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다 (요 13:1-15) 엄재현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을 때,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고 베드로는 자신을 부인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시며, ‘저 녀석은 글렀구나’ 생각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을 때, 이미 베드로의 불완전함을 아셨고, 그의 실패도 알고 계셨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부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말씀 중에 첫 말씀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할 마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든, 삼십번 부인하든 끝까지 사랑할 마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마음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하여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심혈을 기울인 피조물인 사람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사랑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신했지만, 하나님은 에덴 동산 밖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더라도,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실패는 처음부터 계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저를 목사로 부르셨나요? 제가 목회를 잘 할 것 같아서, 목사 시켜 놓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뭘 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르셨을까요? 아니예요.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실패하더라도 사랑하시겠다고 부르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실패는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부르실 때부터.
그것이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가룟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을까요? 논란이 있는 질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을 끝까지 사랑받는 베드로가 아니라,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유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오늘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물어 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설교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면 “아멘”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잘못하면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 지옥 간다는 말은 철썩 같이 믿습니다.
이번 코로나 19로 신천지의 실상이 드러났습니다. 신자의 수가 30만이라는 것도 대단하지만 집까지 버리고 나가는 그 충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천지 신자들 끼리는 구원받은 것이 확실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이만희 뿐일 것입니다. 나머지는 14만4천명 안에 들기 위해서 기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전도를 하고 구원받았다고 인정받으려고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도, 여전히 구원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죄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소합니다. ‘너는 예수 믿는 것도 아니야. 그러고도 니가 예배를 드리냐? 하나님도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하나님에게도 버림받았어’
유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도 마귀가 준 마음에 사로 잡혀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예수를 팔아. 더 따라 다녀봐야 네가 얻을 것은 전혀 없어. 은 삼십냥이라도 챙기는 게 너에게 남는 일이야.’ 그러나 실제로 그 말대로 예수를 팔자 마귀는 태도를 돌변합니다. ‘니가 예수를 죽였어. 너는 배신자야. 너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어.’
그렇게 유다는 자신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도 사랑하셨을까요?
요 13장 1절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시고 바로 다음 절에 가룟 유다가 등장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예수님의 결심에 유다도 예외가 아니란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만 씻기신 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발도 씻기셨어요. 발을 씻기시는 이 섬김이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예수님의 결심이라면 유다도 제외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유다가 어떤 죄를 짓던, 그가 비록 예수님을 은 서른 냥에 팔았을지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리라고 작정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를 그렇게 용서하고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유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인생은 비극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다 스스로가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내 본 모습을 알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분이 계시다면, 마음에 새기십시오.
우리는 유다가 아닙니다. 아니 유다같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버림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그런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기로 결정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네’ (찬송가 88장)
이 사랑이 여러분 안에 부어진바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성금요일 가정에서 예배드리실 때, 세족식이 있습니다. 예배 드리기 전에 대야와 물, 수건을 준비하시고, 예배 중에 가족들의 발을 서로 씻어주시는 시간을 가집니다.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의 발을 씻어야 할까요? “끝까지 사랑합니다.” 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입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 마음에 누려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맡겨주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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