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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믿음에 의한 삶

26강 믿음시리즈(13)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골1:9-10)

by 오용주목사 2018. 7. 1.

26강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1:9-10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지난주일 믿음의 행함에 대해 살펴보면서 믿음+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행함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믿음의 행함을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인 것을 생각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행함을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이란 무엇인가?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고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들에게 이 십자가의 삶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 삶은 그들에게서 나온 행함이 아닙니다. 믿음도 행함도 우리의 그들의 소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함께 했던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알았기에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합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진심으로 참되고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고 알게 하시고 그것에 우리 마음을 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신자의 행함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믿음의 행함이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고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또 그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 의중을 가리켜 하나님의 뜻이라 합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 환경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는 그것, 깨닫게 하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 등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예배를 드렸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나는 오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으니 하나님 뜻대로 살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행위를 하느냐 못하느냐 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면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한 사람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뭔가 의식을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 의중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 뜻에 있어서 우리가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건강을 잃었다. 사업에 실패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물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십니다. 그러면 그 광야에서 죽으라 고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고쳐야 할 생각 중에 하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시고 일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고 목사님, 당연한 말씀을 왜 그렇게 하십니까? 당연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일하시지요.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신앙하는 것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기의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신앙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이유는? 사람은 관심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뜻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뜻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내 뜻을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믿고, 열심도 내 뜻을 이루어지주기 위한 복채로서의 열심입니다.

 

우리가 배웠듯이 기복신앙이 뭡니까? 하나님이 내 목적을 이루기 이한 수단이나 도구가 되는 것 아닙니까? 마치 알라딘 램프와 같이...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문제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해서 온 통 내 뜻이 이루어지는데 만 온 신경을, 온통 관심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 신앙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도의 현장에서 과연 자신의 뜻을 내어 놓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소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의 한국교회의 기도가 이러한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뜻만 외칩니다. 자신의 뜻을 실컷 외쳐놓고 끝에 가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자신의 기도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긴 기도라는 것을 하나님께 부각시킴으로써 자기 기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림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때에 따라 일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방식과 나의 때를 고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좀처럼 자기의 길과 자기의 방식과 자기 생각을 포기하기는커녕 심지어 수정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내 기도한 대로, 내 때와 방식대로 응답이 되는 것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믿는 신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뜻을 가지고 일하시는가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책에만 집착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을 의존한다고 하겠습니까?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신다면 내 뜻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내 뜻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내 뜻에 관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관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립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이 땅의 것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높이 오늘 수 있을까? 온통 이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를 원해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일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뒷받침이 있어서 실패 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조차도 율법주의 기복신앙 인본주의가 밑에 깔려 있습니다.

 

율법주의 :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생각

기복신앙 :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함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인본주의 :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도 내 기준대로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인 것입니다. 믿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를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 안에서이고 아주 좋은 번역은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 통하여는 아주 좋은 번역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우리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총명과 지혜를 성령을 통해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리가 되었습니까?

 

그러면 왜 신령한 지혜와 신령한 총명이어야 합니까? 여기 신령이란 말은 영어로 “spiritual” 성령이 주시는 지혜, 성령이 주시는 총명이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연인은 아무리 지혜와 총명이 탁월해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는 무력합니다. 그래서 어떤 지혜와 총명이 필요 하느냐? 성령이 주시는 지혜, 성령이 주시는 총명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생각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느끼게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분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믿음이 없는 사람은, 육신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하나님을 기쁘게도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 :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 뜻을 찾고 분별하는 영적 깨달음,

이 뜻은 나 개인을 향한 뜻이라기보다는 전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한 하나님 뜻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객관적인 뜻을 늘 묵상함으로 내 마음의 울타리를 확장할 수 있고, 얕은 내 마음을 깊이 팔 수 있고, 내 생각과 사상과 가치관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키우도록 깨닫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총명 : 성경을 깨닫는 지혜를 근거해서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하나님의 뜻을 때를 따라 찾아내는 분별력이다. (주관적 하나님의 뜻)

 

이 총명은 때로는 돋보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평소에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말씀이 확 들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게 총명입니다. 이 총명은 경우에 따라 일반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총명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주시는 성령의 소리 일 수 있습니다. 이 총명은 내 앞에 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총명이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달은 지혜에 근거해서 그 지혜를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총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내 가정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할 때 그 일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총명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분이십니까? 아버지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뜻을 좀 알고 그 뜻대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을 깨닫고 배우고 알아야 지혜가 생깁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 하는 자에게 총명의 눈을 열어줍니다.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죄가 우리의 마음을 자꾸 더럽히면 총명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앞길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자 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9-20절이 한 문장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