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우리가 꿈꾸는 교회공동체
행 2:37~47
제가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신앙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지가 올해로 56년이 되었으며, 목사안수를 받은 지 23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목사 안수 받기 전 32년을 그렇다 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23년의 짧지 않은 시간을 목회를 하면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몇 가지 문제(고민)가 있습니다. 아마 이 문제는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모인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1.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원래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 행복한데 뭔가 잘 못되고 변질되어서 행복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처음 유산균 음료가 출시되어 그것을 먹었을 때 어떤 맛이었습니까?
뭔가 맛이 상한 것 같아서 이게 상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맛인지 헷갈렸죠?
그렇다면 우리 신앙생활의 원래 맛은 어떤 맛일까요? 성경은 신앙생활은 이런 맛이야 라고 말씀한 곳은 없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행2:38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히 설교를 하죠, 행2:41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그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게 되었죠. 행2:42 그리고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기를 힘쓰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므로 행2:47 결과, 하나님을 찬미하고 백성에게 칭송을 받고,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되었다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기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어떠했다고 생각하세요? 불행해 보이세요, 하기 싫은데 마지못해 억지로 한 것 같습니까? 아니면 행복해 보이세요? 당연히 행복했죠.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의 진짜 문제는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신앙생활은 이런 맛이야 라고 맛보여준 그 맛을 아에 맛을 모르거나, 조금 맛을 보았는데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맛이 본래의 맛이라고 생각하고는 본래의 맛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겁니다.
예) 착한 식당 검정단의 말 / “이 맛이 본래 맛인데” MSG 첨가로 참 맛을 잃어버리 겁니다.
그렇다면 초대신약교회 성도들의 행복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거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오는 행복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도 요 10:10에서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고 애기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애들아 이리 모여 봐,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너희에게 온 이유를 말할 텐데 잘 들어봐, 그것은 말이야 너희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위해서 내가 왔단다, 그러시는 거예요.
여기 “생명”은 하나님의 실재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보호, 공급, 회복, 치유, 도우심, 기도응답 등등,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 가운데서 운행하시면서 역사하시는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 이브라함, 다윗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풍성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보호, 공급, 회복, 치유, 도우심, 기도응답으로 인해 행복한 상태가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한 것입니다.
<나는 행복 합니다> (윤항기)
나는 행복 합니다. 나는 행복 합니다. 나는 행복 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 합니다
윤향기 목사님, 윤복희 권사님, 어릴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아편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어린 두 남매가 얼마나 가난과 싸워야 했는지, 언젠가 윤향기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이라고...이랬던 분이 뭐가 행복할까요? 하나님의 생명의 풍성으로 인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주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위해 목자로 오셨다고 애기하셨는데 양들과 그 양들의 모임인 교회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제가 목회를 해오면서 지체들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이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에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도, 목회자도, 가정도, 오이코스도, 교회도 ...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한 신앙생활이 가능할까요? 초대신약교회로 돌아가는 겁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지금의 신앙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정말 신앙생활의 맛인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한 그런 꿈을 함께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2. 예수를 믿어도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겁니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두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분의 변화요 다른 하나는 삶의 변화입니다. 신분의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삶의 변화는 아이가 태어나 점점 자라가듯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어느 정도 닮아 가느냐 하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닮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은 고사하고, 도대체 사람이 변하는 것이 있어야지요. 수 십 년을 신앙생활해도 안변하는 겁니다.
성경은 “너희가 변할 거야, 얼마만큼 변할 수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변할 수 있어”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머릿속에는 예수를 믿어도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 인처럼 박혀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왜 이렇게 성숙도가 없을까요?
내 모습을 봐도 썩 잘 자리지 않은데 왜 이럴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분! 정말 변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교회가 원래 주님이 다자인 하셨던 교회로 회복되고 그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아가면 가능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교회가 회복되고 그래서 예수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꿈을 함께 꾸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 사람 정말 변했어 라는 이런 소리를 들어보자구요.
3. 예수를 믿지만 교회의 지체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고전 12:27-28)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 12:28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요,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요, 관리하는 사람이요,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사역의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모든 사람은 각 사람의 은사를 가지고 정말 지체가 되어서 섬긴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교회 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목회자들과 몇몇 사람들만 일해요. 나머지는 구경꾼 (80% 구경꾼, 20%만 섬김)
1인 1사역
그런데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말 큰 문제는 교회에 와서 열심히 일은 하는데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다는 겁니다. 열심히 교사로, 주방에서, 주차장에서, 성가대로... 그런데 한 켠 마음은 늘 허전해요, 열심히 뭔가는 하는데 마음속 한쪽에선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올인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있는 겁니다. 이건 아닌데....
왜 일까요?
1)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2) 새 생명이 잉태되지 않아서 (영혼구원이 빠져 있어서) 그래요,
옛날 어떤 여인이 시집을 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겠습니다. 밥, 빨래, 청소, 시부모님 모시고... 죽을힘을 다해 일하고 섬겼는데, 늘 한쪽 마음에 허전함이 있고, 죄스러움이 있단 말입니다.
왜 일까요?
1) 남편하고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그래요
2)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래요.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도 죄스러운 겁니다.
사실 우리 몸의 여러 지체들이 각기 자기 위치에서 자기 기능을 발휘할 때 건강하듯이 저는 우리교회가 모든 지체가 자기의 기능을 따라 자기의 위치에서 사역함으로건 건강한 교회가 되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4. 예수를 믿은 후 하나님의 임재, 복음의 능력이 경험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마 28:20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여기 “주께서”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란 말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말합니다.
그럼 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필요한가?
함께 하셔야만 내 문제 해결 되고, 내가 잘 되니까?
이런 분은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미성숙한 분입니다.
성경에서 내가 함께 하겠다는 말씀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님께 당신을 나타내실 때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지금 말로하면 전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한다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으니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이 잘 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박명화 성도 시어머니
노애순 성도 아버님전도
김만규 성도 장인
삼성병원 의사 시아버님(변호사, 건국대 병원 VIP병실)
이 4가지 안에 오늘날 현대교회, 가정, 개인의 모든 위기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위기입니다. 위기니까 그다음엔 어떻게 되느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습니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증오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증오심을 폭발할 때 보면 섬 뜻, 섬 뜻합니다. 우리 한태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보세요, 초대교회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것이 교회의 본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어쩌다 교회가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는 겁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않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교회를 바라보며 증오심을 느끼는 것은 너희들하고 우리하고 차이가 뭐냐는 겁니다.
너희들도 똑같이 부정하고, 너희들도 똑같이 세상 욕심가지고 살고, 너희들도 똑같이 성공을 위해서 살고 있으면서 도덕적으로 나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예수 믿는 것 그것 하나 때문에 너는 천국가고 나는 지옥 간다고 들먹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이것이거든요. 그래서 분노가 일어나는 겁니다.
신앙의 행복은 잃어버리고, 삶은 변하지 않고, 교회생활은 하지만 여전히 구경꾼처럼 왔다 갔다 하고, 영혼구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하나님의 임재는 경험되지 않고... 여러분! 지금 우리는 이런 영적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다보면 나중에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건가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제일 먼저 뭐라고 합니까,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지난 한 주 동안도 죄 중에 살았습니다. 물론 무슨 의도로 한 것 인줄 알지만 그 기도의 베이스에는 죄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죄의식에 깔려 있다 보니 신앙생활이 재미있을 리가, 행복할 리가 없죠.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요. 제가 한번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내님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어요? 여러분 그것 아시오? 죄의식은 내 신앙과 내 삶이 동떨어진 괴리감에서 나온다는 것을.....
왜 전도를 안 하는 줄 아세요, 내 스스로가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는데, 행복하지 않는데, 내 스스로가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누구를 전도합니까? 그런데 뭔가 어디를 가보고 재미있었으면 막 전도하고 다니잖아요, 너도 꼭 한번 가봐... 그런데 예수님은 전하지 않아요. 왜?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런 교회의 모습에서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은 교회 본질로 돌아가 보자라는 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4가지 모습이 교회의 모습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처음 디자인 하셨던 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해 보자라는 겁니다. 그런 꿈을 함께 꾸자는 겁니다.
내가 한사람이 회복되고 변해가고, 똑바로 서면 내 가정의 분위가 변해가고, 내 가정이 변하면 내 이웃이 변하게 되고, 내 이웃이 변하면 한 도시가 변하는 이런 꿈을 한번 꿔보자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까?
당신은 왜 맨 날 이 모양이야, 투덜거리고, 욕하고, 성질내고, 오늘 목사들이 왜 이 모양이야, 교회가 왜 이래...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투덜거려서 그들이 변했습니까?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소금과 빛 아닙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
소금이 되어라,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이미 소금이고, 이미 빛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이미 소금이고 빛이니, 내가 내 가정에 마음을 두고, 내 교회에 마음을 두고, 내 이웃에 마음을 두고, 내가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그들이 변하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는 겁니다. 교회가 교회다워 지고, 목회자가 목회자다워 지고, 평신도가 평신도다워 지고, 우리가 그런 교회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아내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남편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자녀를 위해, 교회를 위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이 곳에서 눈물도 흘려보고, 상처도 받아보고, 그렇게 살다 훗날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러분 이 문장에서 시냇가가 뭘까요? 하나님의 복의 수원지, 교회입니다. 교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의 그림을 그려준 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시냇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원지는 말라 버렸습니다. 그런 곳에 뿌리를 내리니, 열매도 못 맺고, 흔들리고, 잎사귀의 색깔이 변하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찬양 : 우리 함께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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