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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갈라디아서

50.율법과 복음 (갈3:23~29)

by 오용주목사 2016. 12. 26.

2016.12.25                                                 50.율법과 복음

                                                              갈3:23~29

 

춘천이레교회라는 이름 아래 첫 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성탄 설교를 뭘 할까 고민하다. “율법과 복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성경, 율법, 또는 율법주의, 계명, 복음 이런 말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실제 율법이 뭔지 복음이 뭔지를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각자의 말로 율법이 뭐다 말해볼 수 있습니까? 또 율법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듭니까? 그리고 율법 앞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혹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습니까?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면, 성경은 말 그대로 신구약 66권을 성경이라 말합니다. 계명은 율법을 간추려 놓은 것으로 보통 십계명을 말합니다. 그럼 율법이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자면 율법이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을 율법이라 말합니다. 율법에는 크게 하라는 것과 하지마라는 것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또한 복음이라 할 때에는 신약 성경을 복음이라 말합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뭘까요?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율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요, 복음은 내가 믿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율법은 CTMRI 같은 것이라면 복음은 치료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1.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율법의 주신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은 우리들이 그것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성경 탐구의 삶공부, 출애굽광야시대에서 살펴보았듯이 출애굽기는 총40장으로 되어 있는데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는 1장에서 19장까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후반부는 20장부터 40장까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였으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율법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이 그 율법을 잘 지켰을 때 그 대가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먼저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도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의 백성의 규범으로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 구원과 은혜가 먼저이고 율법이 나중이었습니다. 율법은 어느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나 의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2. 율법을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1) 율법주의

여러분 우리는 율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은혜와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때, 그것이 곧 율법주의라는 겁니다. 율법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율법을 잘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여러분 율법주의가 위험한 것은 율법주의는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그런데 그 행함이 23절에 보면 주님에 의해서 부정당합니다.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잘 못한 것일까요? 왜 주님은 그들의 행함을 불법이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마7:21절에 나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을 하기는 한지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 스스로 노력으로 영생에 도달 할 수 없고, 우리 착하고 선한 행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공로만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통하여 영생에 도달 할 수 있고,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구제하고, 금식하고, 헌금하고, 성경공부하고,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했다는 겁니다. 결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율법주의의 무서운 부분입니다.

 

2) 반 율법주의

율법주의가 이렇게 심각하지만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반 율법주의입니다. 반 율법주의란? 율법은 이제 폐하여 졌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약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율법은 신약의 뿌리가 되는 책입니다. 율법은 그림자 복음은 실체입니다. 우리가 오늘 드리는 예배의 뿌리가 제사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도바울의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이 말을 빌어 율법은 폐지되었으니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 말하고 예수님은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 하니 서도 아주 상충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누구 말이 맞나 하면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율법을 폐하였다는 말은 제도, 조직을 말합니다.

 

안식일 제도에 대해 처음 율법을 주신 때가 출애굽후 출20장 십계명에 나옵니다.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일 안 나가고 하루 쉬는 차원의 안식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키면서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천치를 지으신 하나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서 이 안식일 계명이 신명기에 또 다시 주어지는데 5:12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5: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5:14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신명기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과 좀 다릅니다. 앞쪽은 같은데 뒤쪽 15절은 좀 다릅니다.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기 20장의 안식일 계명은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라 하셨는데 40년이 지난 뒤에서는 그 말은 없고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켜라 말씀합니다.

 

이 무슨 말일까요? 40년 전 안식일은 창조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켰다면 40년이 지난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키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계명이 1500년 동안 지켜져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가 오신 다음에 신약성경을 보면 사도들이 안식일도 지키고 안식 후 첫날 주일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 사도들이 가르치기를 안식 후 첫날, 주의 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날을 안식일에 완성인 주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이 주일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20:13 살인하지 말지니라 20:14 간음하지 말지니라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구약의 피의 제사가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이제 더 이상 피의 제사들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피의 제사 제도나 의식은 폐하여 졌지만 그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예배로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구약에는 할례가 마음의 할례로 완성되어가는 것입니다.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구약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한 것은 영양학적으로 뭔가 좋지 않기 때문에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속에서 거룩의 연습을 시킨 것입니다. 정한 짐승,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를 해 놓고 정한 것만 먹으라 부정한 것은 먹지 말라, 그렇다면 여러분 내가 돼지고기를 먹음으로 부정해집니까? 소고기를 먹음으로 거룩해 집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본질의 껍데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붙잡아야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날 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그 제도는 우리가 그대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제도 속에 들어가 있는 하나님의 마음, 의중을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절대 폐기될 수 없습니다. 단지 제도나, 의식들이 페기된 것뿐이고 재해석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2) 중간지대

또 하나의 중간지대 형태, 갈라디아 주의 : 구원받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받는다. 그러나 구원이 유지되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이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그렇게 취소되지 않습니다. 이것도 잘 못된 것입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첫째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하여 박하와 회향과 근채(채소, 식물)의 십일조는 드리되라고 말합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아주 적은 소득의 십일조를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것의 십일조는 잘 드리는데 율법의 있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라고 말합니다.

 

는 헬라어로 '크리시스로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율법에는 심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면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심판을 왜 받습니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통하여 심판이 있는 것을 안다는 것은 곧 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다는 말입니다.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표준새번역) 3:19 그러면 율법은 무엇 때문에 주셨습니까 ? 그것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실 때까지 죄를 밝히시려고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천사들을 거치고, 중개자의 손을 거쳐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합니다. 율법은 마치 우리 영혼의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는 얼굴에 아무리 더러운 오물이 묻어 있어도 거울을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16살 때 카리타고로 유학을 가면서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한 아프리카 여자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면서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그 후 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는 동거해 온 여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세례를 준비하며 2년을 기다려 정식으로 결혼하도록 했지만 어거스틴은 2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정욕에 사로잡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런 어거스틴은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모습을 보며 탄식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이웃집 뜰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서재로 뛰어가 성경을 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구절이었습니다(13:13).

 

율법을 통해서 우상숭배가 무엇이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살인도, 도적질도, 간음도 한 적이 없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그들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와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이 얼마나 죄로 가득 차 있는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름날의 방 안과 같습니다. 햇빛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깨끗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햇빛이 방 안에 비치면 이루 셀 수 없는 먼지들이 방 안에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사람들 속에 비치면, 그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죄들이 그 속에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 율법은 죄를 심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누군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을 더욱 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에게 생깁니다. 그래서 멀쩡한 유리인데도 거기에다 유리를 깨뜨리지 마시오라고 써 붙여 놓으면 더욱 그것을 깨뜨리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가 율법을 통해서 욕망을 부채질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우리 속에서 죄를 심화시킵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 속에 어떤 선한 것도 없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셋째,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정교사입니다.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대교회 당시에는 노예 중에서 똑똑한 자를 택하여 자녀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가정교사로 삼았는데, 몽학 선생이란 그러한 사람을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인간의 철저한 타락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서 죄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어떠한 의에도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철저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손을 붙잡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도록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갑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목적입니다.

 

넷째,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의 규범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때가 언제입니까? 아브라함 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을 의로 여김을 받음으로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00년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 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에 그들을 빼내서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 갈을 가로질러서 시내산 기슭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 시내산 기슭에 1년 이상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때 율법을 받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계산하면 적어도 4백 수십 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그러면 그동안에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율법도 없이, 여러분 율법이 없었지마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이집트 땅, 죽음의 땅, 노예였던 땅을 빠져나와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구원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침서로 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삶의 규범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 자체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억매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그것은 또 다른 극단이요, 잘못된 것입니다.

 

자 그런데 바울은 갈3:23~24절에서 우리가 율법아래 있을 때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여기 믿음이 오기 전에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을 의미하는데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갇혀있다, 수감되었다, 구속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갇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 잘 들어보세요. 율법은 우리들에게 크게 도덕법, 시민법, 제사법에 대하여 행할 일과 행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도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율법에 어긋나게 살았기 때문에 그 율법의 정당한 판결을 받아 정죄의 판결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띠라서 우리는 죄 아래, 율법 아래,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형언도를 받고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신세들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받고 나니 결과가 위암 3기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이 사람은 위암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위암 수술을 받고 완쾌 될 때 까지 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우리를 향하여 너는 죄인, 그리고 언도하기를 사형을 언도합니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죄의 감옥에 갇혀있다는 말입니다.

 

4.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성탄절에 빼놓지 않고 부르는 찬양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다고 찬양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우리를 율법아래에서, 율법의 감옥에서, 죄의 감옥 에서 해방시켜 은혜아래 있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 방법이 뭐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대신 감옥에 갇히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사형집행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 아래서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이 복음 때문에 구원받고 이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지키는 것이라면 복음은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보내는 것이 무엇인가? 왜 예수님께서 오셨는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왜 오셨다고요? 우리를 죄의 포로에서 자유케 하기 위하여, 죄에 억눌려 살아가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죄의 감옥에서 갇혀 신음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한 것 아닙니까?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 복음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정확하게 내 삶의 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은 어둡고 눈물 나는 현실이지만 이 복음이 내 삶에 큰 기쁨이 됨을 맞보고 누려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쁨의 소식을 흘러보냐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이 기쁨의 소식을 누군가 나에게 전했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아직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자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에게? 전해야 한다고요?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