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5. 동방박사들의 경배
마태복음2:1-12
갈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언제 이 땅에 오셨는가 하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말씀처럼 하나님의 때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가 말씀하고 있는데 마2;1절에 “헤롯왕 때”라고 말씀합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헤롯 왕 때란 어떤 때인가? 사실 ‘헤롯왕 때에’ 이 말속에는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실 때 사회상이 어떠했는가를 이 짧은 한 문장 속에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헤롯이 누군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면 그는 ‘폭군’이었습니다.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던 서슴치 않고 자행한 사람입니다. 폭정을 일삼고, 백성을 억압하고,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백성들에게 고된 부역을 강요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의 통치 말년에는 자기 권력을 탐했다 해서 아내를 죽이고 두 아들까지도 살해했던 사람이 헤롯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어느 날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베들레헴에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러분 상상이 되세요?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처, 자식도 죽인 그가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미치광이가 한 짓이 무엇입니까? 두 살 아래 남자 아이들을 몰살시켰던 것 아닙니까?
이처럼 ‘헤롯 왕 때에’ 란 백성들의 원망과 고통의 신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던 시대였습니다. 소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흑암의 시대, 내일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던 시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 정의가 사라진 시대라는 겁니다.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시대
여러분 이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모습이 아닙니까? 헤롯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대, 답답하고, 억울하고, 우울하고, 분통터지는 시대,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 살지 못한다는 시대, 부정과 부패가 난무한 시대, 그런 자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큰소리치며 득세하는 시대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아닙니까?
그런데 이러한 숨이 턱턱 막히는 시대 속에 우리에게 들려오는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입니다. 새로운 왕이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뿐 아니라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왕의로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통치에 들어가면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있고, 그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꿈꿀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가정은 어떻습니까? 헤롯과 같은 사탄의 지배로 말미암아 억압이 가득하며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매일 당신 때문이라고 부부싸움은 그칠 줄 모르고 자녀들은 이런 모습을 보다 견디지 못해 마음은 멍들어가고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가출을 하고...
그렇다면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인생을 포기하고, 가정을 포기하고, 계속 사탄의 지배 속에 고통 받으며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새롭게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의 통치 영역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제가 여기까지 설교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이찬양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 면은 / 사막이 꽃동산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무슨 말입니까? 오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의 통치에 들어가면 어둠은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찾아오고, 사막과 같은 내 인생, 내 가정에 시냇물이 흐르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아내가 자녀들이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변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온전히 그 분의 통치에 들어가느냐 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를 찾는 자들은 동방박자뿐 아니라 헤롯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절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왜 찾느냐? 찾는 이유도 똑 같습니다.
8절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여러분 보세요. 겉으로 보기엔 메시아 앞에 경배할 것 같은 목적으로 찾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다른 목적을 갖고 찾고 있습니다.
마2: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누가 동방박사인지 누가 헤롯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구분이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조용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왜 찾는가? 나는 무슨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고 있는가?
혹시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지만 지금은 변질이 되어 헤롯과 같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왜 찾는가? 이것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왜? 예배를 드리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6:1절로부터 쭉 보시면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도 예수님이 안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 저리 수소문을 해보니 아,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건너편 가버나움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왜 예수님을 그토록 찾은 줄 아십니까?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여러분 혹시 이것이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내 배 부르기 위해서, 내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내 목적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성공해서, 잘 살기 위해 주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이러한 목적으로 주님을 찾는다면 우리는 잘못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무슨 말입니까?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예배하기 위해 주님을 찾았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찾는 이유도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찾아야 합니다. 경배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것 외에 다른 불순물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기복신앙, 기복신앙 하는데 기복신앙이 뭔가 하면 주님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으로 주님을 찾는 것이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동방박사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늘 예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내 삶에서 일어난 일을 영적인 것으로 연결시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별에 대한 전문가 들입니다. 그들이 동방에서
본 것은 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별을 무엇으로 연결시키고 있는가 하면 메시야의 탄생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러기 위해서 구약에 예언한 메시야 탄생에 대한 말씀에 능통해야 합니다.
민24: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박사를 영어로 wise man(와이즈맨) ‘지혜자’라고 부릅니다. 무슨 지혜입니까?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영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 우연히 20년 전 친구를 만났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냥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은 이 만남을 영적인 것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친구를 왜 만나게 하셨을까?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그 환경을 영적인 것으로 연결시키느냐 못하느냐 차이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환경을 영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는 예배자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동방박사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늘 경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지금 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헤롯의 영향으로 7절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향으로 12절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헤롯의 영향과 하나님의 영향...여러분, 오늘 이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도록, 신앙생활도 적당히 타협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정직하게만 살아, 눈먼 돈 못 빼 먹는 게 바보지, 신앙생활도 주일성수도 형편 따라 적당히 하는 거야, 교회를 섬기는 것도, 헌금도 너 형편 생각하면서 적당히 하는 거야, 세상은 명령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주어집니다.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헤롯의 영향을 받지 마라,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이 두 영향권 사이에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세상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헤롯과 같은 사탄의, 세상의 영향력이 득세하는 시대입니다. 미혹의 영이 득세합니다. 이 시간 예배에 나와 앉아 있지만 사탄은 끊임없이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예배에 집중하기 못하게 하고,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넣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고.. 여러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단지 사탄아 물러가라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마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박사들처럼 하나님의 영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펼쳐보면 성경 안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아시죠?
영적 전쟁에서 승리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야 승리합니다.(아말렉과 전투, 여리고성 전투)
사무엘상 4장 - 블레셋과 전투 4000명 죽음,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지 않고 자기생각의 지시를 받은 결과 삼만명이 죽음, 엘리의 두 아들 홉니 비느하스도 죽음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파렴치한 죄를 짓고 또 그 죄를 감추기 위해 남편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 몬 것, 그런데 여러분 다윗이 엄청난 죄를 어떻게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면, 하나님의 권면이 다윗을 회개의 자리로 이끈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베드로 그는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지시함을 받았기 때문 아닙니까? 마찬 가지 아닙니까? 우리 인생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기 가운데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구체적인 경험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해야지만 헤롯왕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것으로 끝나면 무슨 소용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내 삶의 아무런 영향력 없는데, 이론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성경의 지식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지 못합니다. 성경지식이 나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이끄심, 분명한 하나님의 이끄심, 그래야 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동방박사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늘 예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예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 중에 황금은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순결을 그리고 ‘몰약’이 있는데 이 ‘몰약’은 장례식 때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 사용하는 것이 몰약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애 돌잔치에 가서 장례식 때 사용하는 물건을 선물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경배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왜 오셔야 했는지,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음을 정확히 알고 경배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예배도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냥 덮어 놓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왜 오늘도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왜 찬양을 하는지, 왜 기도를 하는지, 왜 헌금을 하는지, 왜 말씀을 듣는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4, 5장은 하늘나라의 예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를 예배합니다.
1.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계4장)
2.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합니다. (계5장)
사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해도 창조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방대한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에 별로 실감이 나질 않을 것입니다.
저는 창조자 하면 먼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해 만들어진 존재구나 라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탈선이 심각한데 그 주범이 뭐냐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려서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노래는 하는데,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어쩌다보니, 우연히, 실수로 태어난 것 갔기도 하고, 그래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들이 탈선의 주범으로 작용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자 하나님이시구나를 알 때 아! 나는 어쩌다 실수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5장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성자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여러분 예배는 십자가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가 예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 하면 먼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사람도 자기가 희생할 때나, 투자할 때는 뭔가 기대치가 있거나, 가능성이 보일 때 하지 않습니까? 아무런 기대감이 없는데 누가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하겠습니까?
그런데 저를 돌아보니 나를 살려놔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될 것 같지 않는데 나를 살리기 위해 주님이 대신 죽으셨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했던 말,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다 내 마음 중심에서 나온 고백이 뭔 줄 아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이렇게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가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서게 되더라구요.
저는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어쩌나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요,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낸 자 인 것을 늘 묵상하십시오,
또한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지신 십자를 늘 묵상하십시오. 누구에게 들었던 속상한 말 그런 영양가 없는 말들을 묵상하지 마시고, 오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 십자가를 늘 바라보고, 그 십자가를 늘 마음에 품고, 새기고, 그 십자가를 늘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결단 하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예배는 더 회복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찬양으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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