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 믿음과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지난주일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 믿는 다는 것은 마음으로 믿고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만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노아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방주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행동을 동반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행동이란 무엇 인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의 행동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위해 존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성도를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을 당연한 곳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함의 기준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 예수님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면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믿음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데나 하나님의 뜻을 같다 붙이는 경향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먼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대해 살펴보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해
1)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하는 오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같다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특히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자기의 일을 포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니까 반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시끄러운 서울의 모 교회의 세습 문제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내 뜻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여러분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은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말씀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이루고자 하시는 일에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2) 자신의 생각에 옳고 좋은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오해
사람들은 자기가 좋으면 하나님도 좋아 하시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좋은 생각, 옳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 자체의 생각과 판단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내가 옳고, 좋은 일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중에 어떤 목사님이 전화가 왔었습니다. 요지는 자기가 섬기고 있는 선교단체의 리더가 독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인사권, 특히 재정적인 부분에서, 그래서 그 힘을 여러 사람들에게 분산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입니까? 옳은 생각입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힘을 분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중심이 무엇인가? 여전히 그 중심에는 욕망, 탐심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 전화를 한 목사님도 제가 이런 말을 하기 전에는 자기 속에 그러한 욕망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생각이 옳고, 좋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생각은 잘 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3) 일이 잘 풀리는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는 오해
우리는 일아 잘 물리면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뜻이면 일이 잘 풀어지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막아주세요. 기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기도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고, 또 반대로 일이 안 풀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이 대형 교회에 출석하시는 권사님 한분이 계시는데 어떤 사업에 5,000만원을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저희에게 그 투자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투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습니까? 일이 잘 풀리더라는 겁니다. 사업 설명회에 갔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 투자 못한다고 하니 옆에 있는 권사님이 내가 5천을 빌려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 투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생각했다는 겁니다. 지금은 돈 빌려준 권사님과 관계도 깨어지고 낭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나를 보세요. 요나가 하나님께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순종하고 세상으로 빠져가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수 있느냐 말입니다. 마침 요나의 전용 배처럼 다시스로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니 불순종하고 돌아서면 있던 배도 끊겨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 구나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일이 잘 풀리는 것입니다. 딱 불순종하고 돌아섰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출발하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요나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러면 그렇지 다시스로 가는 것이 하나님 뜻이었구나,
무슨 말인가 아시겠죠? 일이 잘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일이 안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일이 잘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 환경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또한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을 때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 순종하니 일이 잘 풀리고 순종하니 더 어려움을 당하니 이거 순종하는 건지 불 순종하라고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죠?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순종하면 만사형통 불순종하면 만사불통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어디에도 순종하면 만사형통을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경은 순종을 했을 때 더 큰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경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아니다. 이렇게 분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스, 노 이렇게 대답하시면 그나마 다행인데 하나님께서 예매하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제가 부산에 서 통영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가 통영에 가면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어도 여전히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또 왜 분별이 어렵느냐하면? 우리의 욕심 때문에 정확한 분별이 어렵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왜 입니까? 그래야 실패하지 않으니까. 그래야 내 앞길이 평탄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가 교회에서 시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교회를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이곳에 계속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러면 그거 100% 옮기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거의 자기 생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3.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거냐? 저거냐? 하느냐? 안 하느냐? 로 분별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의식을 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식 자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의식을 잘 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행위를 하느냐 못하느냐 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면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한 사람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예배를 드렸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나는 오늘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으니 하나님 뜻대로 살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뭔가 의식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중이 예배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쉽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성도 개인에게,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말합니다. 그래서 집에 불이 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지진이 발생해서 집이 무너지고 다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말해 버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신 것과 그리고 70년 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이 둘 중 어느 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둘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머니가 자녀에게 몸에 해로운 라면과 몸에 이로운 밥이 있는데 여러분 이 둘 중 어느 것을 먹는 것이 엄마의 뜻입니까? 라면을 먹는 것입니까? 아님 밥을 먹는 것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엄마의 뜻은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고국에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가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되고 섬기게 되는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뜻에 있어서 우리가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건강을 잃었다. 사업에 실패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물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십니다. 그러면 그 광야에서 죽으라 고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행함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십니까? 다시 말해서 바울이 행함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본문의 말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 말씀은 우리의 행함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항상’‘쉬지 말고’‘범사’라는 말에는 모든 형편과 사정과 환경에 대한 초월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조건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모든 상황과 형편을 초월하여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에 붙들려 인도되는 삶의 복됨을 알 때 현재의 형편과 처지로 인한 불안과 염려보다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죽음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을 아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요 6:38-39절을 보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것은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것일까요? 표면적으로는 택한 자의 구원이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는 말은 우리가 죽은 자임을 전제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은 다시 살아날 가치조차 없는 자를 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일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랑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에서 확인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다스려지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영역으로 모으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영역에 자기 백성을 모으시고 주어진 형편과 처지를 초월하여 항상 기뻐하게 하시고,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고, 범사에 감사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붙들린 새로운 세상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여러 가지로 언급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본문에서 언급되는 하나님의 뜻과 앞에서 말씀드린 요6장에서 언급되는 하나님의 뜻이 다릅니다. 그리고 살전 4;3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신자의 거룩으로 말합니다. 또한 롬 1:10절에서는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다양하고 여러 가지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그 내용에 담긴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말씀들 하나하나가 우리를 사랑에 붙들리고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나라로 끌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셔서 사랑으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게 함으로써 사랑에 대해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 가와는 무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로 말미암은 은혜와 사랑에 눈이 열리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그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소원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구실 삼아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모든 뜻을 내려놓게 하고 대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자는 이 믿음에 의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누리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매일의 삶에서 은혜와 사랑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면서 이끌어 가시는 삶이 복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영광되고 복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리즈설교 > 믿음에 의한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강 믿음시리즈(11) 믿음과 예배 (요 4:19-24) (0) | 2018.06.17 |
---|---|
23강 믿음시리즈(10)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14) (0) | 2018.06.17 |
21강 믿음시리즈(8) 믿음과 행함의 관계 (마16:24-27) (0) | 2018.05.27 |
20.믿음시리즈(7) 믿음의 약함과 강함과 자람 (롬14:1-3) (0) | 2018.05.20 |
19.믿음시리즈(6) 믿음과 성화의 관계 (벧전2:1-3) (0) | 201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