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다 (마 26장 69절 75절) 김태훈목사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3년간 예수님과 동고동락 하면서 언제나 예수님 옆에 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질 않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나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다”는 영적 우월감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다 자기를 떠나고, 베드로 역시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막 14:29)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베드로는 자기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큰 고난이 아니라 교만한 자기 자신입니다.
(간증)
제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주님께서 목회할 마음을 강하게 주셨고, 그 길로 계속 몰아가셔서 결국 목회를 하겠다는 결단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신학대학원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너무도 속상하고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40일 작정기도 하면서 하나님께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제 안에 한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 아니어도 내가 쓸 종은 많다.” 그 순간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보장된 미래를 다 내려놓고, 주님께 “서원해 드린다”는 교만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제 교만을 다루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마음에 정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기 전의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마 26:58)
베드로는 ’바깥 뜰‘에 앉아 있었는데 (마 26:69),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는 장소를 택한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아예 떠날 용기도 없지만, 바로 옆에 있기도 두려워서 멀찍이 쫓아만 가며,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성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진 만큼 죄와 사단에게는 더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고 있는 이 때 우리의 믿음의 실상을 직면하게 됩니다.
온라인 예배로 드리는 것이 점점 더 편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계속 이렇게 적당히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경계해야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세상의 자극적이고 정욕을 채우는 것들에 눈과 마음이 돌아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멈추고 주님께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난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보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비참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막 14:65) 베드로 안에 십자가를 지는 삶은 무능한 삶이고 고생이라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직면하니 그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간증)
저의 첫 목회지는 전라도 지역에서도 가장 열악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고, 멸시천대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교인들과 마을 어르신들을 섬기며 목회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해결되지 않은 것이 ‘여기서 평생 목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이러다가 평생 시골에 살며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시 큰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제 마음에 만족이 없었습니다. 제 이름이 드러나길 원하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것이 지금 제 믿음의 수준이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제 마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십자가를 질 자신이 없고, 믿음에 실패한 분이 계십니까?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후, 마태복음 26장 75절에 보면 닭이 울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했는데, 이 구절을 누가복음으로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장면이 더 나옵니다.
“주님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눅 22:61 새번역)
세번이나 당신을 부인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빛은 어떠했을까요?
(간증)
제가 어릴 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뭐든지 다 해주셨고, 못해도 잘한다 해주시고, 다 해보라고 하시고, 믿는다고 하시고, 온 갖 고생을 다 하시면서 키워주셨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를 무시하고 반항하고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 큰 잘못을 저질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오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학생주임 선생님께 빌다시피 하시며 모욕적인 말들을 많이 들으셨습니다. 다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한마디도 안하시고 걸어가셨습니다. 제가 머쓱해서 ”엄마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너희 선생님 정말 이상하시더라...태훈이를 아주 나쁜 아이로 알더라고...이런저런 이야기하길래 그냥 다른 생각하다가 나왔어...우리 아들이 이렇게 착한데 그렇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제가 마음에 ”우리 엄마는 역시 무식해서 모르는구나...“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랬다면 사람도 아니지요. 어머니의 사랑이 저에게는 강력한 권위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에 어머니께서 원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다 해드리고 싶은마음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제가 어두운 길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나를 외면하고 버리려 할 때, 바보같아 보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저를 보호해 주었고, 다시 일어서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보신 예수님의 눈은 사랑의 눈이었습니다.
“베드로야 괜찮다...내가 다 알고 있어..괜찮다..내가 다 감당하겠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우리가 당할 멸시와 천대와 고통을 주님이 다 당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죄짓고 또 회개하고 죄지을 때마다 주님은 한 번도 우리를 부인하지 않으시고 또 죄지을 것을 아시면서도 속아주시면서 용서하시고 다시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십자가를 미리 경험한 것입니다.
그 십자가 사랑의 능력으로 베드로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앉아있던 그 중간지대를 떠나서, 밖에 나가 기도의 자리로 갑니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75b)
이때 베드로에게는 진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따뜻한 눈으로 주목하여 보고 계십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저는 무능합니다. 주님을 세 번이 아니라 수십번 부인한 배신자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주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저를 사로잡아주시고 주인되어 주소서.” 하면서 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실패한 자들의 눈물을 취하여 반석같은 성도로 만드시고 그런 믿음의 성도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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