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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믿음에 의한 삶

18.믿음시리즈(5) 믿음의 능력 (눅17:5-10)

by 오용주목사 2018. 5. 6.

18강 믿음의 능력

17:5-10

 

우리는 지난 몇 주에 걸쳐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을 시작으로 천국 갈 수 있는 참 믿음이란? 무엇이며, 믿음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 믿음의 성격, 믿음이 주는 것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 참된 믿음의 특징

1)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된다. (, 의사를 믿으면 처방대로 순종)

2) 하님이 주인 되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

3) 하나님의 영광(목적)을 위하여 살게 된다.

어떻게 이러한 삶이 가능한가? 믿음이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을 부어주실 때 그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2. 믿음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

1)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도 자라나게 할 수도 없다.

2)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2:8)

 

3. 믿음의 성격

1) 바라는 특성

2) 하나님의 약속을 바람

3)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믿는 믿음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4. 믿음을 누가 얻습니까?

1) 하나님께 창세전에 선택함을 입은 자들이 받습니다.

2) 내가 선택함을 받았는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십자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5.사탄의 공격

1) 사탄의 공격은 의심과 불신이다.

2) 사탄의 공격을 대적하기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3) 죄를 회개할 때 믿음이 강화 된다

 

6. 믿음이 주는 것

1) 구원

2)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을 보게 합니다.

3) 십자가를 보게 합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능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능력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병 고치는 치유의 능력,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기도응답의 능력, 예언의 능력 등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마다 성도에게 믿음을 강조합니다. 큰 믿음, 뜨거운 믿음을 가지라고 하기도 하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한 믿음이 되라고도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말들이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많은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오해도 낳기도 합니다.

 

 

먼저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큰 믿음, 뜨거운 믿음. 열심 있는 믿음, 부지런한 믿음이 되라는 말속에는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은 내 하기 나름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뜨거운 믿음이 되기 위해 금식도 하고, 철야, 적정기도하고, 기도원을 찾아 가기도하고, 또 게으르지 않는 믿음이 되기 위해 교회 일에 열심을 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에 대해 오해의 결과물입니다. 믿음은 내 하기 나름이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불완전한 믿음인데 우리가 노력해서 그것을 잘 키워야 한다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완전하지 못한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그 믿음을 잘 키워서 좋은 믿음으로 만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치 못한 믿음을 주셨고, 완전치 못한 믿음을 완전한 믿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들 소관이라는 의미가 돼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구원도 불완전한 것이고 우리가 완전한 구원으로 만들어가야 된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신 믿음은 완벽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뜨거운 믿음을 가지라거나 믿음을 키우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2)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오해는 믿기만 하면 잘 된다는 믿음 만능주의입니다.

) 빨간약, 옥도징끼, 아까징끼

그런데 성도들은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믿음 만능주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성도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능력은 뻔합니다. 병이 낫고, 귀신들림 사람이 고침 받고, 기도에 응답을 받는 그런 능력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믿음만 있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만 기도하면 해결될 것이고, 병이 들었다고 해도 믿음만 있으면 고침을 받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일종의 믿음만능주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해결 돼 버리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믿음을 거의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고 또 그런 잘못된 믿음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말 믿음으로 하면 다 됩니다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 건축도 믿음으로 하면 된다, 해놓고 성도들 주머니를 짜내는 것이 믿음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참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참된 믿음은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가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대뽀 막가파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아브라함에게서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행하실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 줄 것을 믿습니다. 이건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 안에서 믿음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 줄 것을 믿습니다 하는 것이 믿음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믿고 하면 된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모든 것을 이룰 능력이 있다는 말인데 내가 원하고 내가 소원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그런 믿음의 능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믿음의 능력은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성공, , 명예, 문제해결,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믿음이 능력이 필요한 것을 변질 되어 버린 것입니다.

(상한우유)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 = 성공이 아니라 핍박과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이 땅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믿음만능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습니다라고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 있음을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을 보여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음을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내 믿음을 보시고 나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속셈입니다. 이러한 것이 믿음에 대한 오해며 또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내 노력과 의지로 믿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베드로의 말에는 자기의 의와 자존심이 살아있습니다. ‘용서를 일곱 번 실천하면 됩니까?’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의로움이 이런 수준에 있음을 나타내고 싶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의로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우리는 이 말을 무한한 용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일곱이라는 횟수로 고정된 용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용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무한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맞지 않습니까? 여러분 만약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이러한 용서가 불가능하다면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도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래서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한한 용서를 실천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는 용서라는 의가 나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형제가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내용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다는 자기 의를 근거로 질문하는 베드로에게 인간에게서는 용서의 의가 나올 수가 없다는 답을 하신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하는 말이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입니다.

여러분, 지금 제자들이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해서 그러한 용서를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더해주셔서 예수님이 말씀한 용서를 실천하게 해주십시오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자들은 자기에게 믿음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을 조금만 더해 달라는 겁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뭐냐? 그것이 6절 말씀입니다.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

 

그래 너희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뽕나무를 뽑아 버린다, 이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일을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자들에게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겨자씨 한 말만한 믿음도 없는데 믿음이 있다고 착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제자들이었고 우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 증거로 뽕나무를 뽑고 심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믿음을 더해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믿음이 있는 사람인 줄 착각을 합니다. 아니, 내가 믿음이 있으니 교회 나오고, 믿음이 있느니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믿음이 있으니 교회 일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증거물로 내 세우는 것은 다 교회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은 믿음의 증거물로 교회 일을 내 세운 적이 없습니다. 성경대로 하려면 믿음이 있는 그 증거로 뽕나무를 뽑고 심어야 하고, 산을 옮겨야 합니다. 만약 못한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믿음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믿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족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음을 좀 더 부어주시면 나도 큰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의 능력

지금까지 우리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말은 타락한 죄인된 우리 스스로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스스로 만들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믿음을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주체를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믿음을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는 믿음에 순종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로 하는 것은 자기 뜻대로 살고, 자기가 주인 된 삶, 자기 목적 영광을 위해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믿음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내게서부터 나온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죄인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그 의를 믿게 되었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할 죄인임을 믿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생명임을 믿는 것이 내게 믿음이 있고 믿음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능력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믿음의 능력이 아닙니다. 참다운 믿음의 능력은 내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임을 보는 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죄로 인해서 일말의 희망도 없이 오직 사망에 처해져야 할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로 인해서 죄가 가려지고 사망에서 건짐 받게 된다는 것이야 말로 용서가 얼마나 존귀한 은혜인가를 알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무엇을 행하던 간에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음에 순종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모든 것이 내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게 주신 믿음에 의해 순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행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행하게 만들고 나를 통해서 열매를 이 땅에 나타내는 순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네 힘 가지고, 내 믿음가지고, 내 능력가지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심령이 주님께 붙들려 순종됨으로 인해서 이러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고백이 나오는가하면 17:10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믿음 가지고 내가 행했다는 자들에게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고백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내가 했는데.. 내가 행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기 행함에 대한 보상만 기대하게 될 뿐입니다. 이러한 자는 종이 아니죠.

 

그러나 나는 믿음에 순종될 뿐임을 안다면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고백이 나올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계산이 없습니다. 자기 행함을 바라보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복 받겠지, 또 열심히 일하고도 내가 한다는 생각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복음을 증거하고 은혜를 나누고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내가 한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나는 순간순간 믿음에 순종되고 있을 뿐이고, 순종하게 되는 것도 믿음의 능력일 뿐이다는 생각만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신자란 이런 사람이고, 인간을 이러한 성도로 바꾸어 놓는 것이야 말로 위대한 믿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 능력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그 능력에 붙들려서 마음껏 주님께 순종하면서 종으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자는 겁니다. 이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는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순종되고 있다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순종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런 고백만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주님을 위해 살면서도 어떠한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고 만들어 낸다는 것 이것이 위대한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자기만을 바라보는 완악한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 능력에 붙들려서 기적을 누리며 종으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기 바랍니다.

 

이 삶을 살았던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후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여러분 오늘 나의 믿음이 정말 참 믿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 나는 그분의 종의 모습으로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는 나의 주인 나는 그분의 종 된 삶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찬송가 257(189).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1.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2.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3. 나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4. 거룩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죄속한 은혜의 찬송을 기쁘게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후렴]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