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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십자가부흥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 (마 26:36- 46) 여재우목사

by 오용주목사 2020. 4. 10.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 (마 26:36- 46) 여재우 목사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 만을 묵상하고 슬퍼하는 것도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육체의 고통의 극심함을 묵상하라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마음은 “근심하며 괴로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마 26:37-38절 새번역) 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핍박과 박해 가운데 너무나도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순교자들도 많았는데,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시며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받으셔야 하는 그 ‘잔’ 때문입니다. (마 26:39) 모든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담겨 있는 ‘잔’이었던 것입니다. (렘 25:15, 사 51:17) 예수님은 한사람의 죄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요일 2:2 히 9:28 고전 5:15 마 26:28)

그러나 단지 온 인류의 죄의 값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서라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꼭 그렇게 기도하실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마실 잔에는 제자들과 우리가 이 땅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슬픔으로 대표되는 모든 죄의 결과물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배신, 실망, 거절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완벽한 연합을 영원토록 이루어 왔던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완벽한 외로움과 버려짐, 그리고 자신의 간절한 소원으로부터 거절되는 낙심을 받으시러 그 자리로 나가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서 이 땅에 일어나는 고통, 슬픔, 좌절, 거절, 버려짐, 홀로됨, 두려움, 막막함, 절망, 실패와 같은 모든 악한 부산물들을 함께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심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괴로움을 친히 마음으로 반복해서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3번이나 반복해서 똑같은 고백으로 그 처절한 자리를 끝마치십니다.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39절)

예수님께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신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그처럼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답답함과 절박함의 여정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간증) 저는 작년 1월 갑작스럽게 허락된 어려움으로 인해 선교지에서 한국으로 긴급하게 돌아와야 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저의 인생 중에 만난 가장 큰 슬픔과 어려움이었습니다. 도저히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심해속에 빠진 것 같은 절망과 아픔의 시간이었습니다. 
측량할 수조차 없어 보이는 깊은 어둠과 절망 속에 있을 그 때,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 가운데 안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저의 깊은 아픔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아픔과 슬픔을 안다. 사랑하는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예수님께서 거절 당하셨고 버림 받으셨고 배신과 외로움과 비통함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과 어려움,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는 순간, 제자들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명령하셨던 예수님께서 기도의 자리보다 훨~씬 심한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순간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5-46)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힘들어하고 피하고 싶어했던 그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어찌 제자들에게는 ‘자고 쉬라’ 하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홀로 지셔야 할 십자가와 다르게 우리가 가는 십자가의 길에서는 그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고통을 겪으셨던 주님이 위로하시며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자고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간증) 
저는 갑자기 찾아온 인생의 풍랑에 휘청거렸습니다. 
여러 번 제가 원하는 대로 풍랑에 반응하다가 물에 빠지고 허우적거리며 주님께 살려 달라고 소리를 높여야 하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주님의 말씀대로 반응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불순종을 선택했습니다. 제 감정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철저히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패배했을 때, 사탄의 조롱소리가 제 마음에 크게 들렸습니다. 
‘나 같은 놈이 무슨 선교사라고 목사라고 난 아니야. 난 자격 없어. 이제 그만 둬야지’
‘난 이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도 불릴 자격이 없어’
이런 생각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심해로 끌려 들어가 그 바닥에 처박힌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 속에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라는 결론이 찾아왔습니다. 
그 깊은 바닥에서 다시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제 옆에 계셨으며 저와 함께 아파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님을 찾았을 때 망가지고, 다 깨져버린 제 삶을 은혜로 덮으시고 회복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원해서 겟세마네에 오르시고 그 잔을 마시셨기에 저를 그 실패의 가장 처절한 자리에서 부르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이제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 

우리가 실패해서 엎드려 울고 있는 그 자리, 절망하여 손을 놓고 있는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 오셔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나와 함께 십자가의 길로 가자!”
영생을 얻는 유일한 살 길인 십자가의 길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제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대답할 시간입니다.
“주님! 다시 일어납니다. 주님! 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를 부르시고 저를 가장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서 주님을 따릅니다. 
주님! 저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이끄소서. 
저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쉼을 얻는 그 삶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