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하나님과 스토리를 소중히 여긴 사람
단 1:8~9
지난 시간에 이어 다니엘서를 계속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교회가 위기다 위기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분명 한국교회는 위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향후 10년이 한국교회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에서 왜, 아직 꿈도 펼치지 못한 우리 자녀들의 아까운 목숨을 그렇게 많이 잃었습니까?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한국교회도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니엘과 같은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음세대는 다음세대들이 책임져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보다 더 영적타락의 시대에 소망의 빛으로 인도하는 사람으로 준비하는 것은 기성세대인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럼 다니엘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영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
2. 확고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3. 뜻을 정한 사람이었습니다.
4.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
몇 년 전 제가 타고 다니던 차를 폐차하고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구입했습니다. 제가 늘 타고 다녔던 차는 15년이란 연수를 훌쩍 넘긴 오래된 가스 차였습니다.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차, 최첨단 전자 장치를 자랑하는 고급차에 비해, 아무런 볼품없는 차, 한 겨울에는 아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그런 차, 중고로도 팔 수 없는 오래된 낡은 차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를 폐차할 때 마지막으로 차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기념으로 남겼습니다. 왠 줄 아십니까? 그 차는 화려한지 않지만 지난 15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차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김정태 라고 하는 사람이 지은 책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라는 책을 보면, 이 책은 두바이 7성급 호텔과 필리핀 마닐라 호텔을 비교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두바이에 갔는데 가이드가 하는 말마다,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수식어가 붙더라는 겁니다. 특히 두바이 7성급호텔은 세계 최초, 최대, 최고 수식어를 단 스펙 좋은 호텔이고, 필리핀 마닐라 호텔은 일백년 전에 세워져 무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수많은 명사들이 묶었으며 정성어린 서비스로 유명한 스토리가 있는 호텔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세계최초, 최대, 최고의 수식어가 붙는 두바이 7성급 호텔도 시간이 지나 더 좋은 스펙이 나타나면 두바이 7성급 호텔은 최고라는 수식어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닐라 호텔은 시간이 지나도 다른 무수한 경쟁자가 나타나도 그들의 스토리를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왜냐하면 스토리에는 경쟁도 없고 외부의 영향도 바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그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이것이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영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영적인 스펙을 추구할 수도 있고, 영적인 스토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책에 나오는 스펙이라는 것이 신앙경력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스토리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만의 인격적인 만남, 하나님과 나만의 추억 이걸 추구하는 것이 스토리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한번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날 내 신앙생활이 신앙의 경력만 있는지?
아니면 주님과 나만의 인격적인 관계,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지?
지금 내 신앙은 스펙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추억을 추구하고 있는지?
여러분 여기 젊은 연인이 있는데 그들이 이렇게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났는데 그런데 아무런 추억이 없다면 그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기 30년 동안 결혼생활 한 주부가 이제 갓 결혼한 새댁에게 밥은 이렇게 해야 하고, 빨래는 저렇게 해야 하고, 청소 어떻고... 자기의 노하우를 설명하고 자랑한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사랑하는 남편과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면 그 30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 가지로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몇 년 했다, 나는 성경을 몇 독 했다, 나는 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나는 금식을 몇 번했다, 봉사를 이렇게 했다. 신앙의 스펙을 자랑하지만 만약 주님과 인격적 만남의 추억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단1: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1: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1: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다니엘 앞에는 놀라운 스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궁에서의 생활이 다니엘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경력이 되겠습니까? 이제 그는 성공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기서 뜻을 정하다는 말을 직역하면 마음을 결정하여 이런 뜻입니다. 지금 다니엘이 무슨 마음을 결정했습니까? 나는 왕궁에서 왕과 함께 동행 하는 이 놀라운 스펙을 내려놓겠다는 겁니다. 스펙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겁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과 스토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8절이 이야기하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우 이 땅의 것을 추구하다 하나님과 스토리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습니까? 뿐만 아니라 열심히 신앙의 스펙은 쌓여가고 있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추억을 잃어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한 형제, 트럭을 운전하는데 트럭 3대가 물품을 납품하고 돌아 오늘 길에 눈길에 이 형제가 몰든 차가 앞에 가던 터럭을 들이 받는 사고가 난겁니다. 그런데 앞차는 견적은 6-70만 원 정도 나오는데 자기 차는 1000만 원 정도 견적이 나온 거예요. 문제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때, 내가 사고를 냈을 때 상대방 차 수리비는 보험이 되는데 자기 차는 보험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방 60만 원 정도는 보험 처리가 되지만 본인 차는 본인이 부담해서 수리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차 운전수가 자기가 잘 못해서 사고를 냈다고 하자는 겁니다. 왜 일까요? 1000만원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관계를 선택하므로 1000만원이라는 많은 수리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님과 아름다운 스토리를 엮어가는 추억을 만들어 가더란 말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 없는 기회, 하나님 없는 화려함, 하나님 없는 왕궁생활, 하나님 없는 성공은 모래위에 세운 집과 같다는 것을 다니엘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다니엘은 많은 연단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자굴에 던져지는 고통이 있었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을 엮어가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기도제목이 뭔가요? 하나님과 동행하면 좋고, 동행 안 해도 좋아요, 난 그저 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고, 내 문제 해결해 주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몰라요. 하나님은 나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은 나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원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에는 전혀 마음이 없어요.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 그것 주는 것에 만 온 관심이 있어요.
우리가 자녀들을 키우면서 애들이 사춘기 때 한 번씩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부모들은 애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원하는데, 그래서 여행도 같이 가고,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같이 보고, 때로는 카톡을 보내기도하고 별별짓을 다하면서 우리 부모는 아이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그러는데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잘 몰라요. 인터넷을 뒤져서 맛있는 음식점에 데리고 가 맛있는 밥 사주면 다 먹고는 하는 말 언제 집에 갈 꺼야고...바쁘데요 이렇게 애들이 할 때 마다 되돌아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너진 마음 아닌가요? 아! 그놈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아빠가 아니라 아빠의 지갑이었구나, 이것을 느낄 때 마다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는지.... 이 무너진 마음이 하나님 마음이 아닐까요? 난 너와의 추억을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원하는데 우리는 맨날 하나님 손의 능력이나 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러분 보십시오. 모세와 다니엘이 쌍둥이처럼 같은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화려함을 내려놓고, 동족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요? 사실 이후 모세나 다니엘이나, 이들이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왔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들의 인생을 누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그물이 찢어 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을 선택함으로 그 이후 그의 삶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 와 마침내 순교의 재물이 되었지만 누가 그의 인생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도전하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은 바리새인들처럼 화려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가지만 하나님과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주위에 연예인들 결혼식을 보면 얼마나 화려합니까? 그러나 여러분 화려함만 추구하다 추억을 잃어버려 깨어진 가정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다 에녹을 묵상했습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너무 예뻐서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갔던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와 에녹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부름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에녹은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예쁜 구석이 보이지 않아요. 잘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어요. 애 낳은 것 밖에 한 것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에녹에게서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에녹은 무엇을 어마 어마한 일을 이룬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하나님과 동행했데요. 동행한게 뭡니까? 하나님 관계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창5:24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 하더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것보다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두바이 7성급 호텔처럼, 화려한 신앙의 경력, 신앙의 이력, 사람들의 칭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추구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입니까?
오늘 여러분 왜 예배를 드리시나요?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그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인가요? 그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함인가요? 남편, 아내, 자녀들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치유되기 위함인가요? 네 그 모든 것이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의 만남이 이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누가 노예의 신분을 원합니까? 누가 억울한 누명을 원하겠습니까? 누가 감옥을 원합니까? 그런데 요셉에게 있어서 실패의 상징인 감옥이 그의 삶에 있어서 승리의 상징은 총리가 된 것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억울함의 상징인 감옥이 하나님과 추억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쌓여가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 애급의 총리가 된 것 그것만이 은혜가 아닙니다. 지금 감옥 자체가 은혜예요.
우리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요? 우리는 늘 이 땅에서 화려함만을 원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초라한 감옥으로 인도해 가시는데 지나고 돌아보니 내 생애에 승리만 화려함만 있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감옥이 없었다면 화려한 경력만 추구하고 살아가다가 놓칠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 아닌가요?
오늘 우리 성도들 보면 정말 쉽지 않은 환경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어려움을 기도해서 탈출하는 것, 그것만이 은혜가 아니에요. 지금 그 어려움 자체가 은혜에요. 우리가 그 힘든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누가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했겠습니까? 그 힘든 자리에 있기에 목마르게 주님을 찾은 것 아닙니까? 그 실패의 현장이, 그 고통의 현장이 인생의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된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건강을 위해 기도했는데 도리어 질병을 주셨다구요.그러나 여러분 그 질병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하심, 하나님의 위로하심의 소중한 추억이 있다면 그 질병은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의 그 어두운 환경이, 그 고난의 현장이, 그 기다림의 자리가 하나님과 소중한 추억을 쌓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추억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디모데후서 3:5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이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양이 신앙의 경력, 신앙의 스펙이라면,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여기까지 준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를 생각했던 마음으로 작사했던 찬양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이 세상의 화려함, 안락한 삶 다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면서 먹을 것 제대로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입을 것 제대로 입지 못하고 쉬는 것 제대로 쉬지 못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사랑하는 주님과 소중한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이 찬양은 이렇게 1절을 시작합니다.
(1절) 아름다웠던 지난 추억들, 사랑했었던 많은 친구들, 멀고도 험한 고난의 길을
나 이제 말없이, 주님을 위하여 떠나야지
(후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위해 당신이 바친 고귀한 희생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고파
사랑의 십자가를 맞이하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뜻을 정한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눈 한번 질 것 감으면 내 아내, 내 자녀들 걱정 들 하며 살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외롭게 신앙의 길을 걷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 고난의 길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님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복된 현장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절) 지난 유월절 저녁 성찬 때 주님과 함께 마시던 핏잔 그 일이 문득 생각이 나면
어느새 내 뺨에 주르르 눈물만이 흐릅니다
(후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위해 당신이 바친 고귀한 희생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고파
사랑의 십자가를 맞이하네
이 찬양은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자기가 실패했던 기억 아팠던 추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3절) 새벽닭 울 때 난괴로 웠어, 풍랑이 일면 난 무서웠어, 하지만 이젠 두렵지 않아
이 세상 끝까지 주님을 위하여 죽을 텐데
(후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위해 당신이 바친 고귀한 희생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고파
사랑의 십자가를 맞이하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이 땅에서 성공,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초라한 주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과의 추억을 더듬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노랫말과 같은 추억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과 나만의 추억이 있으십니까?
떠올리면 눈물이 나고
떠올리면 감사가 나오고
떠올리면 참 많이 힘들었고, 아팠고, 괴로웠고,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만져주셨던 추억이 있는 그 장소가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추억을 원하세요.
우리는 이 시간 내 문제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서 두바이 7성급 호텔처럼 화려함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왔는데 하나님 나를 실패의 자리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도, 예배드리는 것도, 섬기는 것도 내 신앙의 모든 행위가 내 위주, 내 초점으로 했는데 오늘 이후로 하나님 위주로 예배하며 하나님 위주의 기도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와의 추억을 원하셨는데 나는 하나님의 손만을 구한 것 회개하고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하나님과 추억을 쌓아 가는 신앙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화려함을 구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는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 이 심정을 가지고 찬양 드리겠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하늘 문이 열려야 하나님과 스토리를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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