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강 믿음시리즈(17) 믿음의 방향성
마 7:13-14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우리가 믿음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성경이 야고보 기자가 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 말은 그 만큼 성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믿음의 실천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가? 살지 못하는가? 물론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행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행함이 있으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없으면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행함으로 이해하고 행함의 여부에 초점을 두게 되면 믿음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는 소홀해지게 됩니다. 어쩌면 믿음의 내용이나 방향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기독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함만 있으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그것으로 믿음의 문제는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믿음의 내용이니 방향이니 하는 것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가령 매일 시간을 정하여 기도한다면 그것만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실천과 행함이 방향성의 열매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실천과 행함만으로 그들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까지 하시면서 그들이 자부하는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비록 드러나는 행위가 신앙적인 모습이라 해도 그 내용이나 방향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신앙의 싸움은 내용과 방향이 되어야지 행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행함을 두고 신앙이 좋은가 나쁜가의 싸움을 한다면 행함이 있는 사람이 이기게 되고 결국 우월한 신앙의 위치를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도 방향도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일까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참된 방향이 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누구나 자신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향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지를 오늘 말씀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13,14절)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 같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자신이 무엇을 실천하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자신이 나아가는 신앙의 방향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신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넓은 문을 찾게 되어있음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고 육신에 유리한 것을 선한 것으로 여기고 그 길을 좇는 속성의 존재라면 반드시 좁은 문이 아닌 넓은 문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으로 들어가서 어떤 길로 가고 있습니까? 사실 본문의 말씀을 많이 듣긴 해도 자신이 가는 믿음의 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있기에 좁은 길로 가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좁은 문이냐 넓은 문이냐’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주어질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현재의 문제, 즉 현실인 것입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한 말씀이 믿음의 현실에 대한 내용이라면 성도는 행함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행함이 있으면 믿음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행함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믿음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결국 행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행함으로 믿음의 잘잘못을 판단하려는 것이야 말로 믿음의 방향에서 크게 어긋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좁은 문은 우리의 힘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한다 해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예 막혀있는 문이고 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는 것인데, 왜 예수를 믿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협착한 길을 가는 것으로 말씀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어렵다면 무엇이 어렵습니까? 이 문제 역시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실천을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믿음의 어려움으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실천이 결국 육신의 수고와 노력을 요구하고 돈과도 연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찾는 넓은 길은 어떤 신앙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좁은 문보다 실천을 적게 요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예 실천의 요구가 없는 것일까요? 아예 실천의 요구가 없다면 믿음이 쉬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실천의 요구가 없는 것을 신앙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비록 힘들다 해도 실천이 있는 것을 신앙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해 있다면 그 믿음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자기 확인, 자기 인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의 방향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해 있지 않고는 죄에 붙들려 있는 자신에게서는 선이 나올 수 없다는 자기 인식으로 출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믿음의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다는 것은 기독교적 실천이나 도덕적 행위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인간의 변화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생명의 길을 갈 수 없고 믿음도 가능하지 않다는 자기 인식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과 수고와 노력에 아무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같은 자기 인식은 오직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어 자신을 예수께로 끌어가지 않으시면 믿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이것이 믿음의 방향이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는 증거라는 것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해석하게 되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하고 그리스도께로 향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넓은 문은 무엇일까요? 믿음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자부하는 제사장,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의 믿음은 자기 자랑과 우월로 나타났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수고와 노력이 타인보다 더 낫다는 우월과 자랑으로 돌아오는 보상을 원했고 그것을 믿음의 의미와 보람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생활이 자신의 의와 자랑으로 돌아오기에 믿음의 방향이 자기에게로 향한 사람들은 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일뿐입니다.
출 14:13-14절에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구원은 인간이 싸워서 승리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고 승리하심으로 얻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모든 문제는 우리의 행함과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행함의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믿음이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서 자연히 맺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함으로 해서 타인에 대해 전혀 우월감을 갖지 않는 것이나 어떤 행함에 대해서도 자기 의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 믿음의 의한 행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소유를 기준으로 한 차별도 없게 되는 것이고 목사, 장로라는 권위도 내려놓게 됩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은 막연한 생각이나 말에 머물지 않고 그 심령이 은혜에 이끌리면서 성령에 의해 맺어지는 열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내용과 방향성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믿음을 이해하고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행함에 초점을 두게 되면 성령이 우리의 믿음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오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믿음은 ‘했다 안했다’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행함을 보면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에게로 향해 있을 때 그 길은 멸망으로 향할 뿐입니다.
말씀의 방향이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다면 ‘말씀을 실천하는 나’는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자랑하고자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의가 되시고 생명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설교요약>
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여기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 믿음으로 사는 것은 행함(실천)이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믿음으로 사는 것은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⓵ 아무리 행함을 잘한다 할지라도 방향이 맞지 않으면 전혀 신앙이 아닐 수 있습니다.
⓶ 드러나는 행위가 신앙적인 모습이라 해도 그 내용이나 방향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 기도)
⓷ 성도에게 있어 신앙의 싸움은 행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과 방향성에 있 습니다.
4. 믿음의 방향은 무엇인가?
⓵ 믿음의 방향은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⓶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⓷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참된 방향성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5.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 좁은 문, 좁은 길 -> 협착 -> 찾는 이가 적음 -> 생명의 길
- 넒은 문, 넓은 길 -> 크고 넓음 -> 찾는 이가 많음 -> 멸망의 길
⓵ 좁은 문, 좁은 길이란?
- 편하고 좋은 것을 일부러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 불교의 고행 같은 것이 아닙니다.
- 좁은 문, 좁은 길이란? 구원을 의미합니다.
- 세상과 다른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진실로 아는 자는 자기 욕심을 버리고 주 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데 이 삶이 좁은 문, 좁은 길을 걷는 삶입니다.
- 실천하기가 힘들어서 좁은 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포기하는 길이기에 좁은 문인 것 입니다.
- 좁은 문, 좁은 길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⓶ 넓은 문, 넓은 길이란?
- 믿음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
- 넓은 문, 넓은 길의 대표적인 신앙형태가 율법주의입니다.
- 이러한 자들의 믿음은 자기 자랑과 우월로 나타났습니다.
- 행함이 믿음의 의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크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 이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일뿐입니다.
믿음의 길을 찾는 자가 적은 것은 자신이 포기되어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찾는 자가 많은 길은 인간이 고안해 낸 인간의 욕망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어지게 하시면서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참된 진리와 생명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복된 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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