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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다니엘

02.사랑의 표현으로서의 결단 (단 1:1-9)

by 오용주목사 2016. 12. 6.

02.사랑의 표현으로서의 결단

1:1-9

 

누가 저에게 목사님, 성경을 한마디로 어떤 책입니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약속한 책이 성경책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언약의 핵심은 무엇인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이것이 언약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언약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할 때 이스라엘의 상황과 형편이 어때야 합니까? 당연히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북 이스라엘은 이미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남쪽 유다는 BC605년에 바벨론의 1차 침공으로 극도의 위기에 처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포로로 끌려가는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언약했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그 하나님의 약속은 부도수표와 같은 부질없는 약속이었나요? 아니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그 작은 나라 하나도 적으로부터 보호해줄 수도 없는 무능한 하나님이신가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첫째, 유다가 망한 이유는 여호야김 왕 한 사람의 판단 착오라는 겁니다.

왕하24: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당시 강대국 애굽과 신흥 강대국 바벨론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급변하는 세계 역사 속에서 여호야김 왕은 그가 왕이 된 후 처음 3년은 친 바벨론 정책을 펼치다 3년 후 바벨론 배신하고 친 애굽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이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연합군 조직하여 침공을 유다를 침공하게 됩니다.

 

둘째, 1: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왕이 된 지 삼 년째 되는 해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을 포위했습니다. 1:2 그러자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넘겨주셨습니다. 지금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침공으로 나라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이 비참한 현실은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럼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왕하23: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23:37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러분 그 악이 뭔 줄 아십니까? 36: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 앞에 자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될 때 그 두루마리를 태워버린 것에요. 말씀 앞에 자각이 없으니,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여기 징계함 같이를 원어로 보면 훈련하다’ ‘잘못을 깨닫게 하다’ ‘강력히 충고하다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야싸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계한 것은 과거에 범죄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거기서 망해버려라 그래서 징계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야싸르, 교육하고, 훈련하고, 잘 못을 깨닫게 해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준비 시키고,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다니엘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패턴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함으로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고, 비난과 조롱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왕 따를 당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를 받아 아무 대나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들 마음대로 같다 붙입니다. 갓 재석, 유느님...이러한 때,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수치를 당하지만 다니엘과 같은 성도들이 불같이 일어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어떤 사람인가요?

 

1.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사건이나 환경을 보는 눈을 가리켜 영적 통찰력이라 하는데 다니엘서를 보면 역사를 보는 다니엘의 시각이 얼마나 넓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세요, 지금 1절에서는 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망하게 될 위기에 빠졌는데 그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여호야김 왕의 판단착오로 외교 정치를 잘못하고 그렇게 되었는데, 그런데 다니엘의 영적 통찰력을 보세요. 2절에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자 보세요, 지금 눈으로 보여 지는 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침략을 해서 수치를 당합니다. 눈으로 보여 는 것은 안티 크리스천들이 인터넷에 하나님을 조롱하는 글들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쉬운 성경, 1: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왕이 된 지 삼 년째 되는 해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을 포위했습니다. 1:2 그러자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넘겨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호야김이 무능해서 생긴 것 같고 악랄한 바벨론이 침공을 해서 일어난 일 같은데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이 일을 주관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는 영적통찰력이 다니엘에게 있었다는 겁니다.

 

2. 그리스도인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

정체성? 본래의 참 모습,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란? 그리스도인의 본래의 참모습, 그리스도인다운 모습. 오늘의 시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손잡고, 적당히 눈감고 그렇게 융통성을 추구하며 사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과 같이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됩니다. 창씨개명(1940 2부터 1945 8 광복 직전까지 일본 제국조선인에게 일본식 성씨를 정하여 쓰도록 강요한 것을 말한다)과 같이 이름을 고처부름

 

다니엘 이름의 뜻 -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

벨드사살 - 벧이(바벨론 신들 중 하나)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다

그러면 이제 부터는 벨드사랄이라고 해야 함

그런데 벨드사살 이름을 거부하고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음

7:28, 8:1, 15, 27, 9:2, 10:2,7, 12:5을 보면 여러 곳에서 나 다니엘” “나 다니엘

무슨 말입니까? 내가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내 이름을 너희들 마음대로 고쳤지만은 나는 벨드사살처럼 살지 않겠다는 겁니다. 다니엘처럼 살겠다는 겁니다나는 우상을 섬기고 우상의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 다니엘은 그따위 시시한 우상을 두려워하는 쫄 장부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이름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사울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입니다.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아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서 서두에는 나 바울” “나 바울은이렇게 소개합니다. 왜 일까요? ? 과거 사울처럼 살지 않겠다. 자기 열심, 노력, 자기의, , 자기 스펙을 자랑하는 삶으로 살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의 이름 둘, 오용주, 그리스도인 ->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 우리의 삶의 모습.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기위해 중요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여러분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를 의식하고 있습니까?

신앙생활 전반(예배, 기도, 성경공부, 헌신, 봉사, 섬김) 누굴 의식? 하나님 의식, 사람 의식

한 때 유행어 너 떨고 있니?” 여러분은 누구 앞에서 떨고 있습니까?

다니엘은 왕 앞에서 떨지 않았습니다. 환관장을, 사자 굴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고 있는 겁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두려워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자주 자주 질문을 해 보아야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환관장은 눈에 보이는 권력자를 두려함, 여론, 사람을 두려워하였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그 이름을 벨드사살이라 고침을 당하였지만은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 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기까지 설교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꾸 다니엘의 마음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사실 다니엘이 나 벨드사살로 살지 않고 다니엘로 살겠다.나는 왕의 음식으로 나를 더럽히지 않겠다 선언했지만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두려웠을 까요?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니엘의 마음을 녹여놓은 찬양 하나가 생각남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로다

나의 몸과 마음 주를 갈망하며 이제 내가 주께 고백하는 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생명의 피난처시니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내 평생에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내손 들리라

 

우리는 이 땅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당 안에서 눈물, 콧물 흘리는 것이 우리 실력이 아니라 바벨론과 같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음에 우리의 실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벨론과 같은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날마다 방황하고 배회하고 허망한 꿈이나 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이곳에서 너무나 잘 즉응한 나머지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감도 버리고 바벨론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온다고 사회에 적응도 하지 못하고 가정은 내 팽개치고 교회만 기도원만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세상에 너무 잘 적응하여 하나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도 아니라 이 세상에 적응하며 살되 하나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것, 이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야할 삶의 자세입니다.

다니엘이 이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동화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의 삶 (학교 식사 시간 기도) 이것이 다니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의 모습인 겁니다.

 

3. 뜻을 정한 결단의 사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만약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포로로 끌려갔다면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떠하던지 그 곳에서 출세하여 포로로서 멸시받고, 괄시 받고, 조롱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자녀만큼은 포로민의 자녀라는 소리 듣게 하지 않게 하고 싶은 것 아닌가요? 그런데 다니엘의 어떤 모습입니까?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 마음을 결정했다는 겁니다. 무슨 마음의 결정을 했습니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안마시겠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왕의 음식은 우상 앞에 드려진 음식이기 때문에 안 먹겠다고 해석하는데 볼드인이라고 하는 주석가는 그 당시 왕의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는 왕에게만 충성하고 왕 만을 의지한다는 언약관계를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나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나는 하나님께 순결을 바친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는 비록 포로로 끌려와 있지만 느부갓네살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웃기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지조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누구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향만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를 위한 기도도 하나님 우리 자녀들이 이 바벨론 같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자녀 되게 해 주기를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 담배)

내가 잠시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이 세상의 것들로 나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뜻은 정했는데 뜻만 정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뜻을 정했으면 그렇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말하는 겁니다. 입으로 선포하는 겁니다.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결심했습니까? 그렇다면 이야기 하는 겁니다. 말로 선포하는 겁니다.

 

아내 결혼 10년 연애 성공이유 선포하는 겁니다. 나 결혼할 사람 있다.

이것이 나를 참고 견디고 인내하게 하더라는 겁니다.

우리도 뜻을 정하지 않으면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함을 느꼈으면 이것이 영적 회복의 출발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니엘에 어떻게 영적통찰력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뜻을 정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으로 혼미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나라가 어떻게 망할 수 있나? 하나님이 죽었나? 하나님이 안계시나? 하나님이 없는 것 아냐?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고 있을 때 다니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 지신, 기근, 폭탄테러 등 수 없이 우리를 상실하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어떤 사람은 영안이 열리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죽었나, 하나님이 없는 것 아냐? 그러나 다니엘과 같은 사람은 거기에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공의를 훼손시키지 않으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변질되고 타락할 때 적당히 얼렁뚱땅 눈 감고 넘어가지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 채찍을 드시는 하나님, 그래서 나라가 비참하게 빼앗김을 당하는 현실 속에 그 하나님의 두려움을 그가 경험하면서 뜻을 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경험했던 또 하나님의 측면이 무엇입니까? 성전 기구를 빼앗아 가도록 방치하신 하나님이 시지만 성전기구 전부가 아니라 일부를 가져가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회복의 통로를 만들어 놓고 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모습이 유다의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내 멋대로 세상 바벨론을 하여하여 달려 나갔던 우리였지만 주님은 언제든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되 돌이키기만 하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그 십자가의 사랑이 다니엘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또 뜻을 정한자로서 결단의 사람으로 만들더라는 겁니다.


그 사랑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 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 가리라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 하리라

다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 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