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12. 07.하나님의 진노의 심각성
롬1:18-23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로마서1:1-17절은 바울의 인사말과 로마서 서론에 해당하는 말씀이고 오늘부터 살펴보게 될 18절부터가 본격적인 로마서의 본론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시작되는 로마서 본론이 어떻게 시작되는가하면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말씀처럼 로마서의 시작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쏟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인사말과 서론에서 유앙겔리온, 기쁜 소식인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본론이 시작되는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는 무서운 말로 시작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복음이 기쁜 소식이고 구원의 능력이라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구원받기에 기쁜 소식이라는 것인지 설명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은 것이기 때문에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감기에서 나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소식과, 암에 걸려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너는 암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소식은 분명 엄청난 경중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의 본론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라는 무서운 말로 시작하는 것은 과거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절망적이며 치명적인지, 그리고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없는 이런 끔찍한 상태에 빠져있음을 먼저 우리가 자각함으로 우리에게 복음의 필요성을 알게 하기 위해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제일먼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 왜 진노하십니까? 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는 존재입니까?
1. 불의로 진리를 막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여기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예들 들어 쉽게 설명하지면 이렇습니다.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마음을 가집니까? 당연히 분노합니다. 왜 분노하죠? 일본이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인 것을 몰라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인 것을 일본이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음에도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자기의 국가적 유익을 위해, 청지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이것을 가리켜 불의로 진리를 가로막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는 존재인지 아시겠죠?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북한이 6.25는 북침이라고 불의로 진리를 가로막듯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의로 진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있어서 진리가 뭡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면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면서고 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 된 삶을 사는 것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 나는 몰랐는데 그런 핑계가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너나 할 거 없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요?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속에 하나님 자신이 넣어준 하나님에 대한 타고난 지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신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압도할 만한 신비로운 자연 속에 처하게 될 때나,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 봉착할 때에 하는 말 오 마이 갓, 오! 하나님이라고 외칩니다. 불신자들도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찾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만이 죄의식이 있습니다. 죄책감이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죄책감이 없습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고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배가 불러 행복해 합니다. 여러분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동물들은 죄의식이 없는데 왜 유독 사람에게만 있을까요? 대답은 뻔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만이 신과의 관계를 바로 맺으려는 열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돼지가 신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고 열망하면서 예배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다릅니다. 신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멸망이 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욥32: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여기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 화가가 그린 그림은 불리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 그림에는 그 화가의 인격과 숨결과 영감이 다 그림에 표현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심어 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두바이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버즈 두바이) 라는 빌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빌딩이 어느 날 저절로 생겼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설계를 하고 만들었기에 그곳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우주가 저절로 생겼다. 진화했다 말도 안 돼는 이론이나 학설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몰아내 버리는 겁니다. 내 인생에 들어오지 말라, 개입하지 말라, 상관하지 말라 거부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우리 양심에 이성에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내가 만든 우주만물에 내 신성과 능력이 안 들어간데 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 거부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겁니다. 알고서도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겁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면서고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줄 아세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셔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죄 아닌가요? 하나님이 계신다고 여행을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신다고 취미 생활을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셔서 못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죄, 의도적인 죄인 겁니다. 하나님은 간음은 죄라고 하는데 간음을 즐기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부인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런 변명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진리를 거절하고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상과 이론과 경험과 합리적인 것으로 거부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기에 해당사항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는데 없는 것 같이 생활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후욕하고, 하나님이 분명 살아계시는데 죽은 하나님처럼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염려, 걱정, 두려워하고 이게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이 분명 계신데 그분의 통치 받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인데 내가 주인 되어 살고.... 왜 그럴까요? 왜 하나님이 계시는데 안 믿나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불경건과 불의 때문입니다.(18절)
1) 그럼 불 경건의 뭐고 불의는 뭐냐?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18절을 다시 보세요.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불의로 진리를 막는 원인이 무엇인가? 즉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무엇인가?
18절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데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데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하나는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우리 말로하면 불 경건, 이 불 경건이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고요, 또 하나는 뭡니까? 불의, 불 경건과 불의 이 두 가지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겁니다.
18절에 “경건하지 않음”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godlessness(가드니스네스)로 신을 믿지 않음, 마음에서 신을 내 보낸 상태로 불 경건을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 경건이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마음의 태도, 이게 불 경건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하는 마음의 욕구 이게 불 경건입니다. 이 불 경건이 불의로 진리를 막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쏟게 하는 원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창3장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 중앙에 두신 이유를 아시죠? 지금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실물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열매를 너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지만 그러나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 열매는 절대 따 먹지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네가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지만 이건 내 것이 아니다. 이건 내가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따로 계시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인생이다. 이것을 자각하며 살도록 한 조치가 선악과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님의 조치를 무시하고 먹지 말라 명한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열매 하나 따먹고 안 따먹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에서 거부하고 쫓아내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불 경건이고 이 불경이 하나님의 진노를 쏟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자기중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 역사를 보면 한 나라에서 가장 큰 죄가 바로 역모를 꽤하는 것 아닙니까? 왜 이 죄가 가장 큰 죄인 줄 아세요? 바로 임금을 더 이상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죄 중에 가장 본질적인 죄, 오리지널 씬이 뭔 줄 아세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 하는 것입니다.
불 경건은 한마디로 의도적인 배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을 정직하게 연구하였더니,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의지를 먼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불의 때문입니다.
불의란 뭐냐? 쉽게 말씀드리면 불 경건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에서 내쫓은 마음의 상태가 불 경건이면 불의는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들, 하나님을 마음에서 쫓아내 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들 이게 불의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에서 내쫓으니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해지고, 어리석어 지고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또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해지고, 어리석어 지고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데 어떤 문제입니까? 바로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김 당합니다. 이런 자들은 마음의 주인이 마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귀에게 마음을 내어 주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싫고 마음대로 죄짓고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자 보세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니 마귀가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니 나나 타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게 불 경건 아닙니까?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불경건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보세요.
롬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것을 사도바울은 딤후에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딤후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여러분 위에 나타난 증상을 요약하면 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자기자원
2) 자기목적
3) 자기방법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면 별수 없습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나와 앉아서 예배드리지만 마음은 마귀에게 빼앗겨 버리고 겉으로만 예수 믿는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예배 참석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헌신, 봉사도 하지만 여전히 자기 자원, 자기목적, 자기방법을 따라 사는 자로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이게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케리비안 베이)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각해야합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불경건의 현실을 보면서 불의를 보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 가고, 그 진노가 가득차면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다는 것을 자각해야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자각하고 있습니까? 아 나는 죄인이야, 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아는 것과 자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자각 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 상태가 우둔하고 미련해 스스로 자각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마24:38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여러분 요즘 환경오염이 심각한데 그 심각한 것 중에 더 심각한 것이 미세먼지 아닙니까? 그런데 이 미세먼지는 우리 오감으로는 자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떠합니까? 스마트 폰에 메세농도 어플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상태가 너무나 미련하고 우둔한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영적인 어플이 두 개 있데 하나는 성경을 통해 자각할 수 있습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 이다
그래서 지난 한해 우리가 했던 것이 5가지 말씀운동 아닙니까? 말씀통독, 말씀묵상, 말씀암송, 말씀필사, 말씀실천 아닙니까?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자각할 수 있도록 주시는 어플이 뭐냐? 주의 종들의 경고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역할이 다 그런 것 아닙니까? 나단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그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1년이 되도록 가책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다윗이 어떻게 자각해서 마음이 무너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나단 선지자, 이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가서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놓고 있습니까?
삼하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헤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헤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등골이 오싹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단이 전하고 났더니 1년이 가도록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가책을 못 느낀 다윗이 무너지잖아요.
오늘 저나 여러분이나 죄를 범한 다윗이나 공통점이 뭐냐? 우리는 영적으로 우둔하여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이게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짓인지, 이게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놓게 하는 것인지 전혀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성경을 여러분에게 주시고, 한편으로는 저 같은 종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각성을 듣게 해 주시는데 문제는 나단이 없어지는 겁니다. 설교를 들어보면 나단 역할을 그의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그런 소릴 싫어합니다. 1주일 동안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살다 주일날 교회 왔는데 위로의 설교를 해 줘야지 그러니 목사들은 성도들이 상처 받을 까봐 나단 같은 설교를 못해요.
저는 여러분에게 심각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에게는 나단 같은 분이 주변에 있습니까?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있다 경고하듯 여러분에게는 바울 같은 경고 자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까?
바울은 로마서 본론을 시작하면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가?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무슨 말입니까? 불 경건과 불의로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가고 있다는 겁니다. 불 경건이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마음의 태도, 이게 불 경건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하는 마음의 욕구 이게 불 경건입니다.
불의란 뭐냐? 불 경건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에서 내쫓은 마음의 상태가 불 경건이면 불의는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들, 하나님을 마음에서 쫓아내 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들이 불의입니다. 이 불 경건과 불의가 불의로 진리를 막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쏟게 하는 원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는 쌓아지는 것입니다. 죄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죄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세월이 지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월이 약이다 하는 사람이 있는데 세월이 약이 아닙니다. 여러분 내가 죄를 잊어버리고 사람들이 잊어버렸다고 그 죄는 없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쌓여지고, 진노는 쌓여지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고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절대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한다는 겁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대안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롬1:17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 입니까? 나는 죄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있는 존재이다. 내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복음이 필요한 존재이다. 이 복음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가 받을 진노를 대신 십자가에서 받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24시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늘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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