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07.초막절 교훈 (추수감사절)
느8:13-18
느헤미야는 총13장으로 되어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느헤미야 1장부터 7장까지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주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으로는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했지만 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은 신앙은 아직 재건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신앙의 재건을 다루는 부분이 둘째부분으로 8장부터 13장까지입니다. 신앙의 재건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 말씀회복, 2) 회개회복, 3) 감사회복입니다.
1. 말씀회복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교회가 1년에 한 두 차례씩 심령대부흥회라는 것을 했습니다. 특별히 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을 하면 입당과 동시에 심령대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왜 심령부흥회를 했는가 짐작이 가시죠? 겉으로는 예배당을 잘 지었지만 겉모습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부흥되어야 한다는 말 아닙니까?
마찬 가지로 무너진 성전도 재건되었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도 재건되어 겉으로 보기에는 이제 다 된 것 같은데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더라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내면의 재건, 심령의 재건, 믿음의 재건이 필요한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느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무슨 말입니까? 무너진 성벽을 다 재건했으니 이제는 말씀을 통하여 무너진 믿음을 재건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 목사님, 성경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강론해 주십시오.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무너진 믿음이 어떻게 재건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8: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여기 “귀를 기울였다”는 말은 기본 불변사로 “무엇 무엇을 향하여” 무엇을 하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을 단순히 말씀을 듣기만을 위해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닙니다. 듣고 액션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삶을 조정하고 그 말씀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는 말이 100회 정도 나옵니다. 이 말은 듣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을 듣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에 대한 이러한 자세가 없는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 소돔 고모라 성에 살고 있었던 롯의 사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결과 소돔 고모라 성이 불탈 때 함께 멸망당합니다.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공동번역에서는 “실없는 소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그 증거가 뭐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반해 다윗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의 영적 부흥은 말씀운동회복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말씀 앞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그 민감함이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 “아멘 아멘”으로 나타납니다.
느8: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아멘이 무슨 뜻입니까? 승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자임을 고백한 것이요, 내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굴복시켰습니다. 내가 그러한 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조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 대한 그들의 자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줄 아세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삶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모세가 떨기나무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이것만 자랑하고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을 조정해야 합니다. 아멘 아멘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 자랑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납니다. 아멘 아멘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삶을 조정해야 합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을 때 그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아멘 아멘, 무슨 말입니까? 내가 그러한 자입니다. 내가 그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는 고백입니다. 이 자세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 자세가 정말 필요합니다. 말씀 앞에 떠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2. 회개회복
느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지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주시는 말씀 앞에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말씀 앞에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자각해야 하는 겁니다. 자각하면 따라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여러분 수년을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 앞에 자각되는 인생이 아니면 그 많은 말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겁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비춰보고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 된 거예요.
우리 자녀들도 마찬지 에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인생이 되게 해주세요.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3. 감사회복 (초막절 회복)
초막절은 유월절과 그리고 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3대 절기로서 지켜 온 것 가운데 하나로서 일명 ‘수장절’ 거둔다의 수와 잘 모아둔다의 장, 그래서 수장절이라고도 하며,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장막 = 초막 같은 말입니다. 이 절기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조상들이 그 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40년의 광야 생활 속에서 낮에는 더위와 싸워야 하고 밤에는 추위로 싸워야 하는 그 광야 길에서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으며, 그 광야 40년의 길을 걸었지만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으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그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그 광야 40년 동안 부족함이 없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망각하지 않고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를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하고 말씀운동을 통해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그리고 이 초막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
느8: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여호수아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 성경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초막절을 다시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 초막절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를 광야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광야에서의 감사 이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광야에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광야로 내 모시는 분이 하나님이 시며, 또 광야로 내 모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 때 진정한 감사를 하게 되며 이때 초막절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키면서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소요리문답 제11문 :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능력으로써 그의 모든 피조물과 그것들의 행동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일이다.
여러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섭리의 정확한 뜻을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섭리는 한자어로 ‘攝理’라고 표기한다. ‘당길 섭’과 ‘다스릴 리’가 합쳐진 단어이다. 섭리에는 붙든다는 개념과 다스린다는 개념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섭리란 말에는 하나님의 “보존과 통치”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은 어떤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합니다. 이 섭리는 보존과 통치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붙들지 않으면 그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으시면 그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 섭리는 가장 큰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간단히 말하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섭리의 대상이다. 이 세상에 어떤 일도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지구 기울기 : 23.5도
또 이 세상이 운명이나 우연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섭리하시고 그 섭리에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 통치하시고 다스린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모세가 어쩌다 보니 레위지파 아드람과 요게벳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쩌다 보니 나일 강에 버려졌고, 어쩌다보니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었고, 어쩌다보니 바로의 후계자가 되었고 어쩌다보니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로 간 것이 어쩌다보니 광야 길로 가게 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판을 애굽으로 정하시고 400년 동안 번성케 하시고 때가되매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출애굽 시키시고,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고, 물 없는 사막에서 생명을 소생시킴 받으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하심을 힘입어 광야를 통과하였으며,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여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무사히 도착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연일까요? 저절로였을까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고, 지금의 남편과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놓고, 특별히 예수를 믿게 되어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요?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감사와 관련해 꼭 기억해야 할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감사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잣대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잣대가 많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기도를 하는가, 성경을 얼마나 읽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내 안에 감사가 흐르고 있는가, 이게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잣대라는 겁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 “감사하라”는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오”인데 “좋다”라는 뜻을 가진 “유”와 “은혜”라는 뜻을 가진 “카리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하는 말의 뜻은 월급이 오르고 집을 사고해서 감사가 아니라, 여기 “유카리스테오”이 감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다 선하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은 다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은 다 합당하다. 이걸 인정하고 이걸 고백하는 차원에서의 감사입니다.
“응답하심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응답하신 것 감사하는 것은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것 아닙니까? 거절하신 것을 감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유카리스테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다 좋은 것이다.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고백 아닙니까?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감사” 길가에 장미꽃은 누구나가 다 감사하는 겁니다. 그러나 날 찌르는 가시조차도 이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장미꽃 가시조차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유카리스테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다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다 선한 것이다. 이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감사가 있습니까?
느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여러분 진정한 실력은 언제 나타나느냐? 위기 가운데 나타납니다. 장미꽃 냄새가 만발하는데서 감사하는 것이 그게 무슨 실력입니까? 온 사방이 장미꽃 가시로 찔러 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인생에 이런 가시를 주셨다면 어딘가에 장미꽃을 피우고 계실 것이다. 이걸 볼 수 있는 눈, 이게 영적인 실력 아닙니까?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행하되” 증거가 7절에 나옵니다.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믿음에 굳게 서는 건 감사함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평이 많을까요? 왜 장미꽃 가지를 그렇게 불평, 원망하며 하나님 이것 잘못 만든 것 아니냐고 불평 원망할까요?
2. 감사는 훈련을 통하여 얻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를 써야합니다. 본능에 맡기면 안 됩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다 명령형입니다.
3. 내 속에 있는 감사는 입술로 표현해야 완성이 됩니다.
눅17장에 나오는 10명의 문둥병이야기
눅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결과적으로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육신의 병만 고친 것으로 끝이지만 한명의 나병환자는 몸도 고침을 받았고 영혼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감사가 구원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홉 명은 육신이 고침을 받는 것으로 끝났지 더 이상 주님과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은 감사를 통하여 주님과 관계가 연장될 수 있었고 그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 아홉 명의 나병환자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 육신의 필요를 따라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그러나 정말 우리게 한명의 나병환자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 도구가 바로 감사입니다.
여러분 아홉 명의 나병환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도 감사했다고요 입술로 표현만 안했을 뿐이지,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는 머릿속에서 작동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서 작동되는 감사를 내 입술로 표현하는데 까지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감사입니다.
저는 오늘 결론을 이렇게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초막절은 어떻습니까? 혹시 초막절이 무너지지는 않았습니까? 오늘날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감사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얼마나 많은 사랑의 표현 감사의 표현을 하나님께 드리는가 보십시오.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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