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강 믿음시리즈(16) 믿음과 열심
고후 11:1-3
고후11: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시작의 중요성을 말하는 말로 영어 속담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출발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의 출발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 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은 믿음의 처음 시작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도 믿음이 아닌 믿음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잘 못된 시작
1) 하나님에 관한 지적 동의나 단순한 확신이 믿음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잘못된 시작은, 믿음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쉽게 설명해서, 우리 지금까지 전도할 때 약방의 감초같이 하는 말,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해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인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우리가 원하는 그런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뜻과 계획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인간을 위해 주어진 믿음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을 위해 믿음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면 그 결과로 자신에게 복, 물질의 복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한 도구로 존재 하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자신을 위한 믿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믿음 생활하면 복을 받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결국 ‘열심’을 그 답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심은 당연히 인간의 열심, 자기 열심입니다. 내가 열심을 내어 믿음 생활을 하면 그것이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지금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2. 믿음과 잘못된 열심
1) 열심히 하면 복 받는 다는 생각
2) 내 신앙이 좋다는 증거의 열심
3) 교회성장을 위한 열심
4) 믿음의 잘 못된 열심을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하는 것을 믿음의 열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열심을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믿음으로 하면 그것이 믿음의 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믿음에서 나온 잘 못된 믿음의 열심입니다.
성경에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노아가 하나님을 위해 방주를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것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위해 내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할 것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3. 믿음의 열심이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열심이 믿음의 열심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일 살펴보았듯이 암4: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4: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은 아침마다 제사를 드렸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또
‘수은제’를 드리고, '낙헌제' 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는 이러한 열심에 대해 뭐라 말하고 있습니까?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4:3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기쁨,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을 위한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사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렘6:20 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모든 것이 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한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의 열심은 그 방향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열심입니다.
2) 참된 믿음의 열심은 내가 계획을 세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히 나를 통해 쏟아 내는 것이 믿음의 열심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의 열심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신 그 일에 내가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 이것이 믿음의 열심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는 말을 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자기 열심이 자신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심입니다. 열심의 출처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게 부어짐으로 말미암은 열심이 참다운 믿음의 열심이라는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열심을 그대로 쏟아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한 바울의 열심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열심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를 복주어서 잘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믿음에 열심을 내는가?’ 살피면서 열심 있는 신자에게 복을 주어 그 인생을 평탄케 해주고자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열심히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를 정결한 처녀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죄로 인하여 정결하지 못한 부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정결한 자 되게 한 것이 하나님의 열심이었습니다. 정결한 자가 된 다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정결한 처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내가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정결케 된 자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자기의 행위를 바라보고 행위를 의지한다면 정결한 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결함은 그 마음에 오직 참된 남편이신 예수님만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러한 정결함을 위해서 하나님은 죄 아래 있고, 저주 아래 있는 우리의 실상을 보게 하기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것이 나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심으로써 저주에서 구출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끗케 하시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의로 인해서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의 정결함입니다.
믿음의 열심은 교회 내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서의 활발한 활동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활발한 활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심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열심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동일한 열심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내어야 할 믿음의 열심인 것입니다.
노아 시대 하나님의 열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노아가 방주를 만들지 않고 매일 이집 저집 다니면서 전도를 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이 열심은 어떤 열심이라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잘 못된 열심인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그리고 그 열심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열심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열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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