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2:1-20
이사야서는 총 66장으로 되어있는데 크게 전반부와 하반부로 나누어집니다.
1장 ~ 39장까지를 전반부라 하며, 40장부터 66장까지를 하반부라 합니다.
이사야 하반부에는 크게 3가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생활에서부터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 당시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을 겁니다.
아마 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바벨론 제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당시 이 세계를 한 손에 주물렀다 폈다한 가장 강대한 나라가 아닙니까?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세계역사를 움직여서 그 거대한 바벨론 제국이 메데 바사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바사의 고레스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 때 스룹바벨의 인도로 1차 귀환을 하게 되고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 때 에스라의 인도로 2차 귀환을 통해 성벽재건을 시작하였지만 르훔과 심새라는 사람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려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으로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4:11 그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유프라테스 강 서쪽 지방에 사는 왕의 종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드립니다.
4:12 왕이시여, 왕께서 저희에게 보낸 유다인들을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왕도 아시겠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저 악한 성을 다시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벽을 다시 쌓고, 기초를 다시 놓고 있습니다.
4:13 아닥사스다 왕이시여,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왕께서도 아셔야 합니다. 만약 예루살렘이 지어지고, 그 성벽이 고쳐지고 나면, 예루살렘은 아무런 세금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왕께서 거두어들이는 돈도 줄어들 것입니다.
4:18 그대들이 보낸 편지는 번역하여 잘 읽어 보았다.
4:19 내가 옛 기록을 찾아내라고 명령하여 알아본 결과,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반역을 일삼던 곳임이 드러났다. 예루살렘은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부리던 곳이다.
4:20 예루살렘에는 강한 왕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프라테스 강 서쪽 지방 전체를 다스리면서 온갖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4:21 이제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 일을 멈추게 하여라.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예루살렘 성을 다시 짓지 못한다.
4:22 이 일을 틀림없이 하도록 하여라. 예루살렘 성을 짓는 일이 계속되면 나라가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께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는 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이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느헤미야의 직위가 박탈될 뿐 아니라 나아가 목숨을 내 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느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왜 기도했을까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 하나님이요 ->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 기도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창세기 31장에
야곱이 형 아버지와 형에서를 속이고 밧단 아람으로 도망갔다 21년 만에 돌아가는데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나올 때, 삼촌 라반에게 괘씸죄에 걸려 삼촌의 추격을 당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장인 라반의 마음을 움직이시는데 어떻게 움직이십니까?
창31: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 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또 형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에게 옵니다. 왜 일까요? 죽이려고...
이랬던 에서가 창33:4절에서 이렇게 변합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여러분 누가 에서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야곱은 뇌물로 형에서의 마음을 돌이키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 돌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여전히 우리의 힘으로 하려하지 않습니까?
나도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 불가능해요
내 스스로 하려는 것 – 교만 ->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의 마음을 내가 움직이려고 한다면 나는 이미 타락한 거예요.
만약 오리코스 리더들이 자기가 지체들의 마음을 움직이려한다면 그것을 이미 타락한 겁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야 합니다.
또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다 변해도 내 남편은 어쩔 수 없어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불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도 움직 일수 없다는 불가능을 전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사람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에나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전제를 하지 마십시오.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는 여러분의 남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남편을 움직여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는 여러분의 아내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내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힘으로는 여러분의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대상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실 것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몰두하고, 현실에 집착하니까 그래요
환경을 바라보니 그래요.
베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염려(메림나) 마음이 어수선해 지는 것
맡겨(에필흐립토) 던지다
환경을 던져버리고 주님을 바라볼 때 기도하게 됨
느헤미야가 환경을 바라보았으면 기도할 수 없었을 거예요.
출14:10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시123:1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입니까?
느2:8절 하)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아닥사스다 왕은 승낙하고 느헤미야에게 두 개의 조서를 내려준다.
1) 하나는 유브라데 서편에 있는 바사 총독이 그의 통과를 허락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2) 다른 하나는 왕의 삼림 감독인 아삽이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목을 그에게 내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느헤미야의 기도의 핵심
1.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느1: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1: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 기도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범죄 하면 흩지만 계명을 지키고 주께 돌아오기만 하면 땅 끝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모아 준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 다시금 이 땅에 있는 백성들을 주의 나라로 돌아오게 한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허공에 외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때 쓰듯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해주실 줄 믿습니다.
막연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내 구주 예수님 주 같은 분 없어요, 내 평생에 찬양 하리 놀라운 주의 사랑을
위로자 되시며 피난처 되 신 주님 나의 영혼 온 맘 다해 주를 경배합니다.
온 땅이여 주님께 외처라 능력과 위엄의 왕 되신 주
신시하신 주의 약속 나 받았네
2.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언약을 지키시며” 신실하신 하나님
신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사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긍휼의 하나님 = 헤쎄드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 문자적으로 '언약과 긍휼을 지키시는'이다. 여기서 '언약'(베리트)은 언약 상대자에게 시여(施與)되는 '긍휼'(헤세드)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구는 '언약적 사랑을 포기치 않으시는' 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Fensham). 이 같은 사상은 신명기 등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신 5:10; 7:9).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요나 주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환경 때문에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한번 보세요, 여러분의 환경이 여러분이 원하는 쪽으로 가던가요?
사람 때문에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항상 애기하는 말 “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소망을 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또 장차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시리라는 것에 우리의 소망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를 보면 예레미야가 절망 가운데 있다가 갑자기 새 힘을 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처한 환경은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애3: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애3: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자기 환경을 보니 고난과 쑥과 담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을 부면 전혀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애3: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예레미야가 갑자기 새 힘을 얻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25절에서는 이렇게 애기합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결국 예레미야의 소망은 기도에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구하면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사 자기 백성을 절망 가운데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시 소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소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3. 기도하고 기다림
기도하는 때가 있고 응답의 때가 있음
그 사이를 기다림의 때입니다.
느헤미야가 기도를 시작한 때
느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기슬르월: 12월
느2: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니산월: 4월
그러니까 1장과 2장 사이는 4개월간 간격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법칙 있습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절이 부연설명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면서 내리는 결론이 9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9 우리가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9절 말씀이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데 낙심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 법칙을 우리의 신앙에 적용시켜 주셔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거두는데 언제 거두느냐?
때가 이르매~~~ 하나님의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때에 우리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선을 행하면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을 격려하고 싶은데요.
혹시 이 시간 선을 행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기도하고 있는데 응답이 없어 낙심하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기억할 것은 우리가 선을 심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둘 수 있는 그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중보기도 - 때가 되면 이루십니다.
기도해도 안 된다는 생각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 반드시 열매를 거둘 날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이 저녁에
일어나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웨일즈 부흥 15년을 기도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하나님
느헤미야는 그 하나님께 기도함
기도할 때 하나님께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심.
느헤미야의 기도의 핵심
1.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의 성품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3. 기도하고 기다림
'성경권별설교 > 느헤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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