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29. 01.광야로 이끄신 하나님의 의도
신8:1-3
우리는 5월 한 달 동안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적이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1)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가족으로 삼기 위해
2)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3)자연을 잘 관리하며 다스리게 하기 위해
4)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동역자의 삶을 살기위해
이 이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사랑의 교제) -> 다루시고(성품과 믿음) -> 세우시는 때(말씀에 온전히 순종)가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다루심의 기간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순종)하는 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잘 순종하는 편인가요? 안 하는 편인가요? 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가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한 가지는 우리는 순종=축복, 순종=문제해결, 순종=사업성공, 순종=건강, 순종=자녀 잘됨, 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순종해도 내가 원하고, 소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지더라는 겁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문제는 더 심각 해 지고, 더 어렵고 비참한 상황에 빠지더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창12장 - 아브라함 ->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심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갈대아 우르)
당시 갈대아 우르는 문명의 도시로 도서관, 에어컨, 수세식변소
이런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겁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 쉽지 않음
그런데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여 떠남
여러분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몇 날 며칠을 앞, 뒤를 제보고, 계산기 두드려보고, 아, 떠나도 손해 볼 것은 없고 안전하다 판단되니까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떠난 겁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에 이렇게 순종하고 떠 난 이브라함의 결과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환영받고,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잘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가 해결되고, 어려움이 물러가고, 힘든 환경이 축복의 환경으로 바뀌고.. 그런데 성경 창12;10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잘 되기는커녕 도리어 기근을 만나게 되었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출애굽을 하였는데 왜 광야를 만났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데 왜 광풍을 만났을까요? 선교사들이 왜 선교의 현장에서 죽임을 당할까요? 왜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개인이나 가정, 교회에 어려움이 찾아올까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오늘 성경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하여 40연 동안 광야 길을 걸었는데 누라 그렇게 하였는가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이 겪는 아픔이 있다면 여러분이 겪는 어떤 눈물 나는 어려움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일이라는 겁니다. 어쩌다보니 세상 속된말로 재수가 없어서, 내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고백 -> 하나님이 옳아요, 하나님이 옳아요, 하나님은 신실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왜? 그렇게 하셨는가?
1) 징계적 측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로 내 몰아져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서 그런 겁니다. 그들은 지금 징계를 받고 있는 거예요. 왜 징계를 받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으로 인해서....
그런데 징계 가운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는 사랑의 징계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징계의 목적은 우리로 돌이키게 하기 위합니다.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사실 여러분 아담의 범죄 이후 생겨난 것이 광야입니다. 에덴동산에는 광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이 암아 광야가 찾아 온 겁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광야에 있다면 내가 어떤 문제로, 어떤 죄로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있는지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는 겁니다.
2) 훈련적 측면이 있습니다.
신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징계함 같이”를 원어로 보면 훈련하다, 잘못을 깨닫게 하다, 강력히 충고하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야싸르” 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광야로 내 모시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범죄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거기서 망해버려라 그래서 광야로 내 모시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인간의 범죄 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내가 내 인생을 영위해 보겠다고 내가 내 주먹을 신뢰하면서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나아가면은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처서 꺾어서 광야로 내 몰아 눈물 없이는 거닐 수 없는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만 거기서 우리를 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에요.
“야싸르” 교육하다, 훈련하다, 깨닫게 하다, 잘 못을 깨닫게 해서 되돌리게 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시험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시험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시험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훈련시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열심인겁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기왕 피할 수 없는 게 인생길의 고난이고, 연단이고, 광야라면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 중요한 교훈을 얻지 못해서 헛고생하는 무지한 인생이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훈련시키는가?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깨닫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게(깨닫게) 하십니까?
1. 광야는 하나님의 관계 회복 기회를 제공하는 곳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광야의 특징, 단절, 고독, 외로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계의 단절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합니다.
경기도 용인에 삼성노블가운티라는 복지실버타운이 있는데 삼성의 이건희 회장님이 헬리콥터를 타고 장소를 정했다고 합니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5억을 일시불로 적립, 그리고 매달 200씩 내야 합니다. 시니어 타운: 30, 50, 70평, 의료시설, 문화시설, 스포츠시설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외롭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다 누리는데... 무슨 말입니까? 가족들과의 관계가 단절이 그들을 외롭고 힘들게 하더라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열심히 하는데, 그러면 기뻐야 함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어요.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얼마 못가서 상처받고 탈진해 버려요. 왜 일까요? 열심히는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과 관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힘들어 집니다. 목회자가 언제 목회 힘드느냐?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힘들어집니다.
옛날 어르신들 손자, 손녀 등에 몇 시간이고 없고 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관계가 작동해서 아닌가요? 손자 무게만한 돌덩어리를 없고 있으라면 이게 가능하겠느냐 말입니다.
결혼한 신부가 열심히 신랑을 위해서 밥하고 빨래하고 하루 종일 청소하는데 기쁨이 없어요.
왜 일까요? 열심히 하는데 사랑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아닌가요?
그런대 여러분 광야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탕자 - 죽을 어려움 -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의 기회가 됨
왜? 아버지를 찾게 됨
창28장에 보면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정든 집을 도망쳐 나옵니다.
그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까요. 그런데 그가 이제 광야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욥42:5 고통의 광야의 터널 속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광야에서 세상과의 단절은 하나님과 교통의 시작이 되더라는 겁니다.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교회가 성도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고독한 인생길을 걷는 분 계세요? 외로우세요? 하나님과 소통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나와 대화하자, 그러면 주님은 외로움을 물리쳐 주신 정도가 아니고 너무나 벅찬 마음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세요. 이런 영적인 교통은 고독한 광야에서만 경험되는 줄 믿습니다.
2. 광야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이 있음 알게 하십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여기 보니까 고난의 광야의 특징 3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1)너를 낮추시며 – 여러분 고난은 자존심 상하는 곳이요, 자존심이 다 죽는 곳이 광야입니다.
2)주리게 하시며 – 광야는 결핍의 상징, 애들 피자한판 사주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광야의 특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놀라운 “또”로 시작하는 한 가지 광야의 특징이 또 있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3)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게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
광야는 비참하게 낮아지고 꼬꾸라지고 결핍으로 가슴 저리는 아픔만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영적인 공급, 하나님의 초월성을 배우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것은 경험해본 사람만 아는 거예요.
요셉이요 세상에 강간미수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처박히고는 절망에 뼈져, 낙심에 빠져, 우울증 걸려 죽을 것 같은데 성경에 보면 그런 낙심의 흔적, 상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요셉은 여기 나오는 그대로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게 못하던” 설명해봐야 일반 사람들은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과 유무상통한 은혜가 그에게 공급되었다고 믿습니다. 감옥에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감옥에서 그를 위로해 주시고,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 마다 하나님이 만져주시는 특별한 영적인 하나님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에게는 상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 안에 왜 이렇게 상처가 난무합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너를 낮추고, 두 번째, 주리게 하시며 이것만 경험하고 세 번째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게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저는 기왕에 고난의 광야의 길을 걷는 여러분이라면 물론 낮추시는 아픔이 있고 주리게 하는 결핍의 아픔도 있지만 그러나 너도 알지 못했고, 너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적인 신령한 은혜, 이 공급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생각을 뛰어 넘고 한계를 뛰어 넘고 이제 나는 막장인생이다. 이제 나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랬는데 하나님의 초월성, 아니야 위를 쳐다봐 하나님의 손으로 그를 건저내시는 초월성을 광야에서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분명이 결핍이었는데, 분명이 곤고함 이였는데 되돌아보니 희한한 일이네 희한한 일이네 그래서 이 신비를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시작할 때 서러워서 눈물이 나고, 시작할 때는 고독해서 눈물이 났는데 그런데 마무리 할 때는 특별한 신령한 은혜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 이것이 신비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의 특징 - 자기를 의지함, 자기의 학벌, 경험, 물질, 직장, 권력, 건강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런데 광야를 만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게 됩ㄴ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광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지 못해서 만난 것이 광야라면 이 광야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온전히 하나님 의지하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떡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의지하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4. 반드시 회복시켜주실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신8: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범죄함으로 광야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연단을 다 거쳐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광야에서 잘 지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아니에요. 그들의 목표한 가나안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어려움과 힘듦과 외로움, 고독의 시간을 보내지만 하나님 나 이대로 망하지 않죠? 하나님 나 이대로 무너지지 않죠? 우리 가정 이대로 무너지지 않죠? 하나님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거죠? 다시 내가 깨닫지 못한 아름다운 은혜의 길로 나를 이끌어 주실꺼죠?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인 줄 믿습니다. 이 광야가 끝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만나는 것이 광야길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광야를 만납니까? 광야는 어쩌다보니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참을 수 있고, 버틸 수 있고, 광야를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1. 광야는 하나님의 관계 회복 기회를 제공하는 곳임을 알게 함.
2. 광야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이 있음 알게 하심.
3.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심
4. 반드시 회복시켜주실 하나님을 알게 하심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이러한 하나님을 늘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여러분 우리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너무 아팠고, 너무 외로웠고, 너무 눈물 나든 그 어려웠던 때, 여러분 아프기만 했나요? 외롭기만 했나요? 그 어렵고 힘들 때, 사람들이 내 곁을 다 떠나갈 때, 조용히 다가와 내 눈에 눈물을 닥아 주시고, 많이 힘드니? 외롭니?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겉으로 보기에 성공하고, 물질적이고, 화려한 것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아프고, 쓰라리고 고독하고 외로웠던 나그네 광야 길에서 나를 만져주셨던 그 은혜 발견하고 감사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시간 그런 연단의 과정을 겪는 내 주변의 어떤 어떤 분이 계시다면 그분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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