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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신앙생활의 이상징후

34.신앙생활의 이상 징후(4) (요14:16-18)

by 오용주목사 2016. 9. 4.

2016.09.04.                                      34.신앙생활의 이상 징후(4)

                                                           요14:16-18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는데 오래전 TV에 실렸던 한 광고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001은 똑같다. 미국도 똑같다. 중국도 똑같다. 국제와 국내 통화료가 똑같다. 국제전화 001” 왜 이 광고가 생각이 났는가 하면, 지난 그 지난 주, 한 주간 동안 우리나라에 장로님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한 분은 구봉서 장로님, 또 한분은 롯데그룹 부회장 이인원 장로님, 그리고 전 포항시장 정장식 장로님, 구봉서 장로님은 노환으로 돌아가셨지만 나머지 두 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한 사람은 검찰 조사를 하루 앞두고, 또 한사람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낙선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그런 사건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겠지만 과연 그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OECD국가 중 1위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불신자나 힘든 환경의 도피처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선택한다면 과연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혹 서두에 말씀드렸던 국제전화 001 CF처럼 똑같다, 똑같다. 이것이 오늘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구약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의 선민,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애굽과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땅에서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습니까? 교회도 개인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만이 하실 일들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고 있느냐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내 삶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바로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언약, 약속의 책입니다.

그 언약의 핵심이 뭔가?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이것이 언약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당연히 나타나야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신앙생활의 이상 징후입니다.

 

저는 오늘까지 4주간에 걸쳐 신앙생활의 이상 징후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쁨, 삶의 변화, 사역의 열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는 것, 사실 오늘 우리의 타락과 우리의 변질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기쁨, 삶의 변화, 사역의 열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4가지 안에 오늘날 현대교회, 가정, 개인의 모든 위기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무슨 의미인지? 왜 함께하심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 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함께 하심의 의미

친히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 하면 그냥 막연히 함께 하시겠지 생각하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은 그렇게 막연한 것이 아니라 실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엘로힘으로 전능하신 분, 강하신 분, 능력, 권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가면 여호와 하나님으로 등장하는데 여호와란 말의 의미는 언약을 지키는 자,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분은 하나님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는 장면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이 때 하나님의 대답이 뭡니까?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아이엠 후 아이엠이 말을 직역하면 나는 나다. 이제까지는 엘로힘, 엘 솨다이, 능력, 창조, 높이계신 하나님이였다면 이제는 내려가서 너희와 함께 거하면서 나를 나타내서 너희를 인도해 나갈 하나님이다는 말입니다. 초월적 하나님이 이제는 내재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친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란 의미입니다.

 

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 막연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거야 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나타내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이 되셔서 사람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고 이제는 다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내 곁에서 나를 돕는 분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듯이 우리 또한 성령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은 바로 성령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공실패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신앙연수도, 직분도 아닙니다.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내가 얼마나 느끼는가, 그렇지 못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막연하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실 거야, 나를 도와주실 거야, 내 기도에 응답 하실 거야 그러면서 그저 열심히 정해진 규례와 규칙들을 잘 지키고, 또 하나님께 많은 희생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살아계신 인격체이신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그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무슨 막연함이 있습니까? 신앙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지금 이 순간 실제 성령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삶이 바로 언약의 백성으로 서의 삶입니다. 이 실제의 삶이 여러분이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2. 함께 하심의 목적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언약을 하셨는가? 함께 하셔야만 내 문제 해결 되고, 내가 잘 되니까?

성경에서 내가 함께 하겠다는 말씀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님께 당신을 나타내실 때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지금 말로하면 전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복의 근원의 삶, 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삶을 통하여 창11장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삶의 목적이요,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목적입니다. 하나니은 오늘도 이 함께 하심을 통하여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3. 그런데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함께 하심이 없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분 좋으면 함께하고 기분 나쁘면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취소하는 그런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함께 하심이 없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아서 함께 하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 비유를 보세요. 둘째 아들이 아버지 간섭이 싫어서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식었나요? 변했나요? 그런데 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지 못합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사역 -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네가 나의 사랑 가운데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어떻게 파하느냐?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하나님을 버렸다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을 버린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교회 출석하던 사람이 출석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당연히 하나님을 떠난 것이며,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이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버림) “아자브인데 이 아자브는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마음에서 떠난 것을 의미 합니다.

남편과 아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함 -> 마음에서 떠나면 떠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라주의하여 행한다, 맹수로부터 양떼를 보호한다, 파수꾼이 침입자를 막는다, 이 모두는 다 매우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4: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삼상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교회를 가까지 하십시오, 예배를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2) ‘아가브는 무시하다. 하나님을 무시 -> 말씀을 무시

르호보암은 젊은이들의 잘못된 조언을 따르기 위해 노인들의 훌륭한 조언을 버렸다(왕하 12:8, 왕하 12:13 대하 10:8, 대하 10:13). 이 모든 것이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스스로 웅덩이를 파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합니다.

1) 종교적 행위, 2) 헌신을 의지함 3)내가 몇 대째 예수 믿는 집안 4)성전을 의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모습을 보세요.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여기 운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안 된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인간의 모든 힘을 다 포기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안 됩니다 는 고백이 바로 눈물입니다.

 

3. 어떻게 함께하심을 회복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의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기준이 내 환경에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되면 함께 하시는 것 같고, 안되면 함께 안하시는 것 같고,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함께 하시는 것 같고 열심히 안하면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고, 기도 응답이 있으면 함께 하시는 것 같고 기도 응답이 없으면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은 것이 우리 모습 아닙니까?

 

이런 자세가 바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그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여러분의 실패의 현장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이후 실제 너의 하나님, 내 백성의 실제적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무엇인가? 제사, 예배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운데 영광으로 임하기 원하심(9:23-24)

거하기 원하심(임재) 9:17-19, 운행하기 원하심(놀라운 일을 행하심) 고후6:16, 만나주기 원하심, 지도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25: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하나님의 약속

BC 568년 바벨론 포로

BC 538년 포로귀환 -> 48

BC 516년 예루살렘 성전 완공 -> 7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을 회복으로 보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회복으로 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성전이 세워지는 것과 하나님이 돌아오시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 친히 거하시고 함께하시는 삶을 통해 열방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삶으로 회복할 수 있는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헬조선 이란 말이 자주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지옥)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 또 한국이 지옥과 비견될 정도로 살기 나쁜 나라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은 다 사라지고, 삶의 변화는 찾아 볼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일에 동참하는 것은 꿈같은 애기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찾아 볼 수 없는 이것이 헬조선을 만든 주범이 아닌가요?

 

교회의 타락, 변질, 성도의 타락, 변질은 우리가 남을 사기치고, 도박을 하고, 불륜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 삶의 변화, 사역의 열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는 것이 변질이요, 타락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절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우리에게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기 위해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 하나님께서 아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 에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주신 소망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그렇게 오신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아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하나님 안에 거하는 이상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늘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고아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아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근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둠속에서

1. 내가 어둠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계셔내가 시험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은 함께계셔

 

(후렴) 기뻐찬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우리 모두 찬양 할렐루 할렐루야 주님 나와 함께 계시네

2. 내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할 때도 주님은 함께계셔내가 아무도 모르게 선한일 할 때도 주님은 함께계셔

 

3.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함께계셔세상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주님은 함께계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