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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갈라디아서

25.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갈6:7~9)

by 오용주목사 2016. 7. 3.

2016.07.03                                                                      25.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6:7~9

 

 

지난 624일 어느 남자 탤런트가 부부싸움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욕실에서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지난 한주 내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접하면서 그 남자 탤런트가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가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던 2010년도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모릅니다. 그런 때에 필로폰과 대마초를 피운 협의로 구속이 된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감옥에 갔다가 나와서 3년 뒤엔가 어느 연예인 프로에 나와 가지고 다짐을 하는 겁니다. 내 다시는 안 그러겠다. 많은 시청자 앞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다짐을 해 놓고도 2년이 지나 가지고 또 마약에 손을 대가지고 체포되고 감옥에 가고 결국 자살을 시도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줄 아시겠습니까? 필로폰, 대마초에 한번 중독이 되고 나니 그것을 끊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 탤런트는 필로폰 대마초 이거 계속하면 망한다는 것 몰랐겠습니까? 알고도 안 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중독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에 중독되면 그것을 끊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해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반복하는 겁니다.

 

5:19 육체의 행실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5: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5:21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 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저급한 욕구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그 처방이 갈5;16절에 나와 있습니다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란?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말씀과 성령의 감동)

2)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

 

우리가 성령의 인도와, 성령의 통제를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중요한 3가지

1. 성령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해야 함.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믿음이 필요함

 

성령님이 계신 것과,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고, 성령님을 의뢰할 때 가장 선하고 안전한 길로 이끄시는 분임을 신뢰함이 필요함.

 

따라서 항상 성령님을 묵상하고, 예배하고,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정하고, 행하신 일에 대하여 묵상하고 경배, 경외, 존중,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의식하고 신뢰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가족이라는 시를 써가지고 그것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아버지들이 열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주셔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가장 기분이 좋으세요.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인정받을 때

직장에서 위에 분들이나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때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에게 인정받을 때 가장 행복하죠.

마찬 가지로 성령의 인도, 통치를 받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혹시 성경 안에서만 인정하는 것은 아닌가요?

어떤 성도들은 성경 안에서의 성령 하나님은 인정하고 믿는데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무슨 말입니까? 이후 모든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첫 단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의 선언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핵심입니다.

 

반대로 성령 하나님의 인도, 통치를 받지 못하게 하는 첫 번째가 무엇일까요?

즉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에게 질문? 언제 가장 기분 나쁘세요?

남편들에게 질문? 언제 가장 기분 나쁘세요? 직장 갔다 왔는데 밥상도 안차려 줄 때?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무시당했다는 겁니다.

 

교회 성도 분들 중에 가끔 시험 들었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중에 시험 1순가 뭔 줄 아세요.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입니다.

 

여러분 왜 자기를 무시하면 기분 나쁜 줄 아세요? 사람이기 때문에(인격체)

성령 하나님도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무시당하면 근심하세요.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구체척인 것 -> 자주 묻는 것 예) 상담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기 위해 전제가 되어야 할 것 한 가지는 내가 누가인가를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입니까?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권속 -> ) 오이코스 -> 가정이란 뜻 -> 한 집에 거느리고 사는 식구를 가정이라 함

그러면 누가 거느리고 있나요? 아버지가 거느리고 있다는 겁니다.

성령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여기에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됨이 전제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이 전제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뭔가요? 아까 어떤 아이의 시처럼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이거 오늘 우리 모습 아닙니까?

교회에서 보이는 것이 목사, 장로, 권사, 오이코스 리더 아닙니까?

 

이 시를 오늘 성도들에게 적용해보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주셔서

장로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오이코스 리더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그런데 하나님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교회 안에 눈에 보이는 목사가 설교하고, 중직자들이 교회를 섬기고, 오이코스 리더들이 성도들을 섬기니 하나님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교회에 하나님이 안보여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는 것 이것이 오늘 교회의 변질 아닙니까?

 

여러분 앞에 말씀 드렸던 초등학생이 범한 우가 무엇입니까?

이 아이는 어려서 온통 눈에 보이는 것 밖에는 볼 줄 모르는 철이 없고 미숙하다 보니 제 엄마가 먹을 것 주면 엄마가 고맙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많으면 냉장고가 고맙고, 심지어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 고마워하면서 사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가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도록 일은 아침 이 꼬맹이가 눈뜨기도 전에 회사로 달려 나가 뼈 빠지게 수고하는 아버지의 수고가 보이지 않아서 애는 철부지라는 겁니다.

요즘 아버지는 가정에 찬밥신세인거 아세요.

기정에서 왕 따를 당하는 주인공이 다 아버지들이에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합니까? 혹시 여러분 교회 안에 우리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가장들이 가지고 있는 그 섭섭함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 아닐까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눈에는 누가 보입니까?

교역자만 보이고, 리더만 보인다고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교회를 교회 되도록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그런 교회라면 그 교회는 병든 교회입니다. 그런 가정은 병든 가정입니다. 그런 개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철이 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구나, 우리 아버지 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구나 이것이 보이는 것이 철이 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영적으로 철이 든다는 것은 뭘 이야기 하겠습니까?

우리 이레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 교회의 호주 되시고 아버지 되심을 볼 줄 아는 것이 영적으로 철이 드는 것입니다.

 

2. 성령 하나님께 민감 하자

오늘의 우리의 문제 민감할 때 둔감하고 둔감할 때 민감하는 것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민감해야하는데 거기에는 둔감함

사람들의 소리에 둔감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민감함

 

사울 왕 -> 한마디로 처음에 좋았으나 끝은 실패한 사람

사울 왕의 문제 -> 민감해야할 하나님께 둔감하고 둔감해야할 백성들의 소리에 민감한 사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디에 민감하세요?

 

하나님의 작은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함.

초음파 검사 때의 의사의 눈빛에 민감함과 같은 민감함.

 

다윗 성령 하나님께 민감한 사람

삼상24: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24: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24: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만약 다윗의 하나님께 민감하지 않고 환경에 민감했다면 그 날 사울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다윗의 사람에게 민감했다면 그날 나단은 목숨은 붙어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윗의 범죄 했지만 우리가 다윗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성령 하나님께 민감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마치 칼과 같습니다.

성령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우리가 칼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 두면 그것이 칼이라 해도 무엇도 벨 수 없는 무딘 것이 되듯이 성령 하나님께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심령이 무디어져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닭아 없을 지언정 녹슬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3. 성령 충만을 갈망하라

 

갈망하는 것 -> 목말라함

지독한 가뭄 때 '헐떡거리는' 들짐승들을 묘사하는 단어

 

요엘1: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요엘1:20의 문맥을 고려할 때 이 용어는 '찾기에 갈급함같이로 번역하기보다는 '울부짖으며 찾음과 같이'로 번역해야 원문의 의미가 살아날 듯싶다(Luther).

 

아이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성장통이 있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을 갈망한다면 성숙에는 반드시 성장 통이 따름을 기억해야함.

성장 통이 없는 리더는 병든 리더다.

여러분! 운동. 엘리베이터 두고 걸어서 올라감.

아파야 해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만족하면 안 된다.

성장하면 통증이 있게 되어있어요.

아무런 성장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병들었다는 증거임을 자각해야 함.

고통이 느껴지십니까?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향한 갈망이 있는가?

갈망이란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다.

아프다는 , 갈망이 있다는 것 ->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정말 가정을 위하여 정말 갈망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부부 사이가 회복되길 원하면 갈망이 회복의 원천임을 믿습니다.

교회가 회복되기를 정말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갈망이 교회 회복의 원천임을 믿습니다.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세워지길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갈망이 회복의 원천임을 믿습니다.

 

성도들이 회복되기를 정말 원하십니까? 갈망이 성도들의 회복의 원천입니다.

영혼이 건강해 지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게 없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주님 만나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갈망이 주님 만나는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 항상 갈망하라

 

2013년에 주신 단어: 항상 갈망하라

 

4.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함

 

성결(카다쉬): 잘라내다.

타락하고 변질된 세상에서 불순하고 더러운 것들을 날마다 잘라야 합니다. 끌려 다니면 안 됩니다. 나의 약한 것들을 날마다 잘라야 합니다.

 

옷을 바꿔 입다. 옷을 빨아 입다. 예배시간, 오이코스, 모임을 통하여 지난 한주 동안 세상에서 흙탕물을 세탁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내일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한다는 사실을 믿는 자는 오늘 성결한 삶을 살게됩니다.

 

1.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삶 (빌립)

2)성령의 통치 가운데 사는 삶 (사도들)

2. 성령의 인도와 통치 가운데 살기 위해서

1) 성령 하나님을 인정

2) 성령 하나님께 민감

3) 성령의 충만함을 갈망하라

4)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함

결과 영생이 거둠, 이 땅에서 천국을 맞보며 살게 됩니다.

이 삶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야 하며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신앙을 전수해야 합니다.

찬양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