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새해에 붙잡아야 할 네 단어 송구영신예배
딤후4:1-13
여러분, 조율되지 않은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조율되지 않은 악기는 아무리 연주자가 실력이 있다하더라고 그 연주자의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율되지 않은 인격은 주위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조율되지 않은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혜, 은사들을 다 무력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해 여러분의 삶과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분노가 조율되지 않고, 생각이 조율되지 않아, 혹시 여기저기서 삐꺽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새해를 시작하는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격과 신앙을 다시 조율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크게 네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관점(시각)을 조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 후서는 사도바울이 이 땅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긴 서신서입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마지막 4장을 읽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딤후4장에서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이 가까 왔음을 알고 그는 이 땅을 떠날 마지막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채비가 무엇입니까? 관점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의 마지막은 모습은 어떻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단 한 번도 뒤돌아서지 않았던 바울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던 바울,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던 바울(고후11장)
그런 바울의 지금 형편이 어떻습니까? 차디찬 감옥에서 외로움과 고독함과 쓸쓸함 속에 그의 머리에는 승리의 면류관이 아닌 참수형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얼마 던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상황 아닙니까? 하나님 제가 한평생 복음을 위해 수고한 대가가 겨우 이것입니까? 여러분 바울이 이렇게 원망한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이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딤후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보세요! 바울은 자기의 죽음을 ‘관제’로 보았습니다. 관제가 무엇입니까? 관제는 제사는 디 드리고 난 후 마지막에 그 제단에 포도주를 붓는 행위로 재물에 따라 포도주의 양이 달랐습니다. 벌거게 달은 제단에 포두를 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방으로 포도주 수증기가 튀면서 금세 증발하지 않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자기가 참수형을 당할 때 그 솟구치는 피를 바울은 자기가 이 땅에서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말씀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예배로 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해석입니다. 내가 그 환경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자기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생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환경을 탓하고, 팔자를 들먹거립니다. 심지어 부모와 배우자를 원망합니다. 내가 좀 더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내가 좀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 했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거라고 애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세히 관찰해보면 우리 인생은 환경이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각에 따라 좌우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상처를 많이 인물 한 사람을 꼽으라면 요셉일 것입니다. 6살 때 어머니가 죽고, 이복형들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며 살다가, 형들에 의해 노예시장에 노예로 팔렸고, 가장 치사한 강간미수범이라는 제목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까지 갇혔던 요셉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자세히 봐도 그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억울해서 잠을 못자 신경 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왜입니까? 그가 자기 모든 인생의 여정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여러분은 지난 1년 동안 여러분의 모든 환경을 어떤 관점으로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남편, 아내, 자녀를 누구의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까? 지금 당면한 교회문제, 성도들의 문제, 여러분의 문제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에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을 토대해서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환경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흔들리면 다 흔들립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님께 야단을 맞아도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은 엄마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놓치면 심각 해 집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해도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그 증표가 뭐냐?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뭘 보세요? 두 가지 하나님은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와 또 하나는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게 보여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전에, 주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셨는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의 시각을 조율해야 합니다. 똑 같은 환경에서 망가지는 사람이 있고, 빚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바로 관점의 차이입니다. 인생은 관점이에요. 인생은 해석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는 말은 우리의 환경을 다루심 관점으로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데 특별히 두 가지를 통해서 빚어 가시는데 하나는 관계를 통하여 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을 통하여 빚어 가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만나는 환경 하나님의 다루심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루심의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엇이 다루어지기를 원하시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신앙, 인격, 재정, 의지하는 것, 물질..)
특히 과거의 상처를 다루심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가 온전히 치유됩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상처를 안 받게 됩니다. 왜? 그 뒤에 하나님의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재해석이 된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조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시각을 교정해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2. 믿음을 조율해야 합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은 인간의 관점,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는 실패한 인생 같이 보였지만 그는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음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마디로 믿음에 의한 삶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다.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는데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도 않는데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예) 노아에게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기고 방주를 지어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노아는 아직 비를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홍수로 세상을 심판한다, 여러분 이 말이 노아의 머리로 이해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언제 시작되느냐 하나님께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단순히 성경공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습니다. 가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만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1) 성령의 조명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특별히 언재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하시는가? 찬양과 경배, 중보기도때입니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끝가지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공부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알려면 결국 우리가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 봐야 주님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알게 된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셨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성경공부해서요? 누가 가르쳐 주어서요? 아닙니다. 끝까지 순종할 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손을 들면 이 긴다. 이것이 결코 모세에게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왜? 40년 동안 바로 왕궁에서 전술교육에서 이러한 전술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끝까지 가 보니 그때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끝까지 가봐야 승리가 있어요. 죽기밖에 더 하겠나 자세를 가지고 가야합니다. 가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더니, 아 하나님은 진짜 말씀하신대로 이루신분이구나, 능력의 하나님이시구나, 구체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시구나, 그분 안에 모든 전략이 있구나, 이것을 경험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더 깊이 아는 이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끝까지 따라가 봐야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좋은 일꾼이 되고,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종 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누구세요? 머리로 아는 것 말고,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세요? 성경공부를 통해서 안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 내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몇 가지나 적을 수 있으세요? 한 번 적어보세요. 몇 가지나 적을 수 있는지...
삶의 현장에서 내가 믿는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아서 갈등도 고민도 있지만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 보았더니 거기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거기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진리를 경험하는 것, 이것이 놀라운 승리이며, 능력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조율되어야 합니다.
3. 관계를 조율해야 합니다.
오스카 톰슨이란 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관계라고 말을 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한 청년 자매가 어느 날 제게 이런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는 목사님은 언제 신앙적으로 가장 힘드세요? 또 다른 하나는 목사님은 언제 삶에서 가장 힘드세요? 만약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제가 그 자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건 공부해서 내린 답이 아니라 경험의 답입니다. 신앙이 가장 힘들 때는 하나님과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요, 삶에서 힘들 때는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적으로 힘들었다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 관계부분을 점검해 보십시오. 또한 삶의 영역에서 힘들었다면 사람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 시간 조율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죄일 수도 있고, 불신일수도 있고, 불순종일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바른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를 조율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바울도 사람과의 관계를 조율합니다.
딤후4:11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차 선교 여행 때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마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마가는 선교여행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2차 선교여행에 사울은 바나바와 한 팀이 되었어요. 그런데 가는 날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못 데려간다. 바나바는 데려가자, 못 데려간다, 1차 때 보지 않았느냐, 또 데려갔는데 선교에 방해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 안 된다 그래서 결국 사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어 그럼 우리 따로 따로 선교여행가자 한 겁니다.
여러분 마가는 지금으로 말하면 사울에게 찍힌 거예요. 그런 바울이 이 땅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불편한 관계가 있으신가요? 그럼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그 관계를 조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섭섭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미운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내 남편, 내 아내를 만나게 하셨다. 이것이 흔들리면 뿌리째 흔들립니다. 성도사이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셨다. 보기 싫은 김 집사 누가 만나게 하셨다고요?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왜?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사람과의 관계를 조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새해를 새롭게 하나님 은혜 가운데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잘못 된 관계를 회복해야합니다. 이것 회복하지 않고는 여러분의 신앙도 삶도 새롭게 새 출발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신정을 쉬는 날로 보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관점의 조율, 믿음의 조율, 관계를 조율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4. 필요를 조율해야 합니다.
딤후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가지를 가지고 오리고 부탁합니다. 겉옷과 책, 책은 어떤 책입니까? 가죽 종이에 쓴 책, 성경책이죠. 하나님의 말씀과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애기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영적인 필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필요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도 필요하지만 겉옷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간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것이 필요하지만 육체적인 것도 동시에 채워져야 합니다. 영이 우리의 육신을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때론 내 몸이 내 영을 움직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휴식은 기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휴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필요의 존재입니다.
지난한해 여러분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영적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씀이 부족하면 이 한해 말씀을 여러분의 심령에 채우기를 결단하십시오. 중보기도, 경건의 삶, 또 육적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건강이었습니까? 물질이었습니까? 공부였습니까? 그 필요를 위해 조율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인 송구영신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조율해야 될 것,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관점을 조율하라, 믿음을 조율하라, 관계를 조율하라, 필요를 조율하라, 네 단어를 새로운 한 해 동안 꼭 기억하시고 결단하십시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이 한해 순간 순 이 4가지를 점검하시고 느슨해 질 때마다 새롭게 튜닝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연주자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연주하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지난 한해 삶에 영역,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 조율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먼저 회개 하시고, 이 한해 새롭게 조율되어야 할 부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조율되게 해 주세요.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건강의 조율이 필요하면 건강의 회복을, 내 언어의 조율이 필요하면 언어의 조율을, 늘 부정적인 생각,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의 조율이 필요한 분은 생각의 조율을, 가정의 조율, 직장의 조율, 일터의 조율, 특별히 교회가 조율되게 해주세요. 조율하는 인생 되게 하여 주세요 결단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셔서 나를 조율하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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