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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 음성듣는 것

제6강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by 오용주목사 2016. 9. 16.

6강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지난 주부터 하나님의 음성과 성경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성경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대해서 잘 말해주는 구절이 시편 119편입니다.

시편 119편은 신구약을 통틀어 제일 긴 장입니다.

시편 119편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단순히 교리를 정립하는데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는데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도 그는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특별히 2.

“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0-11절입니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여기 보면 주님을 찾고 있고 주님을 알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시편 기자는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목적과 주님의 길을 알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12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단순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정리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의 율례를 배우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26-27절입니다.

“26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27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이처럼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시편에서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하나님의 목적을 알기를 하나님의 길을 알기를 사모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자칫 바리새인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실재로 그들의 교리는 옳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저들이 가르치는 교리는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은 그토록 성경을 잘 알고 열심히 묵상하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누구보다 잘 정리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그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모른 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며 대적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그들이 아는 지식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전적으로 타락한 자기중심적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먼저 그들은 성경을 통해서 교리적으로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2:17절 이하입니다.

“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이것이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바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537절입니다.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예수님에 관해서 하나님이 수없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해야 할 그들이 누구보다 더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대적하는 길에 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절입니다.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마태복음 2329절 이하입니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못들어도 성경을 믿기 때문에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은 올바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조상들이 잘못되었고 예를 들어 선지자 이사야나 예레미야가 옳았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못들었기 때문에 자기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 구박하리라.”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요한복음 16장에서 제자들에게 예언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치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보십시오.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너무너무 타락한 자기중심적인 삶이요 세상중심적인 삶이었습니다.

교리는 옳았습니다. 표면적으로 그들이 아는 명령은 지켰습니다. 규례는 지켰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삶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5절 이하를 읽겠습니다.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16절입니다.

“16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보십시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서 교리적으로는 옳을지 모르지만 자기들의 삶은 전혀 하나님의 길을 반영하지 않고 자기들의 욕심과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았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초대교회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1장을 보면 가룟유다가 자살했을 때 그에 대한 해답을 성경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가룟유다의 자리를 채워야 할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음성을 들었습니다.

2장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과 예수님이 사역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23절 이하 그 외 여러 곳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핍박이 닥쳤을 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졌습니다.

424절 이하입니다.

 

뿐만아니라 사도바울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346-47절입니다.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 구절은 이사야 49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안식일에는 사람들이 놀랍게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두 번째 안식일에는 전 도시가 모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때 일부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하고 대적하고 중상모략하게 됩니다.

남은 유대인들이 생각이 오염되어 바울을 대적하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그들을 떠나 이방인들에게 가면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기의 소명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이방인을 향한 소명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사도바울은 아나니아를 통해서 자신의 소명을 들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소명을 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초대교회 때도 예배와 믿음에 관한 올바른 길을 그들이 성경을 통해서 발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장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방법을 하나님의 길을 하나님의 목적을 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것들을 계시하십니다.

 

잘 들으세요.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에게 세 가지를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보면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도표를 보여주세요.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방법 길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십니까?

크게 목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로 나오도록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따라오도록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앞서 가시며 하나님의 일로 우리를 초청하실 때 하나님의 일들은 하나님의 싸이즈의 일들입니다.

우리의 자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셔서 보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경우에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포도나무 교회의 비전 프로젝트 이것을 두고 일부 성도들은 낙심하는 것 같아요.

우리들의 자원을 보면 규모가 너무 큰 것 같아서요.

? 믿음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오도록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실 뿐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을 게시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 삶을 조정하여 우리의 전 존재로 동참하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분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알리셨어요. 보이셨어요. 그런데 추가적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의 소리를 듣기를 원해요.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여러분에게 보이신 것은 성령을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주셨다는 것은 이미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하도록? 우리 삶을 조정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합하도록. 조정하도록,

하나님의 행하심에 우리로 동참하도록.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으로 자기에게 따로 음성을 주시기를 기다라고 있어요.

어리석은 것이어요.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셨으니까요. 어쩌면 평생을 가도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계시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실 때 우리가 순종함으로 나아가도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들을 계시하시는데 가장 주된 통로 중에 하나가 뭐냐면,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교리를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가 119편에서 간절히 추구했던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목적과 길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은 오직 성령의 조명으로만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고 여러분의 지혜를 가지고 성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길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오직 성령의 조명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길을 발견했다면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깨달은 것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제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도록 인도하셨는데 환경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였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고요.

저에게는 미국에 가든 안가든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신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의 소명과도 관련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도 관련되었고 그래서 그 일이 제게 이루어지 않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명도 확인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제가 목회자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소명을 주신 이후로 그 외의 다른 일에서 어떤 만족도 의미도 느끼지 못하게 하셔서 저에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이 생사가 달릴 만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환경적으로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예스라고 응답하셨지만 환경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너무 어려워서 직장에서 근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직장 상사에게 휴가를 얻어서 월요일부터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려는데 그전 토요일에 성경을 읽다가 사도행전 27장을 읽게 되었어요.

거기보니까 사도바울이 유라굴라 태풍을 만난 사건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흉년이 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인 교회에서 구제헌금을 거두어서 전달했고 로마교회로 가서 로마교회와 교제를 나눈 후에 로마교회의 파송을 받아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울은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자마자 붙잡혔는데 붙잡힌 날 밤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고 친히 나타나셔서 사도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여기서 사람들 앞에 선 것처럼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총독들이 바울에게 뇌물을 받기 위해서 2년 동안 가두어 둔 것입니다. 바울이 뇌물을 주지 않으니까 2년 동안 안풀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를 합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서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됩니다.

죄수의 몸이긴 하지만 배를 타고 가다가 미항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미항에서 보니까 더 가다가는 큰 일을 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가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나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들었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전문가들이니까요.

그런데 가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순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옳은 줄 알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14일 동안 태풍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천사를 사도바울에게 보냅니다.

말씀하기를 배는 손해가 있지만 네가 예루살렘에 섰던 것처럼 가시아 앞에 서야하기에 이 모든 사람들을 바로 너에게 붙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바울이 다음날 바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내게 말씀하셨다. 배는 파괴되겠지만 사람의 목숨은 보전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먹고 마시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구절들을 읽는데 나중에 배가 파손된 후에 멜리데라는 섬에 착륙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만일 착륙한 다음에 바울이 말했다면 그것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대로 되었잖아.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때 말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는 시기에 인간적으로 살아날 기대가 없는 완전히 불가능한 시기에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시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실 것을 신뢰하므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을 읽는데 이것이 보여지더라고요. 응답하신 것이지요.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를 얻어 기도원가려고 했는데 기도원 가기는 갔는데 실컷 놀다 왔습니다.

이미 응답을 받았는데요. 남은 것은 믿음으로 붙잡고 서는 것 외에는 없지요.

 

여러분 깨닫게 하시는 것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교회가 개척된 지 5년 되었을 때 지하건물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포도나무 교회 재정은 한 달에 쓰고 남은 것이 100만도 안남을 때입니다.

그때 지하가 7-8억에 분양되는 가격인데 시장으로 사용하는데 가까운 곳에 이마트가 있어서 비워있었습니다.

회사에서 3억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100만원이 없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믿음으로 따라가도록 하셨어요.

그러던 중에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니까 99519일로 되어있던데, 성경을 읽는 중에 사541-3절을 또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이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펴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채워가시면서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한발자국이 한발자국이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그 당시에 필요를 채운다는 말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훨씬 이상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하반부의 유업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후로 그 일을 그대로 이루고 계십니다.

열방을 향해서 하나님이 열어가고 계십니다.

 

지금부터 2년 전쯤 되었나요.

필리핀에서 바기오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에는 현지 리더들을 위해서 집회를 인도했고 두 번째는 한국선교사들을 위해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로만 해야 하니까 제가 다 인도했는데 그 집회를 인도하고 피곤해서 선교사님들을 위한 집회 때는 다른 분에게 인도하라고 하고 제가 앉아서 있는데 성경을 읽는데 출애굽기를 뒤적이다가 한 구절을 보게 하셨어요

그 구절이 출32장인데요.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려 합니다. 그때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절부터입니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

그런데 어느 부분이 비추어지냐면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는 부분이 보여졌어요.

이 말씀은 하나님은 주권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승인을 받지 않습니다.

주권자의 의미 중 하나는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권자 하나님이 마치 모세에게 승인을 얻으시는 것 같아요.

모세야 내가 원하는대로 하게 놔두라.

그러면서 비추어지는 것이 친밀함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시이시만 하나님의 친밀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을 보이십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원탁회의에 참여시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마치 주권자 하나님이 자신의 의중을 모세에게 보이시고 마치 모세의 승인을 얻으시는 것 같아요.

그만큼 모세를 하나님의 원탁회의에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시지요.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진노를 돌이키십니다. 이것을 딱 보여주시더라고요. 그것이 바로 제게 말씀하신 바였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 잘 들이십시오.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신 것은 초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로 우리 삶을 조정하여 거기에 동참하도록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게 보이신 것은 저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선교회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리더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길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신 것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은 우리로 그 길로 참여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 하나님 자신과 목적과 길들을 쫙 나열해 보십시오.

나중에 한번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지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목적과 길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을 조정해서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도록 하나님이 보이신 것에 순종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깨달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백성들처럼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13절입니다.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우리는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 저는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바리새인 같지 않습니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십일조를 포함해서 성수주일과 같은 몇 가지 규례와 규칙은 지킬지 몰라도 실재적인 하나님과의 어떤 실질적인 교제도 없는 바리새인과 같지는 않습니까?

여러 가지 성경공부를 통해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안다고 자부하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하나님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아는 바리새인처럼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여러분은 예레미야시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듣고자 하는 자세가 없는 하나님은 지금도 목이 터져라고 외치고 있는데, 그 음성을 들을 귀도 마음도 태도도 자세도 없는, 심판이 코 앞에까지 임한 그런 시대말적인 상황에 타락한 유대백성과 같지는 않습니까?

 

시편 119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처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기를 갈망하여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목적과 길을 알기를 구하여 목마르고 사모함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여러분의 삶을 조정하여 주님이 계신 곳에 같이 있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주님의 길을 보이실 때 순종함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의 삶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적인 의식의 반복이 아니라 그 의식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고하고 여러분의 신앙이 인격체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과 실질적으로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알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어질 뿐만아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았던 신앙생활이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포도나무교회 모든 지체들이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