우심의 사이에 라는 제목으로 같이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 그의 저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서두에서 “하나님은 항상 당신 주위에서 일 하고 계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도로 찾으시는 일과 찾은 백성을 거룩한 신부로 단장시키는 일
이 일을 행하시는 방법? ->우리를 통하여 그 일을 행하심 => 이것을 동역자의 삶~
이 동역자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십니다.
따라서 우리를 부르심의 때가 있고 세우심의 때가 있습니다.
약속의 주실 때가 있고 그 약속을 이루실 때가 있습니다.
비전을 주실 때가 있고 그 비전을 이루실 때가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1)예수님을 믿게 부르심 (구원과 관련)
2)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부르심 (사역과 관련)
하나님의 세우심이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던 자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전환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보이실 때 믿음으로 순종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비전이 개인의 삶, 가정, 교회 가운데 실제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1.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지만 세우심의 자리까지 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부르시면 내일 당장 세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예) 아브람을 보면 창12:1, 2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큰 민족, 복의 근원을 약속합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세월이 흘렀는데 자식을 주시지 않음,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창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그 약속이 이루어진 때 -> 창22장에서 이삭 낳게 됨
아브람 -75세에 약속을 주셨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진 때 ->100세
무려 25년 이란 시간이 흐름.
궁극적 성취(갈3: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짐)
갈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예) 요셉 -> 창37:7-9(비전) ->형들에게 팔리움(17세) ->노예시장 ->보디발의 총무 ->감옥 ->창41:41(총리,30세) ->13년 정도
예) 다윗, 삼상16:13(왕의 기름부음을 받음)
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하2:3,4(헤브론에서 유다 왕, 7년6개월)
삼하2:3 또 자기와 함께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삼하2: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 해 여섯 달이더라
->삼하5:3(이스라엘의 왕 40년 치리) ->10-13년의 세월
삼하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5:4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실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 바울, 행9장(예수님 만남) ->행9:15(소명, 아나니아를 통하여) ->행26:16-18(그때 받은 비전을 말하면서 사42:7 예수님의 오심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의 연속선상에서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알아요) -> 행9:17(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 ->행11:19-26(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안디옥으로 부름) ->행13:1-2(안디옥교회에서 파송) -> 10년 이상
보세요,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는 시간이 있음.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 때 이 시간이 고려되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쉽게 좌절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이 없이 세워진 사람이 있어요 -> 사울 왕 ->망함(속성은 망함) 유혹, 시험, 자기중심적 삶으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2.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의 시간이 다루심의 기간입니다.
이 다루심의 기간은 매우 중요함
왜? 다루심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세우심을 받는 자리에 까지 가기도 하고(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바울) 부르심은 받았는데 세우심의 자리로 가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엘리, 사울)
다루심이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 중심적 신앙인으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 (우리의 인격도, 성품, 관계, 시간, 물질...)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부르심, 다루심, 세우심)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루심의 자리에 있음,
하나님이 나를 다루고 계심을 인식하면 감사하게 되어있어요.
모르면 꼭 이런 말이 나옵니다. 도대체 언제 나를 세울 거냐고....
지금 여러분의 무엇을 다루고 계신가?
06.01.03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시키겠다.
사람의 보기는 절망이나 하나님은 시작이다.
사람의 보기는 망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희망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길 축복합니다.
3.부르심은 받았는데 세우심의 자리에 가지 못한 이유
-> 한마디로 환경 보고 하나님을 불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다루심의 기간 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고 사시나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세요? 아니면 환경을 붙잡으세요?
여러분의 믿음은 환경에 근거 하나요?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근거 합니까?
많은 사람이 환경과 약속을 자꾸 비교해서 봅니다. 속히 안 이루어지니까 조급해요.
그때 자꾸 다른 생각이 들어오죠, 이것이 아닌가, 뭐가 잘못되었는가, 혹시 내가 헛다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자꾸 딴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오죠,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동의하니까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다루심의 기간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이것을 붙잡는 자리에 서야합니다.
이 말은 이 기간 동안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것이 관건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부르심은 받았지만 세우심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
보세요, 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약속한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약속임
(창15:13-14) - 약속이 성취되는 초청을 받게 됨.
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출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모세에게 말씀하심. “맹세한 땅” -> 반드시 이룸
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는 만20세 이상의 남자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둘뿐인것 아세요?
오늘 왜 이들은 못 들어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
민13장에는 여리고 정탐 사건이 나옵니다.
민14:22-24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 (불신)
22-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게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①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 (홍해, 마라, 16장 먹을 것 없는 환경, 17장, 므리바)
②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함
③하나님을 멸시함 -> 한마디로 하나님을 불신
그럼 왜 그들이 불신에 빠졌는가? 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가?
그들이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인 것을 몰랐음.
자기 나름대로 생각함, 몇 년 정도 따라왔으니 지금쯤 어떻게 되겠지.. 그러다 그 생각 되로 안 되면 낙심하게 됨.
우리의 생각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길이 보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게 됨.
우리가 부르심의 단계에서 세우심의 단계로 가는 과정에 다루심의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반대로 행하심, 그 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함. 하나님 지금 제게 무엇을 가르치기를 원합니까? 지금 상황에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래야 실족하지 않게 됩니다.
예)사울 왕
삼상13:13-14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망령되이 행함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서 사울은 망령되이 행함 ->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
예)엘리제사장
삼상2:30(엘리) 하나님을 경멸이 여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29절 -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다 ->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
29절-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하나님을 경멸, 멸시, 망령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 신뢰하지 않은 것 ->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
질문? 여러분은 하나님을 멸시한 적이 있으세요?
누가 여러분을 멸시했다면 그 자리에 다시는 가지 않고, 그 사람은 다시는 안 만날 거예요.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함(3개가 따로가 아니라 다 같이 나타남)
①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음
②위기의 순간 자기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자리로 감(인본주의)
③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함
하나님의 부르심과 세우심의 사이에게 다루심의 기간은 결코 쉽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음.
삼상13:11-12(사울 왕)
11-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시는 자리까지 갈 때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함(필수)
4.이 기간 동안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믿음에 의한 삶을 배우고 그 삶을 살아야함.
(히11:5-6) 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함.
어떻게 동행?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행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근본 뿌리? -> 믿음
그럼 이 믿음은 어떤 믿음? (6절)
①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을 믿는 것
②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우리가 이 믿음이 필요함.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말씀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그 하나님께 반응할 때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있음.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했을까요?
왜 엘리는 무명의 선지자나 사무엘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을까요?
왜 사울왕은 하나님 앞에서 망령되이 행하였을까요?
이런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놓쳐버림.
내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말씀을 들으니 놓쳐버림.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무슨 의도를 가지셨는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것을 통해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내게 무엇을 가르치기를 원하시는가?
이런 부분에서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해야 함.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놓치지 않고 그 기준 가운데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로 따라갈 수 있음. 그 말씀을 소홀히 여겨서는 절대 안 됨.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서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너무 중요함.
그런데 이것을 멸시해 버림.
왜? 말씀을 받고도 낙심하느냐?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가 없기 때문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시는 말씀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1.부르심과 세우심, 약속의 때와 성취의 때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함.
2.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의 시간이 다루심의 기간임
3.부르심은 받았는데 세우심의 자리에 가지 못한 이유
4.이 기간 동안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시리즈설교 > 다루심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고통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 (왕상17:7-16) (0) | 2018.10.29 |
---|---|
04.하나님의 침묵 (대하7:13-14) (0) | 2018.10.29 |
02.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에서 (히11:5-6) (0) | 2018.10.29 |
01.광야로 이끄신 하나님의 의도 (신8:1-3) (0) | 2016.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