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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창세기

14.“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의 삶 (창6:13-22)

by 오용주목사 2016. 12. 6.

14.“그러나은혜를 입은 자의 삶

6:13-22

 

 

지난 주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노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해 하나님이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때 노아는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그러나” “그러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생은 딱 두 종류로 나눠집니다. 에베소서 2장의 말씀과 같이 허물과 죄로 죽어지만 그러나의 은혜가 입은 사람과 그러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아 뿐 아니라 우리 모두든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의 삶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보세요, 지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니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아닙니까?

 

여러분 노아가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얼마나 고민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를 구경하지 못한 노아였습니다. 그때는 이슬만으로도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노아에게 홍수심판을 말씀하면서 방주를 지으라는 겁니다. 도저히 노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납득이 가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노아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히11:7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노아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고 순종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방주를 짓고 방주 속에 들어가는 행위를 통하여 그의 믿음을 증명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나는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도 분명 세상과 구별되는 그 어떤 증거가 있을 거란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노아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겠다하시며 방주를 만들어 생명을 보존하라 하셨는데, 노아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실제 방주를 짓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게 무슨 믿는 것입니까? 마찬 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의 증거가 뭐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도 노아 홍수의 때와 같이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 경고의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한다고요?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3: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조롱거리로 삼습니다. 노아가 홍수가 온다, 회개해라 했을 때 사람들은 조롱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벧후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지금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기간이라는 겁니다. 노아의 홍수에서는 120년이었죠? 지금은 120년의 기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회개의 기간에 얼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불타는 종말을 눈으로 보는 자들이 성도고 그 종말을 보는 자로써 그 종말을 준비하는 거룩을 추구하는 순종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바로 믿음으로 방주를 짓는 자들이고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당 안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섞여있습니다. , 곡식과 가리지가 섞여 있습니다.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13: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13: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러면 곡식과 가라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벧전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곡식과 가라지의 차이가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라는 말입니다. 예배당에 나와 않아는 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을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라지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을 하되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말씀하시고 모든 식양을 말씀하셨습니다.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6: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오늘 노아가 만든 방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배가 아니에요. 쉽게 설명하면 옛날 사과궤짝 아시죠? 그렇게 생긴 것인데 크기가 축구장 길이보다 조금 더 길고 폭은 추국경기장 폭보다 조금 적은 크기의 사과궤짝인 거예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도 못한 배, 괴상망측한 배를 지으라는 거예요. 상식에 맞지 않아요. 더구나 방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 키와 동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이 하나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데 노아 마음대로, 계획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식양대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아마 노아가 자기 생각대로 방주를 만들었으면 일반적인 배를 만들었겠죠? 그런데 여러분 그 배가지고는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침몰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만들어야 홍수심판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을 했는데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공적으로 풍랑을 일으켰을 때 가장 오래 동안 가라안지 않은 배가 노아방주였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앙생활은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기분 따라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되는 거예요.

) 부부싸움 - 교회 안와요, 답답하면 기도하고, 괜찮으면 기도안하고, 기분 좋으면 찬양하고, 기분 나쁘면 입 다물고...

 

여러분 순종 이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는 것이 진정한 순종이라는 거예요.

우리 신앙생활의 문제도 봉사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방법대로 봉사하는 거예요. 군인은 군대식으로, 의사는 병원식으로, 사장은 사장식으로, 기업의 경영식으로, 주식회사 식으로.... 이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봉사가 아니에요.

노아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한신대로 다 준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했다는 겁니다.

 

2. 일상의 삶을 방주를 짓는 도구로 사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노아는 120년 동안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오로지 방주만 만들었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무슨 말입니까? 식량도 준비하라는 겁니다. 식량을 준비하려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일상의 생활도 동시해 합니다. 공부도 하지만 또한 신앙생활도 합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지만 또한 예배자로서의 예배도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신앙생활을 위해 일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노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노아는 신앙생활을 위해 일상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일상생활을 방주를 짓는데 도구로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삶이 그러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닮아가는 그 삶을 살기 위해 일도하고 공부도 하고, 교회생활도 하는 것이지 신앙생활이 일상생활의 수단이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를 자랑하고 성공을 위해 방주를 지은 것이 아니라 방주를 짓기 위해 나머지 일들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최선을 다해 일상의 삶을 삽니다. 여러분 노아가 대충 농사를 짓는다면 120년 동안 식량을 제대로 저축 못하니까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업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그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나에게 맡겨졌어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어가는 것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 세상의 것이 주된 목적이 되고 방주 짖는 것,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어져 가는 것 거저 우습고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게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인의 삶은 노아가 그랬듯이 우리의 뜻이 아닌 우리의 꿈과 비전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데 에 기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이 뜻이 우리의 삶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겁니다. 노아가 그 뜻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은 것처럼 우리도 그 뜻에 순종하여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바뀌어져가고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3.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늘만을 소망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노아 방주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창이 하나라는 거예요.

6:16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이 하나 있는데 꼭대기에 있는 거예요.

 

그 큰 배에 창이 하나밖에 없어요. 꼭대기에... 이 창은 공기가 들어오고 햇빛이 들어오는 정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방주 안에 있는 자는 하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늘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방주 안에 있는 자입니다.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방주 안에 탄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가 1년이 넘게 방주 안에 있어서면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살았듯이 우리도 하늘과 하늘의 것을 을 소망하며 사는 자로 지어져 가야합니다. 이 삶이 내가 방주 안에 있다는 유일한 증거여야 합니다.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이것이 방주 짖는 것이고 방주를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무슨 말입니까? 노아 홍수와 잘 비교해 보세요, 그 날 불의 홍수가 내릴 거야 그러면서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으라 했지만 우리에게는 뭐하라구요?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그러잖아요.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너희가 정말 바라보고 있다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것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는 것이것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성도들의 방주 짓기인 것이며 방주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4.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세상을 향하여 안타까움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경고의 메시지를 입으로 삶으로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벧후2: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성경은 노아를 가리켜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입으로 삶으로 전파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노아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 중에 가장 오래 동안 복음을 전했던 사역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한마디 하나님과 동행 했다는 말은 있는데 노아야 내가 싹 쓸어버릴 것이니까 나가서 회개의 메시지, 복음의 메시지를 네가 좀 전해 줄래라고 안했다니까요. 하나님은 내가 다 쓸어버릴 것이니까 너는 방주를 짓고 그 안에 들어가라 나머지는 내가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노아는 120년 동안 의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중을 헤아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한탄과 근심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그것도 달랑 하나만 지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머지는 다 죽이겠다는 것인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보면서 한탄과 근심의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하나님이 시키지도 안았는데 나가서 전하는 겁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고 이해하여 그 분의 심정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정은 이런 거라고 나타내는 겁니다. 이것이 그러나의 은혜를 입는 자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18: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18: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벧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하나님의 마음을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알았고 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조화입니다. 요나서에 그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잘 나타나있습니다.

 

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경고는 40일 후에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였습니다. 그 니느웨가 무너졌습니까? 안 무너졌습니다.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 세상을 항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어떤 사람들을 향하여 혹은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해서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떤 자세,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내가 이렇게 당하지만 너 심판 때 되면 큰 코 다친다,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향해서 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을 해되는 사람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당신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이 방주에 모두 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의의 복음을 전파했던 노아처럼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심장을 갖고 세상을 행해 가는 것입니다. 이 삶이 방주를 짓는 삶이요,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당에 나와서 종교행위 열심히 하는 것을 방주 짓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노이가 120년 동안 35천 톤짜리 방주를 지었는데 정말 노아하고 세 아들 넷이서 지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노아는 당시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노아만 방주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 무슨 말인가 하면 겉모습만 번드러하게 짓는 것은 방주를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받아 그것으로 말미암아 방주를 짓는 것이 진짜 방주를 짓는 것이지 그냥 나와 가지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이것은 언제든지 홍수에 쓸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주 짓기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차원에서 나온 방주 짓기면 그것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방주를 지으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주시니 하나님이 뜻하시는 그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삶, 이것이 21세기의 방주 짓기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삶이고, 자기 부인의 삶이고,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 입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1.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을 하되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 는 삶을 살게 됩니다.

2. 일상의 삶을 방주를 짓는 도구로 사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3.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는 하늘만을 소망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되어있습니다.

4. “그러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세상을 향하여 안타까움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경고 의 메시지를 입으로 삶으로 전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