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28. 33.신앙생활의 이상 징후(3) 사역의 열매
에베소서 2:10
신앙생활의 이상 징후 첫 번째 시간으로 내게 기쁨이 있는가? 살펴보았습니다. 두 번째 로 내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나는 사역의 열매가 있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 중 중요한 한가지로 ‘하나님의 동역자’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은혜, 자비, 긍휼로 우리를 살리신(구원하신) 목적이 엡2:10에 잘 나타나 있는데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표준새번역 성경 엡2: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디모데후서 3:16-17절에서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말씀하는데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고, 선한 일을 위하여 성경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여기 선한 일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일, 좋은 일, 도덕적으로 옳은 일, 이런 도 포함되겠지만 성경에 말하는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 목적, 계획이 선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역이며, 이 일이 바로 주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주님의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이러한 사역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나름 신앙생활을 한다고 분주하기는 하는데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그 일이 없다면 그것이 여러분은 신앙의 이상 징후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이해가 덜되시는 분을 위해 여기 자두나무가 있습니다. 이 자두나무의 이상 징후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뭐냐?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는데도 열매가 없다는 겁니다.
신앙의 이상 징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겁니다. 회개를 한다고 하는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어요. 용서를 구합니다. 하는데 진정성이 없어요, 합당한 열매가 없습니다. 주의 일, 주의 일을 한다고 하기는 하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이 말은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서 어떤 업적을 이룬 열매가 아니라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그 일에 내 삶을 드림으로 주님이 나를 통해 맺으시는 열매 그러한 열매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역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선명히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게 하셔서 우리를 다시 살리셨는데 단순히 구원 하나만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십자가가 이 땅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다가 죽을 때 천국 가는 티겟 정도도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한 일이란 내가 어떤 착한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행하는 것이 선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타락한 인간에게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인간의 생각, 계획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는지 보십시오.
시94: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사람의 생각이 허무하다, 무의미 하다고 말합니다. 롬1:12 “인간의 생각이 허망하다” 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다는 겁니다. 창6:5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
그러니 선한 일이란 사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은 선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했는데 그럼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주님을 쭉 따라가다 보면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그때 그 일에 내 삶을 드리는 것이 바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크게 두 영역이 있는데 첫 번째 영역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었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회복과 확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영역은 첫 번째 영역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한 교회 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두 영역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늘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디로, 어떤 일로 나를 부르시고 계시는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늘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 이런 부모를 만나게 하셨는지?
왜 이런 남편을, 아내를 만나게 하셨는지?
왜 이런 직장을, 환경을 허락하셨는지?
왜 춘천이레교회로 인도하셨는지?
하나님의 의중, 의도, 뜻을 보이실 때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로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시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내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힘을 다해 하나님의 선한 일에 동참해야 할 사역입니다.
그럼 우리가 늘 하고 있는 종교생활은 뭐냐? 이것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알맹이 껍질)
여러분 여기 어떤 사람이 밥을 먹고 난 후 ‘난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했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밥을 먹는 것을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기 위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묵상하고, 예배하고, 오이코스, 삶 공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기 위해서지 그것 하고 나는 주님을 위해 할 일을 다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루 해야 할 일은 고사하고 밥 먹는 것조차도 힘들어하는 것이 우리 모습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밥만 먹고 해야 할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쪽입니까? 아니면 밥을 먹고 그것을 에너지로 삼아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는 쪽입니까? 만약 전자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금 서있는 그곳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부르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안 사람입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우리가 이것을 놓쳐버리니까 여기 가서 기웃거리고 저기 가서 기웃거리면서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요?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 일에 올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하는 그 기도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엡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 성령의 조명
우리는 이 일하다가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2. 사역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패턴을 잘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일하심의 패턴 첫 번째는 하나님의 주도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일로 초청하면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하지’ 하는 생각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모세 아닙니까? 출 3장에서 모세를 하나님의 일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를 하나님의 일로 부르셨을 때 모세의 첫 마디가 뭐였습니까?
출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4: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렘1장에서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를 선지라고 세웠다 말씀하니 곧바로 나온 말이 뭡니까? 렘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이거 누구 모습입니까? 우리 모습 아닙니까?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못합니다. 내 내면에 꽉차있는 열등감, 낮은 자존감, 상처들로 우리 내면에 꽉 차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입니까? 하나님을 어떤 분인지 모르고, 또 하나님의 일하시는 패턴을 몰라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하십니까? 하나님이 일 하시는 패턴을 잘 나타내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렘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일을 계획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일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가 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시고 성취하십니다. 아멘.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도권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를 보세요. 출 14:15-21에 홍해를 가른 사건이 나오는데 홍해를 가르는 일이 누구의 계획이었습니까? 하나님 계획이었습니까? 모세의 계획이었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일이 누구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입니까? 모세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얄팍한 인간들처럼 일을 맡겨 놓고 뒤에서 뒷짐 지고 어디 잘하나 보자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2) 하나님의 일하심의 패턴 인간의 동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일하시되 인간과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두 번째 패턴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실 때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십니다.
아니!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하시면 하나님이 다 하시면 되지 왜 또 인간의 동참을 원하시는가? 여러분 왠 줄 아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도권, 하나님의 주도권 하면서 진작 본인은 아무것도 안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나님이 하셔야 되지 내가 한다고 되나, 전도도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야지 되지 내가 가서 전한다고 되나,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한 달란트 받은 자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입니다. 그는 하나님은 능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분의 능력으로 그분의 모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은 전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이런 부류가 있다면 또 반대로 인간의 동참에 너무 치우쳐 하나님 없이 자기 열심만 가지고 하려고 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일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동참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도권만 있고 인간의 동참이 없어도 문제이고요, 인간의 동참만 있고 하나님의 주도권이 없다면 그것도 문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동참, 이것을 잘 보여주는 성경이 왕상 18장에 나오는 엘리야의 기도로 비가 내린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3년이란 긴 날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왕상 18장입니다.
그런데 다시 지면에 비를 내리는 것이 엘리야의 계획이 아리라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왕상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3년이 넘는 가뭄 후 지면에 비를 다시 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왕상 18:41-43)
왕상 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18: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발견하였을 때, 기도로 그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자세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자세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 수 입니다.
그런데 사실 비를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누구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비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약 5:17-18)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5: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비를 내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만약 엘리야가 손바닥만 한 구름이 실제로 떠오르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비가 오지 않았을 것을 의미합니다. 비가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야가 그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엘리야나 모세나 그들은 자기 임의대로 그 일들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자기 임의대로 그 일들을 행했더라면, 그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가 나란히 같이 가고 있는데, 동역자의 삶에서 정확하게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룹니다.
3.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이 뭔가?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면 어쩌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셔야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도권을 잡으시고 하나님의 일(뜻, 목적,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주된 목적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자원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자원과 능력으로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하려면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목적에 동참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시되, 우리를 동역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로 그 일에 동참하도록 하나님의 목적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들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항상 하나님의 길로만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따라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내가 지금 신앙생활이 건강하다면 증거는 사역의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사역의 열매가 뭡니까?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함께 일하자고 주님의 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때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일에 순종할 때, 우리의 순종을 통해, 주님께 그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사역의 열매입니다. 건강한 신앙은 반드시 이 열매가 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이러한 열매가 내 삶 가운데 없어서 마음 아파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내가 신앙생활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 앞에 새롭게 뜻을 정해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일로 부르실 때 믿음으로 순종해 보리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 큰 은혜, 사랑, 자비, 긍휼하심으로 구원하신 목적이 선한 일 을 위하여, 선한 일을 위하여 인데, 이제 나도 하나님이 구원하신 목적, 하나님의 선한 일에 내 삶을 드려보리라, 순종할 때 나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놀라우신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11)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함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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