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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교회의 기초

03.21세기 신약교회를 세워가는 삶(행2:37~47)

by 오용주목사 2016. 1. 30.

03. 21세기 신약교회를 세워가는 삶

2:37~47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들은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도 저런 대형 교회를 세워야지, 나도 저런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되어야지 이런 꿈을 가집니다. 이런 꿈은 성도들도 거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떡하던 큰 교회로 만들어 그것이 자부심이 되는 그런 꿈을 꾸는 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만약 우리가 이곳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린 목적도 큰 교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첫 출발부터 잘 못된 것일 겁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교회에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왜 교회를 시작하였는가?” “우리교회는 주님이 설계한 교회의 설계도대로 시작하고 있는가?

 

지상의 교회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교회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 사도행전이 말하는,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 교회, 교회의 설계도면에 나타나 있는 바로 그 교회를 향해 출발되어야 합니다.

 

그 초대신약교회의 모습은 행복, 변화, 분배,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었습니다.

결과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이것이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며, 우리가 가야할 방향성입니다. 이것이 21세기 신약교회 회복을 꿈꾸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미션, 해야 할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초대교회의 모습인, 행복, 변화, 분배,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살펴보니 초대교회는 가정교회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교회를 보면 로마에는 로마교회 하나, 에베소지역에는 에베소교회 하나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성도들은 어떻게 수용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로마전역에 평신도의 집에서 평신도가 목회를 하는 가정교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이것을 통칭해서 로마교회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오늘 교회에서 구역, , 다락방, , 목장, 오이코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이 가정교회를 본떠서 만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구역과 가정교회는 다릅니다. 구역은 성도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나누어 놓은 것이라면, 가정교회는 여러 지역 평신도의 집에서 평신도가 월~주일까지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섬겨주고, 기도해주고, 이끌어주는...그래서 가정교회는 교회의 부속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구를 나누고, 오이코스를 나누는 이 모든 것들이 관리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들을 섬기기 위한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로 모일 때나 앞으로 오이코스로 모일 때 이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이코스는 하나의 교회이고 순장은 목회자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분들이 가정교회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가?

 

1.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삶 공부)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설교하니 하루에 3000명 믿게 되었죠? 이들을 방치를 한 것이 아니라 3가지를 하였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무슨 말입니까? 이들이 교리 공부를 한 것이었겠습니까? 이들은 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교리는 잘 알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들의 관심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우리 교회로 말하면 삶 공부를 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공부에서 삶 공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안 베이스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애기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뭔 줄 아세요? 성경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지 않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너희는 사랑해라, 용서해라 이것 몰라서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경공부를 통해, 남편의 의무, 아내의 의무, 부모, 자녀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아는 것과 삶과 하나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래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삶 공부입니다. 삶 공부는 우리 교회의 세 축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축입니다.

 

2.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오이코스)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떡을 떼며 - 성찬 -거룩한 식사 - 이것을 통해

음식을 먹고 -식구 - 식사를 통하여 . 함께 밥을 먹어야 진짜 가족이라는 것이죠.

 

집에서 모여 성찬을 하고 식사를 했다는 말입니다.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가 되며, 식사를 통해 한 식구 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냥 사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됐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식사를 통해 우리는 가족, 한 식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분명 가족으로 올려져 있는데 밥을 같이 안 먹는다, 이것은 진정한 가족은 아닙니다.

 

2014~2015년 초까지 우리 안방극장을 따뜻하게 했던 가족끼리 왜 이래아버지 차순봉시가 딸 강심, 아들 강재, 달봉이를 상대로 불효소송을 거는 데 취소하는 조건중 하나가 뭐가 밥 같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식탁교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밥을 같이 먹는 다는 것은 용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정현이 야단치고 한 일이 뭐냐? 밖에 나가 같이 저녁을 먹은 것이었습니다. 이 것은 용서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같이 식사를 하면서 형제 자매들에 대한 미움, 시기, 질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서로 한 상에서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초대신약교회로의 회복은 가족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여지는 가족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점심 식사하기 전에 혹 서로 용서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먼저 용서하고, 용서를 빌고 식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더라. (예배)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기도 - ) 프로슈케 -> 프로슈코마이에서 유래 -> 프로슈코마이 는 두단어 합성어인데 1) 프로스 : ~을 향하여 2)유코마이 : 구하다, 즉 하나님을 항아여 구하다, 바라다의 뜻으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 겁니다.

 

초대교회에서 회심한 3,000명의 성도들이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서 믿음이 자라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은 이 세 가지가 구성이 될 때 자랍니다. 오늘의 문제는 이 세 가지가 흐트러져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삶 공부, 오이코스, 예배의 균형을 맞추자는 겁니다. 이 때 사람은 자란다는 것이죠. 인간은 이 세 가지가 균형이 맞춰져야지 변화든지 믿든지 뭔가 일이생깁니다.

 

안 믿던 사람이 믿을 때나, 믿는 사람이 뭔가 헌신이 생길 때나, 내가 변할 때도 이 세 가지가 맞춰져야 합니다. 인간은 지, , 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지적인 것이 채워져야 하고 그리고 정이 채워져야 하고 의지가 채워져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되는 것이 삶 공부, 오이코스, 예배입니다.

어떤 곳은 성경공부 만 -> 이런 곳은 지적인 것은 발달하는데 삶이 변화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적인 요소 만 -> 찬양하고 부흥회, 정은 터치가 되는데 사람이 감동은 잘 받는데 기복이 심합니다. 안정적 신앙은 안 됩니다.

의를 중요시하는 하는 교회 - 사회봉사 같은 것은 열심히 하는데 정말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삶 공부에서 정말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가? 배우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배워가고, 그런 다음에 오이코스에 가서 실천 하려고 노력하고, 안 믿는 사람을 초대하고, 삶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섬기고, 그러다 오이코스에서 의문이 되는 것을 삶 공부에 와서 풀고 그러고 예배에 와서 정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될 때 우리가 정말 변화가 됩니다.

 

사실 주일날 예배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주중에 삶 공부에서 배 운 대로 살아 보려고 애쓰고, 오이코스에서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고, 또 전도를 하다 상처도 받아보고, 실패도 해보고 그러다 주일이 되어 주일 예배에 나오면 그렇게 은혜가 됩니다. 찬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그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다 토요일이 되어서 어! 내일이 주일이네 하고 주일날 예배에 앉아 있으면 그러면 별 감동이 없어요.

 

그래서 예배의 은혜는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압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배의 은혜를 주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합니다.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고, 찬양팀을 열심히 꾸미고, 이런 게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아닌데 정말 예배의 은혜는 성도들의 삶에서 옵니다.

 

성도들이 일주일 동안 교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아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잊어버리고 세상에서 살다가 주일날 와서 예배를 드릴 때 절대 예배에 은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내가 죄와 싸우고 승리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섬기다가 오는 예배에서 은혜가 있더라고요. 그러니 정말 예배에서 승부가 납니다.

 

전도대상자가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것도 예배에서 옵니다. 예배를 정말 잘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토요일 날 예배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준비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이런 마음으로 변해가야 합니다.

 

신약교회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했더니 43~47절까지는 그렇게 살았더니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애기하고 있는데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살았더니 처음에 나타나는 것이 무었인가하면?

 

1) 경외로운 공동체였다는 겁니다. 초대교회는 정말 경외심이 느껴지는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경외심이 나타나는 공동체를 꿈을 꿔야 합니다. 놀라운 표징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이코스에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정말 조그마한 공동체에서 몇 명이 모여서 정말 가족 간의 사랑을 누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이들이 기적을 구했는데 왜 구했는가? 기적 자체를 위해서 기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전도대상자들을 위해서 기적을 구했다는 겁니다. 정말 우리 공동체가 안 믿는 사람들이 와서 놀랠 수 있도록 이런 역사를 주옵소서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교회를 오이코스를 그런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곳으로 만들어 가봅시다. 그래서 정말 기도가 응답되는 교회, 이론이 아니라 정말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기도 응답이 일어나는 교회를 만들어가 보자는 겁니다.

 

다현 수술 - 기도

 

우리 교회나, 오이코스에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 주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입니다. 문제를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에 대한 기대를 가지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2)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말은 공산주의를 만들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 같다 팔아 그 돈을 놓고 다 나누어 썼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주고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이 나누어 쓰게 했다는 말입니다. 공유하게 했다는 것이고, 자기 집에 지내게 했다는 말이지 자기 물건 다 팔아서 완벽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한 것이 뭐냐? 자기 집에서 사람들을 대접하고 재웠다는 겁니다.

 

이렇게 살았더니 행2:46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정말 이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 진겁니다. 정말 이렇게 살면 행복합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라는 겁니다. 이 삶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옵션으로 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라 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살아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이렇게 살았더니 정말 영혼이 구원되더라는 겁니다. 정말 세상은 아름다운 공동체에 끌리게 됩니다. 정말 우리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면 세상은 우리를 칭송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옵니다. 사랑하면 오게 되어있습니다. 왜냐? 이 사람들은 외롭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교회나, 오이코스가 필요한 것 1)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2) 기도응답이 만들어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1)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사랑의 많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가족이 되어야합니다.

가족이 되려면 먼저 웃음이 나오고, 즐겁고, 기쁘고, 신나야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면 그렇습니까? 안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은 가족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주일날 한번 만나서는 가족이 안 만들어져요. 특별히 주일날 한번 교회에서 만나가지고는 절대로 가족이 안 만들어집니다. 예배 온 김에 그냥 만나지 뭐 - 이건 구역입니다. 이건 책임 때문에 만나는 것인데, 책임감 때문에 한번 만나라 하니까, 한 번 모여서 애기 하라 하니까, 그래 만나면 절대 가족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가족이 안 되고요, 정말 만나고 싶어서 만나야 합니다. 집에서 모이고 또 만나고 이렇게 만나고 저렇게 만나고 이래야 됩니다. 여러분 한번 가족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집집을 방문 하고, 집에서 떡을 떼고, 교제하고,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그렇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2) 기도 응답을 맛 봐야 합니다.

 

교회는 오이코스는 기도가 응답이 되어야 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온 지체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가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기도 응답의 체험이 없는가? 그건 기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고서도 기도를 믿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기도를 안 믿어요.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체면이 있으니까, 기도는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그런데 이 기도는 체면상 하나님께 하는 기도이고 나머지는 전부 자기가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10% 자기 90% 그래서 내가 사람 만나고, 변호사 만나고, 해결해 줄 사람 찾아다니고, 막 뛰어 다녀요. 그러니 기도의 기대가 없기 때문에 오이코스 모임에 와서도 애기도 안 해요. 자존심 상하거든요. 아무 문제없어요, 하고 가만히 있어요. 이거 기도를 믿는 겁니까?

안 믿어요. 기도를 안 믿어요. 믿는 다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체면상 기도하는 겁니다. 10% 하나님께 기도, 90%는 자기가, 그래가지고 문제가 해결도비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 할까요? 체면상 감사하지만 실제로는 안 감사해요. 내가 감사하죠, 해결해준 사람이 감사해서 찾아가 감사 인사하고.... 그런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건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90% 10% 자기, 그렇다고 나는 나자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은 다해요. 찾아갈 사람 찾아가고, 부탁 할 사람 부탁하고 뛰어 다니고 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대한 마음은 10%에요. 내가 이걸 하지만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믿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응답이 되 잖아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고맙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별로 안 고맙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러면서 신앙이 자라갑니다. 기도(하나님)를 믿는 사람들이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오이코스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나, 오이코스 모임에서 기도의 승부를 내는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낮은 마음으로 같이 기도하고, 그러면서 가족이 되고 그 안에서 기도응답의 기쁨이 있고, 그러면서 호감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가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에게 호감을 느끼는 1순위가 성품이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급해요, 기쁨이 없어요, 온유하지 않아요, 참을성이 없어요, 인내하지 않아요, 그런데 크리스천이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고, 인내가 있고, 여유가 있고, 친절이 있고, 이러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달리 봐요. 그래서 우리가 성품을 바꾸려고 굉장히 노력해야합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급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시기, 질투가 없어지기를 기도해야 합합니다. 시기 질투는 남을 자꾸 칭찬하면 고쳐집니다. 남을 진정으로 칭찬할 때 고쳐집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해, 난 그렇게 못하는데.. 칭찬하면 내게 있는 시기와 질투심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성품이 조금씩 변하면 안 믿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게 됩니다.

 

가족이 평화로운 가족이 되면 오지 마라해도 오게 됩니다. 전도대상자에게 호감을 주는 가족이 되려면 정말 부부지간에이 좋아야 합니다. VIP앞에서 절대 남편(아내), 자녀들 흉보지 마세요. 이건 정말 덕이 되지 않습니다. 남편들에게 잘해주세요. 그러면 끌려요. 그런 사람이 오라면 가보고 싶어요. 남편도 아내에 잘해주고 배려해야 합니다. 같이 걸어가면 먼저 가버림, 차문을 열어줌,

 

VIP를 찾아야 합니다. 관계전도는 나와 상관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맺은 다는 것을 말합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세요. 일요일 날 뭐하세요? 골퍼 쳐요, 그럼 안 믿는 사람입니다.

 

 

 

 찬양 :  수많은 무리들 줄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