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강 믿음의 행위
약 2:14-17, 26
교회에서 행함을 강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본문이 바로 17절의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구절일 것입니다. 이 구절을 내세워서 ‘믿음만 가지고는 안 된다 행함도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함을 두 수레바퀴로 비유하면서 믿음만 말해서도 안 되고, 행함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과 행함은 그처럼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곧 믿음이고 믿음이 곧 행함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믿음 + 행함이 아니라 믿음 = 행함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는 말을 신자가 행하지 않으면 그 믿음이 죽은 믿음이 된다는 뜻으로 생각해 버린다면 결국 인간의 행함에 의해서 믿음이 죽고 산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는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예 믿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믿음에다가 행함을 보태서 완벽한 믿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함은 인간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에 의한 열매고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믿음에 의해서 당연하게 나타나고 맺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가 곧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맺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1.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행함을 자기 식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행함과는 상관이 없이, 자기식의 믿음과 자기식의 행함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함을 자기하기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조금만 의지를 가지고 열심을 내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의 행함을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던 기존의 삶에 믿음의 행함을 하나 더 추가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행함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식에 하나님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삶을 치워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건물에 비유하자면 리모델링이 아니라 완전히 허물로 다시 재건축 하는 것이 믿음의 행함입니다. 완전히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믿음의 삶의 방식은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기존의 삶의 방식, 즉 옛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식은 내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뜻, 내 목적, 내 계획을 위해, 내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행함은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것이 타락이요, 죄요, 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된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영광이 아니라 주의 영광을 위해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의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행함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근본적으로 바뀌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이, 이러한 믿음의 행함이 우리의 힘으로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믿음이 이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이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은 하나님의 소관이고 행함은 자기 소관이라는 생각합니다.
대개 보면 믿음은 하나님의 소관이고 행함은 우리들의 소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으니 성도는 받은 믿음을 잘 활용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것은 하나님 소관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걷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관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출애굽도 하나님 소관이었고 광야 길을 걷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 소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타락한 인간의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내가, 내가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 이러한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행함조차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수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믿음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제 행함은 내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자들은 행함이라는 것도 성경이 말한 행함이 아니라, 자기 기준의 행함인 것 아세요?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행함도 겨우 착한 일을 하고, 교회 일에 힘쓰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해 조금 기부한 것을 믿음의 행함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정말 믿음의 행함을 하려 한다면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을 그대로 행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행함을 자세히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행합니다. 자기에게 덕이 될 것 같으면 행하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행하고자는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행함을 “선택적 행함”이라는 것 아세요? 인터넷 쇼핑을 보면 자기 필요한 것만 장바구니에 담는 것처럼,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것만 행합니다. 사실 이러한 행함은 믿음의 행함이 아니라 자기만족적 행함이라는 겁니다.
사실 이런 행함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왜? 이러한 행함에 대해 세상은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우리는 너희들보다 더 잘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행함은 이정도가 아닙니다. 성도의 믿음의 행함은 지난날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누에고치의 삶과 나방으로서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삶이 듯, 한 가정의 딸로서의 삶에서 한 남편의 아내로서의 삶이 완전히 다르듯, 성도의 행함 또한 완전히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해 사는 것이 행함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의 삶입니다. 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이 목적이며,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 된 삶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함입니다.
이 삶을 성경 갈2;20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즉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 힘으로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까?
3. 따라서 믿음도 행함도 우리의 능력 밖의 삶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이러한 삶이 내 능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행함은 믿음의 능력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이든 행함이든 그 무엇으로도 자신을 자랑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믿음이 있음으로 인해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27,28절)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의 성도는 행함을 통해 성도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행함을 통해서도 그 행함조차도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는게 나라는 존재라는 고백을 통해 진정한 성도됨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행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몇 가지 정도 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예로 “비판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여러분이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 착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셔서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성도됨의 증거 하는 것입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보세요, 우리는 천국을 소망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것을 추구하고 세상의 것으로 힘을 삼는 것은 믿음의 행함이 아닙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기보다 약자를 무시하는 것은 믿음의 행함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행함을 자기 의로 삼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것은 믿음의 행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성경이 말한 믿음의 행함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믿음의 행함을 몇 가지 종교적 의식을 하고, 안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하고 하지 않고 정도로만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왜? 믿지 않는 자들도 양심을 따라 얼마든지 윤리적, 도덕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그 성령님을 보낸 신 이유가 고작 착한일 몇 가지 하게하기 위해서 이겠습니까?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럼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행함을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사도들이 살아온 삶들도 한 마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 였습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살았습니다(고전 2:2). 이 말은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영광을 받거나, 교회를 크게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뜻도 됩니다. 이처럼 바울의 믿음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채워져 있었을 뿐입니다. 사도바울의 관심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의 증거물이고 성도다움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 였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위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였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자신을 비워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이 뜻 앞에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이란 우리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고, 그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위해서 다 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잃어도 좋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이 날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들에게 이 십자가의 삶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 삶은 그들에게서 나온 행함이 아닙니다. 믿음도 행함도 우리의 그들의 소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함께 했던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알았기에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합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진심으로 참되고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고 알게 하시고 그것에 우리 마음을 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신자의 행함입니다.
<이레찬양 15장>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엔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은총 받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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