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19 23.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3)
갈5:16~21
저는 지난주일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애비’라는 노래제목의 가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물론 이 노래 가사는 결혼을 하는 딸을 위해한 노래 가사지만 저는 이 가사를 접하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애비 소원은 그것뿐이다.
그런데 여러분 잘 사는 것이 무엇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기장에서 목회를 하고 할 때 어느 날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요즘 잘 살고 있니? 그래서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잘 사는 것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돈이 많은 것이 잘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못살고 있으며 예수님 잘 믿는 것이 잘 사는 것이 라면 잘 살고 있다고 대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은 잘 살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바른 대답을 위해서는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의 삶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제시하는 삶의 길과 따른 하나는 성경이 제시하는 삶의 길입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삶의 길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사는 삶을 말하며, 성경이 제시하는 삶의 길은 성령을 위하여 사는 삶의 길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것이 뭐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이 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계시록에 보면 우리의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타락한 본성을 따라 저급한 욕구로 산다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될 것이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 세 번째 깨어진 인간관계 문제와 술 취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깨어진 인관관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 여전히 육체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살고 있는 것 중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깨어진 인관 관계입니다.
갈5:19-21에 육체의 일을 열거하는데 한 번 보세요.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20절 중반 절에서 21절 상반 절까지를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질투와” 쭉 열거되는 인간의 저급한 본성을 들여다보니 대부분이 인간관계와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했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아내를 위해 바쳤던 사람이 바로 아담이었는데 그런데 타락으로 변질된 후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망친 원인이 하나님이 보내준 저 여자 때문이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저 여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부부 관계는 어떻습니까?
처음 연애할 때나 신혼 초에는 서로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여러분의 남편에게 아내에게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 버전으로 “내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질 되었습니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당신이 문제라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 당신, 당신, 당신...
어디 이것이 가정에서만 일어난 일인가요?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 목사는 성도들 탓, 성도는 목사 탓으로 서로를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사회 법정에 까지 서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 아닌가요?
1) 그런데 그 깨어진 관계의 배후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움, 시기, 질투라는 겁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미움)과 분쟁과 시기(질투)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시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여러분 창 4장에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돌로 처 죽여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는데 살인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미움, 시기, 질투 아닌가요?
가인이 왜 아벨을 죽었나요? 미움과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그 자체가 살인의 동기가 되는 겁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왜 죽이려 했나요? 질투 때문에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왜 죽이려 했죠? 질투 때문에
요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1: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여러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되나요? 그런데 왜? 질투 때문에...
요11: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 하니라”
질투, 질투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왜곡 시키는 가장 무서운 감정이 바로 질투심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절대 질투심을 갖지 않아요.
질투심이란 어떤 면에서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갖는 감정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기보다 나은 모습이 보일 때 그를 누르고 싶고, 제거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 마음을 질투라고 하는 겁니다. jealousy 젤러시
2) 또 하나 깨어진 인관관계의 배후에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가 왜 분노하냐?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왜 분을 내죠?
그것은 우리가 분을 낼 자격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분노는 우리가 품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품어야 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살해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살해한 가해자들 그 가해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노를 품어야 해요
분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해자입니다.
분노는 피해자가 품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행위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무리에게 그 분노를 거두어가셨습니다.
예수에게 십자가에서 분노를 다 쏟아 부으시고 이 분노를 가져가 버리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었으니 그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라면 나에게 분을 품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나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나에게서 거둬 가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분을 품을 만한 상황이나 사람들이 주어진다라는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살해한 결과 그 죄인들에게 품어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금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을 내지 않는 길
분을 습관적으로 내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분노가 어떻게 자기에게서 벗겨졌는지 그 복음의 복된 소식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질투, 시기, 분노는 살인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분노케 하는 상황들과 사건들과 이웃들을 허락하실 때 그것들을 여러분의 영적 성숙의 유용하게 쓰세요. 이것이 성도의 훈련인 것입니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야고보는 노하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함
이 말은 자주 분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로 회복되지 못한 증거다. 라는 이야기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분노케 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분에게서 거둬가신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자주 분노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분노 아래 놓여있다는 증거입니다.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이거하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것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만사형통, 소원성취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추구해야 할 것은 내가 여전히 시기하는 자, 질투하는 자, 분노하는 자, 살인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사랑하는 자 용서하는 자, 온유한 자로 지어져 가고 있는가를 확인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어져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자꾸 사랑해보고 용서해보고 인내해보고 감싸않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그것이 잘 안될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때 흘린 눈물을 내가 닦아주마 한 것이 요한 계시록의 말씀인 것입니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그런데 이런 흘린 눈물이 있어야 닦아주죠.
이것으로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자기 신세 한탄하며 울지 말구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어져 가는 양육되어져가는
나를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어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3) 관계를 회복하는 법
①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하라
하나님과 먼저 그 문제에 대해 의논하라. 친구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우리의 도움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키신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관계들을 놓고 더 기도한다면, 분명 그 관계들은 더 원만해질 것이다
다윗이 시편을 통해 그랬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라.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라. 대부분의 갈등은 필요가 충족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데 그 필요 가운데는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없다.
야고보는 대부분의 갈등이 기도의 부족으로 생긴다고 지적했다(약4:1-2).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화를 낸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왜 먼저 오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실 것이다
② 항상 먼저 다가가라
우리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대하신다. 상대방이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러므로 예물을 재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관계가 왜곡되고 깨어지면 가능한 한 빨리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잡으라.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고 문제가 더 심각해질 뿐이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는다. 재빠르게 행동하면 영적인 손실도 적어진다. 성경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도의 응답을 막는다고 말한다(벧전3:7, 잠28:9)
③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라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하라. 바울은 “자신의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서로의 일들도 돌아보라(빌2:4, TEV)고 충고했다. ‘돌아보다’라는 표현의 그리스어는 스코포스다. 이 단어는 망원경 그리고 현미경의 어원으로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다. 사실보다는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 해결이 아닌 공감으로 시작하라. 사실 분노는 우리를 어리석게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으면 짐승처럼 행동한다
이와 반대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내는 지혜에서 나오고 지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데서 나온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나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당신은 나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④ 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하라
만일 당신이 진지하게 관계의 회복을 원한다면 우선 자신의 실수나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 고백은 화해의 아주 강력한 도구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때로는 본래의 문제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스스로의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하기 시작한다면 상대방도 화를 풀고 공격을 늦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방어적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정도의 대가를 치루라.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
⑤ 사람의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비난, 비하, 비교, 판단, 모욕, 멸시 그리고 빈정대는 태도 등 관계에 있어서의 핵무기들이 들어 있는 무기고를 파괴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놓았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⑥ 할 수 있는 한 협력하라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고 말했다.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든다. 때로는 그 대가가 우리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자기 중심정일 수도 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상대방의 필요에 호의를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롬12:10,빌2:3). 성경은 예수님의 7번째 산상수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경쟁이나 싸움이 아닌 협력하는 방법을 보여줄 때에 너희는 복을 받는다. 그때가 바로 너희가 진정 누구이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때다”(마5:9 Msg)
⑦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하라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동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해결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화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그 중요성을 잃고 무의미하게 된다
서로 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도 관계는 다시 세워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의견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그 의견에 반대할 수 있다.
2. 술 취함과 방탕의 문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 5:21 시기와 술 취하기와 흥청거리는 잔치와 같은 것들입니다
술의 지배를 받음
그것의 지배를 받는 것
(가수 조덕배 대마초 7번인가 잡힘)
오늘 우리 자녀들의 생각이 말들이 누구의 지배를 받고 있을까요?
이 세상의 지배? 성령 하나님의 지배?
아니면 환경, 생각, 감정, 느낌, 상처...
육체의 본성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 특징 - 위의 4가지의 범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감
가인의 농사 하는 자 이었음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농사하는 것이 뭐나 어때서?
“농사하는 자” 히) 아바드 “땅을 섬기는 자” “땅에 노예가 된 자”의 뜻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아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들이 많음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이 있음
다시 말해 이 땅에 목메고 있는 자들, 이 땅의 힘이 자기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
돈,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자들..
이런 자들의 특징 육체를 위하여 심습니다.
갈5:21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존 스토트 -> 구원을 얻지 못함으로 해석
인생이란? 삶이란 결국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이란 자의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고 있습니까?
일본 원전사고 지역 후쿠시마 – 그곳에 아방궁을 짓고 살려고 한다면 그게 제 정신이 있는 겁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심판받을 이 땅의 것을 추구하며 육체의 본성을 따라 육체를 위아여 심는다는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블랙 가스펠
세 명의 동갑내기가 흑인 음악의 뿌리가 된 블랙가스펠을 배우기 위해 뉴욕 할렘을 찾게 됩니다. 이들이 할렘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블루스, 재즈, R&B 등 흑인음악의 뿌리가 된 ‘블랙가스펠’을 배우고 할렘 사람들과 콘서트 무대에 서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들이 블랙 가스펠의 대가 선생님인 위다 하딩이라는 흑인 여성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마이크 좀 잡았다고 생각하고, 노래 좀 한다고 생각한 이들을 반 죽여 놓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노래를 시키는데 바로 이 노래입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이 노래를 부르게 함
노래하다가 노래를 중단 시키고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당신은 목소리 참 좋네요. 근데 그게 다에요. 목소리만 좋다고요.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은 내 반주를 듣지 않고 자기 노래만 집중하고 있어요. 노래란 반주자와 하나가 될 때 나오는 것이라는 것 몰라요?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사람 직격탄을 날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 중에 손으로 박자를 맞추듯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딱 중단시키더니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 손은 왜 흔드는 거예요. 당최 저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좀 알아야 겠어요.
의미 없이 했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사람 박살을 내놓으니까요 나중에는 마음이 무너져서 막 울어요.
영화중에 흑인 선생님을 인터뷰 하면서 물어요. 왜 그렇게 혼을 냈는가?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헛 멋이든 제자들을 가르칠 스승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수업이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노래는 잘해요, 테크닉은 좋아요, 사실 테크닉은 완벽해요, 그러나 바로 그게 잘못된 점이라는 겁니다. 기교를 부린다고 노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잔기술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이게 하딩 선생님의 주장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다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데 너무나 영감 있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래서 저는 지난 해 11월 17일 가을의 끝자락에 결혼 25주년을 맞이하여 아내와 함께 사랑의교회 안성 수양관 한편 산자락에 묻혀있는 고 옥한흠 목사님 묘를 찾았습니다.
참 마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이 하딩 선생님과 같은 지도자를 잃어버린 교회, 가정
헛 멋만 든 교회, 가정
지도자가 없는 교회
스승이 없는 교회
꾸짖어 주는 어른이 없는 교회
교회가 가정이 제 멋대로
성도가 제 멋대로 가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 교회가 위기입니다.
참된 스승이 없습니다.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야기 합니다.
결론을 맺으면서
약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어떨 때 도우십니까? 내가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그분의 통치 가운데 거하기를 사모하는 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기를 축복합니다.
우린 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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