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강 믿음시리즈(27)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2)
신 8:2-3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채워 가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채워 가시는 선물의 내용물 가운데 고난의 시련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의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요? 3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1.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2.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기 위하여
3.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의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지금 뭐가 없으면 죽을 것 같습니까? 물질 아닙니까? 이거 놓지 않으면 놓을 때 까지 하나님은 물질의 고난의 시련을 계속주시는 겁니다. 사람 의지하면 사람으로 인한 고난의 시련을 계속 주십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5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고, 마리아가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말씀처럼 말씀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기를 싣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말씀을 의지 하십니까? 입술로만 의지해, 의지해가 아닌,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생명을 거느냐 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의지하느냐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말씀보다 떡을 더 의지합니다. 떡이 뭡니까? 돈, 물질이 떡입니다. 한 가지 예로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 말씀을 정말 의지 한다면 돈을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돈을 사랑합니다.
막10: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그런데 우리의 꿈에도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정말 우리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열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사1:10-15절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은 기본이고 월삭(매월 첫 날)과 모든 대회, 오늘날로 말하면 모든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절기마다 수많은 제사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양, 수송아지, 어린 양, 수 염소 등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살진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또한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58장에 보면 정기적으로 온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방향이 잘 못된 것입니다.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예수님시대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성경을 연구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버림받았습니다. 여러분 여기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뭡니까? 예배하고, 십일조 하고, 금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방향성이 문제라는 겁니다. (자기 / 하나님)
여러분의 물질이, 시간이, 건강이, 재능이, 가정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진정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나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양으로 흘러가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52장 살아 계신 주 2절 가사를 보면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후렴)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십니까?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자기를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언제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느냐?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알게 하기 위해 내리신 처방이 고난의 시련이라는 겁니다.
이 고난의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두 가지를 알게 합니다. 하나는 자기의 작음을 알게 하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죽을 것 같은 풍랑을 속에서 그들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작음을 알고 주님의 크심을 안 것 아닙니까? 이런 자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는 자는 두 가지 삶을 배워야 합니다. 1) 가난하게 사는 것, 2) 부자로 사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늘 잘되고 부자로 사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은 때로는 우리를 가난한 자리에 두시기도 하시며, 때로는 부한 자리에 두시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난하게 사는 것도 부하게 사는 것도 배우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난하다, 부하다는 말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건강의 가난, 관계의 가난, 물질의 가난, 모든 것을 총징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잘 될 때 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원망 아닙니까? 왜? 광야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원망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돌보실 것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시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사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5. 찬송과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기 찬송은 꼭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 다 찬양입니다.
우리 가운데 크고 작은 시련 가운데 계신분이 있다면 그 시련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떡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의지하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공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에 이상은 없으십니까? 우리가 결혼생활에 이상이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증거가 뭘까요?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마찬 가지로 하나님과 관계에 이상이 뭔 줄 아세요?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쁘지 않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로 인하여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기쁨이 없다. 예수를 믿는데 행복하지 않다. 아니 더 힘이 든다.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는데 얼마 못가서 상처받고 탈진해 버려요. 왜 일까요? 열심히는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과 관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힘들어 집니다. 성도가 언제 신앙생활이 힘이 드느냐?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지금 내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면 가장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여러분 요즘 젊은 아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려는 애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혼생활의 행복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왜 모를까요? 못 봤으니까.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결혼생활이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맨 날 싸우는 것만 보여주니 아! 결혼생활을 매일 싸우는 것이구나 이렇게 인식되니 누가 그런 결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TV프로 중에 “안녕하세요, 고민입니다” 어떤 엄만가 나왔는데 남편이 그렇게 욕을 잘 한다는 겁니다. 아내에게도 자녀들에게도, 그런데 그기에 딸도 나온 겁니다. 아빠가 욕을 너무 심하게 해서 나왔는데 문제는 이 딸은 아빠보다 한술 더 떠는 겁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 가지 아닙니까? 신앙생활의 기쁨, 행복을 자녀들에게 보여줘야 자녀들도 나도 엄마, 아빠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 도전을 받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을 해도 매일 불평, 불만, 짜증, 원망만 내고 매일 그것을 보고 자라는데 어떤 자녀가 도전을 받겠습니까?
그러면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야지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물 내용 가운데 시련, 고난을 허락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하시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련의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변장하고 찾아온 축복 아닙니까?
욥42:5 고통의 광야의 터널 속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백한 것처럼, 우리 또한 시련의 광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과의 단절은 하나님과 교통의 시작이 됩니다.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교회도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성도가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교회와 성도는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고독한 인생길을 걷는 분 계세요? 아무와도 이야길 할 사람이 없이 외로우세요? 이제는 하나님과 소통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때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나와 대화하자, 그러면 주님은 외로움을 물리쳐 주신 정도가 아니고 너무나 벅찬 마음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세요. 이런 영적인 교통은 고독한 광야에서만 경험되는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가정 악한 왕 아합 왕이 등장합니다. 이 왕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바알을 섬긴 대표적인 왕입니다. 당시 농경사회에서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면 이제 그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은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었습니다.
더욱이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누가 참신인지 헷갈리는 것입니다. 구원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참 신인 것 같고, 풍요를 생각하면 바알이 참 신인 것 같은 겁니다.
왕상18:21 그러자 엘리야가 그 모든 백성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가 갈멜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850명을 다 모으고 제단을 쌓고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는 850:1의 대결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엘리야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왕상18: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왕상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왕상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방향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내 문제를 해결 받고, 내 잘되고, 내 편하기 위해서 입니까?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은 시대는 다르지만 그들은 애굽의 바로 왕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그들이 꾼 꿈을 해몽할 때 그들의 지혜를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 결과 무엇입니까?
창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41: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단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3.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이 있음 경험하게 됩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여기 보니까 고난의 광야의 특징 3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1)너를 낮추시며 2)주리게 하시며,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광야의 특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낮추고 주림을 당하게 될 때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됨으로 놀라운 “또”로 시작하는 한 가지 광야의 특징이 “또”가 있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게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처럼 하나님의 초월적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광야는 비참하게 낮아지고 꼬꾸라지고 결핍으로 가슴 저리는 아픔만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영적인 공급, 하나님의 초월성을 배우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것은 경험해본 사람만 아는 거예요.
요셉이요 세상에 강간미수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처박히고는 절망에 뼈져, 낙심에 빠져, 우울증 걸려 죽을 것 같은데 성경에 보면 그런 낙심의 흔적, 상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요셉은 여기 나오는 그대로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게 못하던” 설명해봐야 일반 사람들은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과 유무상통한 은혜가 그에게 공급되었다고 믿습니다. 감옥에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감옥에서 그를 위로해 주시고,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 마다 하나님이 만져주시는 특별한 영적인 하나님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에게는 상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들이 경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초월적 공급하심 아닙니까?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오늘 우리 안에 왜 이렇게 상처가 난무합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너를 낮추고, 두 번째, 주리게 하시며 이것만 경험하고 세 번째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게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저는 기왕에 고난의 광야의 길을 걷는 여러분이라면 물론 낮추시는 아픔이 있고 주리게 하는 결핍의 아픔도 있지만 그러나 너도 알지 못했고, 너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적인 신령한 은혜, 이 공급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 생각을 뛰어 넘고 한계를 뛰어 넘고 이제 나는 막장인생이다. 이제 나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랬는데 하나님의 초월성, 아니야 위를 쳐다봐 하나님의 손으로 그를 건저내시는 초월적 공급하심을 고난 가운데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분명이 결핍이었는데, 분명이 곤고함 이였는데 되돌아보니 희한한 일이네 희한한 일이네 그래서 이 신비를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시작할 때 서러워서 눈물이 나고, 시작할 때는 고독해서 눈물이 났는데 그런데 마무리 할 때는 특별한 신령한 은혜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 이것이 신비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할 떼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구약 창세기1;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나옵니다 그러다 창세기 2장으로 넘어가 2: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선물로 허락 하시고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함으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8: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8: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8: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신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오늘 말씀과 같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주위에 흘러가며,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과 신실하심이 경험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시편 기자는 시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이러한 일들이 경험되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믿음이 이끄시는 대로 반응하지 않게 때문은 아닙니까?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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