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여호와의 일
느3:1~5
느헤미야3장에서는 느헤미야와 예루살렘 거민들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해 나가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중건에 있어서 성경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지금 유다 예루살렘 거민들의 성벽 재건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어떤 보면 자기를 위한 것으로 보임
그런데 (느2:17)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하고
이 말씀을 유심히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 우리의 문제
우리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사람의 영광,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세상에서 일하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그런데 힘들다,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의 초점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지 않고 사람의 영광, 인정, 칭찬에 초점이 있기 때문에 힘든 것 아닌가요?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내가 계획한 일이 아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 그것을 내가 이루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하기 위해서 주신 것임을 자각해야합니다.
지금 예루살렘 거민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성벽을 쌓는 일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일을 단순히 성벽을 건축하는 일로 이해하지 않고 이 일을 주의 역사, 하나님의 일이라고 이해하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회 안에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일로 이해하는 자
2)사람의 일로 이해하는 자
우리가 세상에 어떤 일을 맡으면 대단한 자부심과 기쁨이 있는데
왜 교회에서 맡은 일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요? 힘들고, 어렵고, 짜증나고, 기쁨은 사라지고
그 일이 사람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가요?
정말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그 가치는 달라 질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을 보세요.
고후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자기가 전한 일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일을 이러한 고난을 당하면서 계속했을까요? 몰라도 열 두 번은 더 포기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이 나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신 그 분의 일이었기에 끝까지 달려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은 마음, 즉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라; 매우 강한 어조입니다.
마음을 보호하라, 방어하라
신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마음을 단속하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 성경이 강조하는데,
그러면서 성경은 가룟유다의 실패의 원인을 여기서 찾습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가룟 유다의 실패의 결정적 요인?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빼앗김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을 지키는 일에 실패했던 사람입니다.
가룟유다는 다른 것을 빼앗긴 것이 아니에요. 마귀에게 생각을 빼앗긴 거에요.
오늘 가룟유다에게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과는 그는 무엇이라 대답했을까요?
1)예수님을 은 30에 판 것
2)사탄에게 생각과 마음을 빼앗긴 것
가룟유다의 결정적 실수 - 자기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김 당한 것
아담과 하와가 실패한 원인 -> 마음을 지킴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 됨
창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홍수심판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바울과 유다의 차이점 - 별 차이가 없어요. 배고프면 먹어야 하구요, 피곤하면 쉬어야 하구요.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을 지켰는가, 방치했는가’의 차이에요.
우리가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사람의 영광, 칭찬, 인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까요? -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그래요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할 까요? 우리 마음이 빼앗김을 당해서 그래요.
우리가 왜 초초하며 조급합니까? 우리 마음이 빼앗김을 당해서 그래요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갑니까?
왜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역하지 못합니까? 마음을 다 빼앗겨서 그래요.
왜 주를 향한 열정이 사라지는 가? 마음을 빼앗겨서 그렇습니다.
왜 예배의 감격이 사라져 갑니까? 마을 빼앗겨서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누구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향을 받으며 사시나요?
아니면 이 타락한 세상문화, 사단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계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왜 인가요?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마음을 빼앗겨서 그렇습니다.
3.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합니까?
1)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원수의 공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요, 그래서 주님께 속한 사람,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마귀가 그냥두지 않고 공격한다는 겁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일을 함.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데 어떤 통로를 통해서 공격하는가? 주된 통로 중의 하나가 바로 생각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공격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생각의 영역을 통해서 공격 합니다.
여러분 이걸 아셔야합니다. 사탄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고서라도 우리 마음을 빼앗으려는 것이 사탄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한 짓을 보세요. 세상 부귀영화를 다 줄 터이니 내게 절하라 - 이런 놈이 사탄입니다.
여러분 나는 괜찮아 자신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도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얼마 던지 가룟 유다와 같이 될 수가 있음. 우리도 마음을 지키기 않으면 얼마 던지 부르심을 받았지만 주님의 계획, 목적에서 제외될 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2)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생각에 대항하라 (진리에 동의하는 삶)
고전10: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키 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각을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이 어떤 생각입니까?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 -> 죄 된 본성 ->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 ->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는데
오늘 하루의 생각이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입니까?
아니면 육신의 생각을 하셨습니까?
오늘 하루도 육신의 생각에 여러분의 마음을 더 많이 빼앗겼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생각에 여러분의 마음이 더 많이 고정 되었습니까?
영적전쟁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 -> 우리의 생각의 영역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느냐 입니다. (하나님, 자기, 사탄)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비판, 판단 같은 저급한 생각이 들어오면 그 생각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 생각과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싸워서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저급한 생각에 마음을 방치해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틈타는 것을 어쩔 수 없다하지만 그 생각과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하는데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아요, 다 항복하고 그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생각에 동조하고, 그 생각에 포로가 되어 생각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의지를 드려야 합니다.
쇼 생크 탈출
3)우리의 생각이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함.
행2:1-4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2: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성령 충만의 실제적 변화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언어의 변화, 입술의 변화, 그들의 말이 달라짐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입술이 성령의 통제를 받기 시작함.
오늘 우리의 언어 공격적, 비판적, 판단, 후욕, 진정성이 없어요.
우리가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이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성령께 민감해야함.
마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잔치 중 찬물을 끼얻는 말씀하심
마26: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 자기가 저급한 욕구에 자로 잡힌 것을 아는 자 - 내니이까
설교를 들으면 - 자기에게 적용함
예민한 마음, 민감한 마음, 살과 같은 마음임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작은 것에도 민감함
다윗 사울 옷자락 벤 사건
삼상24: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24:5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24: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4. 꼭 알아야 할 영적 사실 3가지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 여기서 무서운 것 3가지, 영적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1)가룟유다는 그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주었지만 그것이 사탄이 넣어준 생각인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가 예수님을 팔았겠습니까?
우리는 생각 할 때 이 생각이 누구에게서 나온 생각인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어떤 사람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 그것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생각 할 때 이 생각이 누구에게서 나온 생각인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하나님께로 온 것인지..
아니면 죄 된 본성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
이것만 생각하고 분별해도 굉장한 승리가 있습니다.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음, 왜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받아들이고
죄 된 본성에서 온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고
사탄 준 것은 끊고 대적하고 파하는 겁니다.
2)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
이미 어둠의 자식이 되었음에도 제자들과 같이 동행하고 교제하고 최후의 만찬에 참석 포도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이미 빼앗김을 당하고 우리 마음이 더 이상 성령님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우리 마음에 빼앗김을 당한 이후라도 목사, 오이코스리더 손색없이 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찬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두려운 것임 이런 상태 지속되면 처음에는 남을 기만하고 속이다가 나중에는 자기에게 속게 됩니다. 진짜 좋은 목사인 줄 암
우리 가운데 원망, 분노, 미움, 열정이 식어지고, 서운한 마음, 음란 사이트 지속 되어집니까? 벌써 마음을 빼앗긴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방치해두면 큰일 남.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망가진 채로, 병든 채로 그냥 방치하면서 삽니다.
마음이 슬픔으로 차 있다면 슬픔을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분노로 차 있다면 그 분노를 잠재워 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탐욕과 음란과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을 다 퍼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됨.
내 마음이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안 됨 -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게 됨, 그러니 지속적으로 주님을 구하는 자리로 나가게 되고,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구하고, 그리고 그 생각을 대적하고 실패하면 또 애통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흔들어 주기를 사모하고...그렇게 할 때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유다처럼 예수를 부인, 배신, 팔게 됨
3)마귀는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함
요12장에 그 마리아의 헌신을 옆에서 바라본 가룟유다가 뭐라고 불평 합니까?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그 현장에 있었고 오랫동안 가롯 유다와 생활했던 요한이 오랜 시간이 지난다음 그것을 기록하면서 그 장면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가 물질의 노예였음이 드러남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었지만 가룟 유다 자기가 그런 사람이란 것 누구보다 알았을 것 아닙니까, 내가 물질에 약하다는 것, 내가 도적질하는 인간이란 것 이것을 방치하니까 예수를 팔게 하는 빌미가 제공되더라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랬던 사람 아닙니까? 천하무적 삼손이었지만 - 여자에게 약한 항상 여자에게 눈길이가는 것을 통제 못하니 그것 때문에 집중공격을 당하고 망한 사람
타고나기를 이성에 물질에 명예에 약함을 타고남 - 여러분 자신의 약점을 아시잖아요. 지금부터 단속하고 몸부림쳐야 함 - 마귀의 공격의 빌미가 됩니다.
2013년 이 한해 우리에게 직임을 주셨습니다.
무엇하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러기 위해 아주 중요한 마음: 이 일이 주의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함.
그러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함.
우리 말 성경
느 3:5 그 다음 구획은 드고아 사람들이 복구했는데 그 귀족들은 여호와의 일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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