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한 삶(한서교회) 1강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
갈6:7~8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든 연주자들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악기를 조율하는 것입니다.
조율되지 않은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하는 연주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율되지 않은 악기는 어떤 연주자의 능력도 무효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조율은 악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격에도 신앙에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조율을 잘못하여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인격이 조율되지 않아 조율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집회를 합니까?
집회는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건강검진과 같은 것이며 자동차로 말하면 정기검사와 같은 것입니다.
집회를 통하여 우리 신앙을 조율하고 검진하고 검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느슨해 진 것들은 것은 조이고, 너무 조여진 것들은 풀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듣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여러분의 관점, 믿음, 관계, 신앙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도 빼지 말고 조율을 하셔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알고도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몇 주 전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표면적 견해들은 표면적인 성도들의 삶만을 조장해 낼 뿐이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 성도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형식적 그리스도인의 삶, 무늬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전하고, 표면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AW 토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기독교의 진리에 물을 타버렸다. 그리하여 그것이 독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죽일 수 없고 그것이 약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고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을 여주봉 목사님은 목사님의 십자가의 복음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예수를 몇 십 년을 믿었는데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가?
성경은 놀라운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왜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가?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많이 기도하는데도 하나님과의 교재가 열리지 않고 답답하기만 한가?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오늘날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는 겁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않다는 겁니다.
교회의 교회다움, 성도의 성도다움이 무엇입니까?
행2:47절에서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즉,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교회 - 이것이 교회의 교회다움이요, 성도의 성도다움인데 오늘 교회와 성도들이 그 다움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도가 교회가 언제 가장 비참한 줄 아세요? 바로 성도다움, 교회다움을 잃어버렸을 때가 아닌가요?
오늘 교회나 성도를 대변하는 것이 뭔 줄 아세요? 무능력. 무기력, 무영향
니체 – 하나님은 죽었다. 저 무기력한 교회를 보아라 이것이 하나님이 죽은 증거라고..
그래서 교회가 혐오시설로 치부되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하루도 욕먹지 않는 날이 없는 이것이 오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닌가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 참 마음이 아픔니다.
마17: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여러분 이것 누구의 모습입니까?
오늘 이것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우리교회의 모습은 아닌가요?
교회는 영적병원인데 고칠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도 이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면 여러분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성경은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는데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 그로 말미암아 우울증, 자기연민, 자살충동을 이기고 그들의 가정이 하나 되고, 변화되는 능력, 그래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능력,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으로 나가 세상과 육신, 죄, 유혹, 염려, 걱정, 근심, 이기는 이러한 능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여러분!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나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묶여버린 이 매듭을 풀어가야 할까요?
그것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타서 그 말씀이 생명이지만 사람을 살랄 수 없는 말씀이 되어버렸으며,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말씀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의도한 말씀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히4: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양쪽에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며,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까지 알아낸다” 라고 하였지만 오늘의 말씀 가운데 우리의 죄악을 고발하고 우리의 죄의 암 덩어리를 발견하고 가르고, 찢고, 도려내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 입니까?
어떻게 물을 탔는가? 성경을 단순히 복 받는 비결 정도로 전합니다.
이 땅에서 잘되는 정도로, 문제해결의 비결을 전달해주는 정도로 전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서 자기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때로는 빼기도 하면서 적당하게 성도의 귀를 즐겁게 하면서 전한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성도들도 꼭 식당에서 국 먹듯이 들어요.
싱거우면 소금타고 짜면 물 타 듯 말씀을 들으면서도 적당히 물을 타서 듣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로 바른 말씀에 대한 기대감이 없습니다.
얼마 전 가족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국에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다고 하니 막내아들 하는 말 “어머니, 여기서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오늘 우리가 적당하게 MSG를 넣어서 전하는 말씀에 길들려져서 참 맞을 주어도 그것이 참 맛 인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영돈의 먹거리 파일 (파주 착한 떡볶이집, 강원도 횡성 삼군리 메밀촌)
여러분 참 맛을 잃어버린 것 이것 심각한 거 아닌가요?
여러분 창세기를 보면 이러한 것은 누가한 짓이었습니까? 바로 사탄이 한 짓입니다.
창2:17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말씀하심
그런데 사탄은 뭐라고 말합니까? 한술 더 떠서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보세요. 사탄의 메시지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적당히 물을 타서 하와의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 유혹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의 메시지 /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렘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오늘날 메시지
하나님 말씀에 적당히 물을 타서 성도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하며 귀를 즐겁게 하는 표면적 메시지가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하고 몰려오니까... (탐심, 야망, 교회성장)
여러분은 어떤 설교를 원하십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의 귀와 마음과 심령에 거치는 설교를 하고자합니다.
지난 2014, 10월 말 심해철 사망이 후 화장을 하려다 돌연 부검을 실시함
이유 –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고 싶다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죽느냐 보다 어떤 삶을 살다 죽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하루하루의 삶은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삶은 무엇이며?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참 된 삶이란 근본적으로 심고 거두는 문제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심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체 가운데 거하면서 행한 행위에 따라 판결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로 심었는지 아니면 성령으로 심었는지에 따라서 이 땅의 추수와 영원의 추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대로, 반드시 심지 말아야 할 것
1.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
그러면 육체가 무엇인가?
창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심.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 ->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 -> 우리 자녀들 –> 부모임과 똑 같지는 않지만 닮음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꼭 같지는 않지만 닮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하였다는 말은?
1) 사람이 이성 즉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도덕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도덕성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인간은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선을 행할 때 기뻐하고 악을 행할 때 괴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사랑과 용서와 인내의 삶을 보여주기도 함.
이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 하나님의 형상임
타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음
그런데 타락한 인간의 그 하나님의 형상의 잔여물인 사랑, 인내, 용서를 자기를 위해서 씀
2) 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느끼며 추구할 수 있도록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자율성(자유의지)을 받았다는 의미
하나님은 스스로 생각하시고, 결정하시고, 스스로 판단하십니다.
인간은 그러한 자율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작성, 섭리 속에서 제한된 자율성이지만 인간은 자율성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율성 때문에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 자율성에 의해서 인간에게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인격인 겁니다.
로봇이 아님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단어는 아무렇게나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님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굳이 그 단어를 쓰심
예) 자녀에게 DNA, 그런데 우리 집 개에게 그 DNA를 물려줌
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애초에 만드신 목적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러한 삶을 살도록 지으심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육체가 됨이라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 여기서의 육체(바사르)는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합니다.
타락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남
(창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사도바울은 우리의 육체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 육체란 것은 자연적으로 타고난 타락한 상태에 있는 본성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적 본성, 타락한 본성
필립스는 이 육체를 저급한 본성이라고 말함
그렇다면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무엇일까요?
타락한 본성, 저급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삶
저급한 육체의 본능의 지배, 영향을 받는 삶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라이트 훗”은 위의 15가지의 육체의 일 죄목을 크게 4가지 문제로 분류했습니다.
1) 성적인 문제
2) 우상숭배(세상사랑)의 문제
3) 인간관계의 문제
4) 음주의 문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육체의 일은 성적인 문제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음행, 더러움,
표준새번역: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음행: 성적타락,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행위, 즉 내 탐욕을 위해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행위
KJV: 불륜, 간음
음행의 원어: 포로네이아 -> 포로노의 어원
성적인 죄는 음행, 더러움, 호색(방탕)으로 이것은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 기혼자 사이에 또는 미혼자 사이에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인 것을 막론하고 모든 성적인 범죄가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그리스도인이나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성적 음란에 관한문제입니다.
목사, 교수, 청치인,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뒤에서 추잡하게 하는 짓이 이 저급한 본성에서 나오는 음란의 문제 아닙니까?
몇 년 전 광주 인하학교사건 –> 도가니 영화
요즘 베스트셀러가 무엇입니까?
최근 모 목사가 성추행한 사실을 폭로한 도서 '숨바꼭질-스타목사 전병욱 목사의 불편한 진실'이 화제다.
요즘 온 매스컴을 도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성추행의 문제 아닙니까?
요즘 연예인들 혼전임신을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아주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생각함
동치미 – 한 남자 노골적으로 무슨 자랑같이 이야기함
여기서 우리는 자유 할 수 있습니까?
교회 내 남편들의 외도 – 이제야 참 사랑이 무엇인 줄 알았다고....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안셈(Anselm)은 말하기를, "다른 죄들은 대항하여 싸움으로 이길 수 있으나, 성적 죄악은 피함으로야 이긴다"고 하였다. 36계
포도나무교회 – 혼자 운전할 때 여자 성도 안태움
나를 믿지 못해서...
요셉이 이 죄를 이긴 방법도 그러하였다. (창 39:1-18).
창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39: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39: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영적 솔 타이를 끊어야 합니다.
솔(영혼, 혼) 타이(묶는다)
음란한 생각이 들어올 때 집중적으로 선포해야합니다.
음란한 생각들은 끊김을 당하고 파해져라
창조적인 묵임의 관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나는 내 안내(남편) 많을 사랑함을 선포한다.
나는 내 아내 이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선포한다.
결혼 전 사귄 사람
2) 세상 사랑의 문제 – 갈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표준새번역) 우상 숭배와 마술과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 중 2번째는 세상 사랑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의 관점, 가치관, 삶의 방식을 의지하는 것
룻기 –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음
엘리멜렉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 말론과 기론과 함께 흉년을 피하여 모암지방으로 내려갔다라고 말함
여러분! 엘리멜렉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와 왕”이란 뜻을 가짐
그런데 실제적 삶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살찌 못함
왜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신앙인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도 마찬 가지입니다.
창12장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보세요! 아브라함도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산다하였지만 기근을 만나니 여전히 세상적 방법으로 살아감.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임
혹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이름은 하나님의 나의 왕 같이 성도요, 크리스천이라 하면서 우리의 삶의 방식, 방법은 순 엉터리 아닌가요?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래요.
왜 하나님께서 기근을 만나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서 아닌가요?
예)회장님 외동아들 – 공사판 현장에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엇을 알게 학 위함입니까?
⓵ 광야는 하나님의 관계 회복 기회를 주는 곳임을 알게 함.
광야의 특징, 단절, 고독, 외로움입니다.
창28장에 보면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정든 집을 도망쳐 나옵니다.
그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까요.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런데 그가 이제 광야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광야에서 세상과의 단절은 하나님과 교통의 시작이 되더라는 겁니다.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게 됨
자전거 거어가 밀착 – 고속주행이 가능
⓶ 광야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이 있음 알게 하심.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광야의 특징3가지
1)너를 낮추시며 – 자존심을 팍팍 죽이는 곳
2)주리게 하시며 – 광야는 결핍의 상징
그런데 광야의 특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놀라운 “또”로 시작한 광야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3)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게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
광야는 비참하게 낮아지고 꼬꾸라지고 가슴 저리는 아픔만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영적인 공급, 하나님의 초월성을 배우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것은 경험해본 사람만 압니다.
요셉이요 세상에 강간미수범이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처박히고는 절망에 뼈져 낙심에 빠져 살 것 같은데
억울해서 화병이 생길 것 같은데
우울증 걸려 죽을 것 같은데 성경에 보면 그런 상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왜 일까요?
요셉은 여기 나오는 그대로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게 못하던”
설명해봐야 일반 사람들은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공급되었다고 믿습니다.
감옥에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감옥에서 그를 위로해 주시고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만져주시는 특별한 영적인 하나님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에게는 상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 안에 왜 이렇게 상처가 난무합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공급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만 경험하고 세 번째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게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저는 기왕에 고난의 광야의 길을 걷는 여러분이라면 물론 낮추시는 아픔이 있고 주리게 하는 결핍의 아픔도 있지만 그러나 너도 알지 못했고, 너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적인 신령한 은혜, 이 공급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생각을 뛰어 넘고 한계를 뛰어 넘고 하나님의 손으로 건시는 초월성을 광야에서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분명이 결핍이었는데
분명이 곤고함 이였는데
되돌아보니 희한한 일이네
그래서 이 신비를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⓷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깨닫게 하심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지 못해서 만난 것이 광야라면 이 광야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온전히 하나님 의지하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떡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의지하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함.
⓸ 반드시 회복시켜주실 하나님을 알게 하심
신8: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범죄함으로 광야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 광야가 끝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3) 육체의 일은 깨어진 인간관계의 문제
갈5:20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표준새번역성경: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 중 여전히 육체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고 있는 것 중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깨어진 인관 관계 아닙니까?
갈5장에 육체의 일을 열거하는데 한 번 보세요.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쭉 열거되는 인간의 저급한 본성을 들여다보니 대부분이 인간관계와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했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아내를 위해 바쳤던 사람이 바로 아담이었는데 그런데 타락으로 변질된 후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망친 원인이 하나님이 보내준 저 여자 때문이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저 여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참 비참하고 서글픈 일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 부부 관계는 어떻습니까?
처음 연애할 때나 신혼 초에는 서로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여러분의 남편에게 아내에게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 버전으로 “내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질 되었습니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당신이 문제라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 당신, 당신, 당신...
어디 이것이 가정에서만 일어난 일인가요?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 목사는 성도들 탓, 성도는 목사 탓으로 서로를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사회 법정에 까지 서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 아닌가요?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서 전화 올 때 떠는 문자 – 신혼 - 내 심장
지금 - 만나지 알았어야 할 사람
그 깨어진 관계의 배후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움, 시기, 질투 아닌가요?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미움)과 분쟁과 시기(질투)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시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여러분 창 4장에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여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는데 살인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미움, 시기, 질투 아닌가요?
가인이 왜 아벨을 죽었나요? 미움과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그 자체가 살인의 동기가 되는 겁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왜 죽이려 했나요? 질투 때문에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왜 죽이려 했죠? 질투 때문에
요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1: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여러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되나요? 그런데 왜? 질투 때문에...
요11: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 하니라
질투, 질투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왜곡 시키는 가장 무서운 감정이 바로 질투심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절대 질투심을 갖지 않아요.
질투심이란 어떤 면에서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갖는 감정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기보다 나은 모습이 보일 때 그를 제거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 마음을 질투라고 하는 겁니다. 젤러시
또 하나 깨어진 인관관계의 배후에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가 왜 분노하냐?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왜 분을 내죠?
그것은 우리가 분을 낼 자격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분노는 우리가 품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품어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살해한 행위
하나님을 살해한 가해자들 그 가해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노를 품어야 해요
분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해자입니다.
분노는 피해자가 품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행위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무리에게 그 분노를 거두어가셨습니다.
예수에게 십자가에서 분노를 다 쏟아 부으시고 이 분노를 가져가 버리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었으니 그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라면 나에게 분을 품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나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나에게서 거둬 가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분을 품을 만한 상황이나 사람들이 주어진다라는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살해한 결과 그 죄인들에게 품어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금 맛배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질병, 가난, 전쟁
이것이 분을 내지 않는 길
분을 습관적으로 내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분노가 어떻게 자기에게서 벗겨졌는지 그 복음의 복된 소식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질투, 시기, 분노는 살인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분노케 하는 상황들과 사건들과 이웃들을 허락하실 때 그것들을 여러분의 영적 성숙의 유용하게 쓰세요.
이것이 성도의 훈련인 것입니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야고보는 노하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함
이 말은 자주 분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로 회복되지 못한 증거다. 라는 이야기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분노케 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분에게서 거둬가신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자주 분노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분노 아래 놓여있다는 증거입니다.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이거하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것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만사형통, 소원성취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내가 여전히 시기하는 자, 질투하는 자, 분노하는 자, 살인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사랑하는 자 용서하는 자, 온유한 자로 지어져 가고 있는가를 확인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어져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자꾸 사랑해보고 용서해보고 인내해보고 감싸않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그것이 잘 안될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때 흘린 눈물을 내가 닫아주마 한 것이 요한 계시록의 말씀인 것입니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그런데 이런 흘린 눈물이 있어야 닦아주죠.
이것으로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자기 신세 한탄하며 울지 말구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어져 가는 양육되어져가는
나를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어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술 취함과 방탕의 문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 5:21 시기와 술 취하기와 흥청거리는 잔치와 같은 것들입니다
술의 지배를 받음
그것의 지배를 받는 것
(가수 조덕배 대마초 7번인가 잡힘)
오늘 우리 자녀들의 생각이 말들이 누구의 지배를 받고 있을까요?
이 세상의 지배? 성령 하나님의 지배?
아니면 환경, 생각, 감정, 느낌, 상처...
육체의 본성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 특징 - 위의 4가지의 범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감
가인의 농사 하는 자 이었음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농사하는 것이 뭐나 어때서?
“농사하는 자” 히) 아바드 “땅을 섬기는 자” “땅에 노예가 된 자”의 뜻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아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들이 많음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이 있음
다시 말해 이 땅에 목메고 있는 자들, 이 땅의 힘이 자기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
돈,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자들..
이런 자들의 특징 육체를 위하여 심습니다.
갈5:21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존 스토트 -> 구원을 얻지 못함으로 해석
인생이란? 삶이란 결국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이란 자의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고 있습니까?
“많은 교회가 기독교의 진리에 물을 타버렸다. 그리하여 그것이 독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죽일 수 없고 그것이 약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고칠 수 없게 되었다”
여러분 이것이 한국교회 모습이요, 우리 가정의 모습이요, 나의 모습은 아닌가요?
일본 원전사고 지역 후쿠시마 – 그곳에 아방궁을 짓고 살려고 한다면 그게 제 정신이 있는 겁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심판받은 이 땅의 것을 추구하며 육체의 본성을 따라 육체를 위아여 심는
다는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블랙 가스펠
세 명의 동갑내기가 흑인 음악의 뿌리가 된 블랙가스펠을 배우기 위해 뉴욕 할렘을 찾게 됩니다. 이들이 할렘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블루스, 재즈, R&B 등 흑인음악의 뿌리가 된 ‘블랙가스펠’을 배우고 할렘 사람들과 콘서트 무대에 서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들이 블랙 가스펠의 대가 선생님인 위다 하딩이라는 흑인 여성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마이크 좀 잡았다고 생각하고, 노래 좀 한다고 생각한 이들을 반 죽여 놓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노래를 시키는데 바로 이 노래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이 노래를 부르게 함
노래하다가 노래를 중단 시키고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당신은 목소리 참 좋네요. 근데 그게 다에요. 목소리만 좋다고요.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은 내 반주를 듣지 않고 자기 노래만 집중하고 있어요. 노래란 반주자와 하나가 될 때 나오는 것이라는 것 몰라요?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사람 직격탄을 날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 중에 손으로 박자를 맞추듯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딱 중단시키더니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 손은 왜 흔드는 거예요. 당최 저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좀 알아야 겠어요.
의미 없이 했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사람 박살을 내놓으니까요 나중에는 마음이 무너져서 막 울어요.
영화중에 흑인 선생님을 인터뷰 하면서 물어요. 왜 그렇게 혼을 냈는가?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헛 멋이든 제자들을 가르칠 스승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수업이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노래는 잘해요, 테크닉은 좋아요, 사실 테크닉은 완벽해요, 그러나 바로 그게 잘못된 점이라는 겁니다. 기교를 부린다고 노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잔기술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이게 하딩 선생님의 주장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다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데 너무나 영감 있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래서 저는 지난 해 11월 17일 가을의 끝자락에 결혼 25주년을 맞이하여 아내와 함께 사랑의교회 안성 수양관 한편 산자락에 묻혀있는 고 옥한흠 목사님 묘를 찾았습니다.
참 마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이 하딩 선생님과 같은 지도자를 잃어버린 교회, 가정
헛 멋만 든 교회, 가정
지도자가 없는 교회
스승이 없는 교회
꾸짖어 주는 어른이 없는 교회
교회가 가정이 제 멋대로
성도가 제 멋대로 가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 교회가 위기입니다.
참된 스승이 없습니다.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야기 합니다.
결론을 맺으면서 롬8:26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어떨 때 도우십니까? 내가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그분의 통치 가운데 거하기를 사모하는 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기를 축복합니다.
육체의 일
1)성적 문제
2)세상사랑 문제
3)깨어진 인간관계 문제
4)술 취함과 방탕의 문제
185장 이 땅에 황무함을 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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