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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권별설교/창세기

07.안식을 구현하는 삶 (창2:1-25)

by 오용주목사 2016. 12. 6.

07.안식을 구현하는 삶

 창2:1-25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역시 안식’ ‘솨바트단순히 일을 하다가 피곤해서 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곤함이 없는 분입니다.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을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기 안식, '솨바트'는 휴식하다 뜻 이외에 어떤 일을 마치다, 경축하다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안식이란 두 가지 관점에서 정의 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쪽에서의 안식과 또 하나는 인간 쪽에서의 안식입니다.

 

하나님 쪽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보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과 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발휘되어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그 분께 순복하는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거할 실 상태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만족하게 그 처소에 거하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 하나 인간 쪽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을 처소삼아 거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영광에 정상적으로 반응을 해서 그분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상태를 안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쉼, 안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이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이나 우리 쪽이나 무언가 최선을 다해서 행하고 있는 상태가 안식인 것입니다.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1장에서 육일 창조를 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힌트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요5: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에수님께서 안식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셨습이다.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왜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요7:17절입니다.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여기 이제까지까지는 바로 안식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안식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에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신 그 일하심의 정점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중 다 이루었다와 창세기의 모든 일을 다 마치셨다는 말은 같은 의미인데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살려내는 일을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그 안식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그 날을 복되게 했다 -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뻐하다는 의미로 이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입니다. ?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했다 - 카다쉬 분리해서, 구별해서 드리다는 뜻으로 여기서 성소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길을 마치고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안식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였습니까?

 

또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라고 하는데 그러면 천국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쉬기만 하는 곳이 천국입니까? 아니죠? 열심히 뭔가를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정말 쉼을 얻습니까?

등산 하는 분은 등산을 통해 쉼을 얻습니다.

쉼이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무작정 노는 것을 쉼이라 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상태를 쉼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 안식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발휘되고 들어났을 때 그 하나님의 영광 앞에 순종하며 그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는 것 이것을 가리켜 안식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는 지금 이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었다고 그러죠?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왜 구원하셨다고요? 처소를 삼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 안에서 안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처소는 아직 가시적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는 이미 완성이 되었지만 가시적인 역사 속에서는 계속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처소가 되어져 가도 있다라는 말은 곧 여러분이 안식을 누리는 자로 지어져 간다는 뜻이고 안식을 누리는 자로 지어져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들어내는 자로 성숙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처소로 만드시겠다는 말이지 천국에 빌딩 짖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반드시 완성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그래서 여러분이 이러한 진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참 안식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우리의 안식을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뭐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삶,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해 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삶이 우리가 처소로 지어져 가는 삶이고 안식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성도의 존재 목적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이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거룩한 삶이 성도를 하나로 만들어 주며

하나 됨 속에서 보여 지는 것이 사랑임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 이제는 이 우주의 중심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과 이웃이기 때문에, 이 삶을 가리켜 우리가 하나님을 가치 있는 자리에 올려드리는 예배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 삶 속에서 성도는 비로소 순종과 의뢰의 삶인 안식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했다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갈 길이 멉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 됨을 이루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예배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드러내는 그 안식 거기에 거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안식을 누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는 저녁에서 아침으로의 과정을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 안식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은 엘로힘입니다. 전능의 하나님, 전지,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성경에는 엘로힘 야훼란 단어가 무려 6,800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이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란 이름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서 출애굽기 314절을 보겠습니다.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을 야훼, 여호와라고 소개하면서 그 이름의 의미를 뭐라고 합니까?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합니다.

 

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6: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이곳에서는 하나님은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이 담고 있는 내용은 스스로의 능력과 열심히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디시 말해서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지금까지는 전능하신 분, 전지 하신 분, 능력의 하나님이만 나와는 너무 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하나님이셨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하시고 그 어약을 이루시기위해 우리에게 오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아이엠 후 아이엠이 말을 직역하면 나는 나다. 이제까지는 엘로힘, 엘 솨다이, 능력, 창조, 높이계신 하나님이였다면 이제는 내려가서 너희와 함께 거하면서 나를 나타내서 너희를 인도해 나갈 하나님이다는 말입니다. 초월적 하나님이 이제는 내재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친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란 의미입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믿는 분은 하나님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안식의 삶, 즉 하나님의 영광이 발휘되고 들어났을 때 그 하나님의 영광 앞에 순종하며 그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는 아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공실패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연수도, 직분도 아닙니다. 바로 내가 참의지하는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는데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 빌립보 감옥

16: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담대함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함께 하심을 믿은 믿음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 쫓겨나서 지은시 시편34

3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34: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

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34: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안식의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여기 흙으로이 말은 아파르란 뜻으로 땅의 티끌, 먼지로 지어졌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를 가리킬 때 티끌, 아파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아파르)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성경은 사람이 땅의 티끌로 지어졌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이 끊기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가 될 때 그저 티끌에 불과하며 거름더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 티끌은 저주와 심판, 완전한 패배를 나타낼 때 쓰입니다.

왕상16:2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16: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16: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을 때는 그냥 티끌인 것입니다. 그냥 흙입니다. 그러니 티끌인 인간이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에 있을 때는 생명이 되지만 하나님의 생명력이 떠나 버린 인간은 그저 티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떠나 버린 것 이것이 저주요, 심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있는 자 입니까?

 

탕자 불행은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는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는 참된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우리는 티끌에 불과 한데 하나님께서 생명 있는 자로 만들어 주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자는 하나님 의존적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하나님 절대 의존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아야 안식의 삶이 가능합니다.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창조하시고 기쁨의 동산인 에덴동산으로 이끄시어 안식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은 선악과를 먹지 않을 때만 유효한 안식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안식의 삶입니다.

안식의 삶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것이 안식의 삶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이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이나 우리 쪽이나 무언가 최선을 다해서 행하고 있는 상태가 안식인 것입니다.

 

안식이란? 하나님 편에서 안식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과 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발휘되어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그 분께 순복하는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거할 실 상태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만족하게 그 처소에 거하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 하나 인간 쪽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을 처소삼아 거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영광에 정상적으로 반응을 해서 그분께 항복하고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상태를 안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쉼, 안식인 것입니다.

 

이 안식의 삶을 창세기 7일째 안식을 통해서, 출애굽기의 안식일을 통해서 안식의 땅 가나안을 통해서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을 통해 요한계시록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안식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가서 안식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안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거하므로 그 하나님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하며,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므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은 삶 이 삶이 안식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락으로 이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힘으로 안식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 안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만 주어진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바로 사랑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요 복음인 것입니다.

 

이 안식은 절대 인간의 힘으로 완성 될 수 없음을 인간의 타락으로 확정 시키신 후 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 안식이 완성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만 천하에 증거 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된 안식은 하나님의 선물로만 주어진 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제 힘 빼고 그분 앞에 항복하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께 우리의 모든 삶을 의뢰하기로 하는 겁니다.

 

오늘 안식의 중요한 핵심 가치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을 영광하 는 삶을 살기 위한 중요한 명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그 결과를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