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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신앙생활의 이상징후

31.신앙생활의 이상 징후(1) 기쁨 (행2:28)

by 오용주목사 2016. 8. 14.

2016.8.14                                                       31.신앙생활의 이상 징후(1) 기쁨

                                                                                       행2:28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합니다. 그런데 그 건강검진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기 싫지만 앞으로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 아닙니까? 마찬 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건강검진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 신앙생활은 건강한가? 잘하고 있는가? 혹시 나도 모르는 어떤 문제는 없는가?

 

지난 화요일에 30년이 넘은 오래된 친구목사님 부부가 다녀가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8년 전에 심장 혈관이 막혀 스텐트 시술을 하였는데 작년에 다시 막힌 혈관을 3개를 예비 혈관으로 연결하는데 대수술을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부터 노회 목사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심장에 벌써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데 방치하던지 아니면 그냥 참고 지내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보통 심근경색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징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가슴에 통증이 있다거나, 그러면 빨리 병원으로 가하는데 그런데 이런 징후 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가 신앙이 무너지고 낭패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상 징후가 어떻게 나타날까요? 물론 주일성수 문제, 십일조, 헌금 문제, 성경을 읽는 문제 기도생활 등으로 나타나겠지만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징후는 내게 기쁨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종교적 생활을 잘 한다 해도 내게 기쁨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이상 징후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얼마 가지 않아 신앙의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지금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신앙생활이 건강하다. 그러면 그 증거가 무엇인가? 기쁨이 있는 겁니다. 내가 이 땅에서 잘되어서 기쁜 것이 아니고, 좋은 남편, 좋은 아내 만나서 기쁜 것이 아니고, 내 상황과는 관계없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박국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런 기쁨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신앙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기쁨이 사라진 시대아닙니까?

 

최근에 어떤 모 기업에서 우리나라 20~50대에 속한 남여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생활 스타일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 사람은 하루 평균 10번의 웃음을 웃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1번 웃을 때 평균8.6초로 이것을 다 모아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하루 평균 130초가 웃는 것이 고작이라는 겁니다

 

반대로 걱정 근심은 평균 3시간 6분으로 남자가 2시간 30, 여자가 3시간 30분으로 여자가 훨씬 많게 나왔고요, 연령별로 분류해 보니 20대가 3시간 15, 30대가 3시간 7, 40대가 2시간 50분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은 현실적으로 하루에 딱 130초 웃고 3시간 6분을 염려와 근심으로 찌들려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루 130초 밖에 웃지 못하는 힘든 삶, 이게 남들 이야기 입니까? 우리 이야기 아닌가요?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조차도 기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신앙생활에는 이미 이상 징후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몇 주 전 부산과 울산에서 도시 곳곳에서 가스냄새가 난다. 개미들이 때를 지어 기어간다. 그러면서 혹시 지진의 징후가 아닌가, 야단인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만약 오늘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없다이런 징후가 나타난다면 우리 신앙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애 이렇게 되었을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1. 나에게는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면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는 없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스카 톰슨의 관계중심전도책에서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관계다 말하면서 우리가 지난시절 가장 행복했을 때는 관계가 좋을 때였으며, 가장 불행했을 때는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다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기쁨이 없다면 관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바른 관계에 있지 않을 때 모습이 어떻습니까?

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여기에 기쁨이 있습니까? 행복이 있나요?

 

그런데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옵니다. 돌아오니 그 결과가?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한 마디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되니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기쁨의 회복 아닙니까?

 

여러분! 지금 내가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없다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점검하라고 하니 신앙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1) 하나님을 아는 것,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론을 다시 점검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 아시죠? 실제 내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쩌다 기쁨이 사라졌는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이러한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아직 신앙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이 여전히 이론에, 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관계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실제 이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 메트릭스를 보면 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레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분명히 다르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뭡니까? 길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적다는 것 아닙니까? 한국 교회가 어떻고, 목회자들이 어떻고, 성도들이 어떻고 아는 사람은 많은데 진정 한국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는 사람이 없는 것, 이것이 문제 아닙니까?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신앙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이다이 사실을 아는 것과 실제 그 삶을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실제 그 삶을 사는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실제 생명의 풍성이 있습니다.

 

바울을 보세요, 그가 빌립보 감옥에서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뭐라고 편지 합니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거 하나님과 실제 관계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의 신앙이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은 하나님과 어떻게 실제 친밀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람 사이에도 친밀함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친밀함도 자주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 결과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라 했습니다.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때를 띠라 나아가 그 분을 찬양하며 그 분께 내 마음을 토로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스토리를 많이 쌓아 가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첫 째는,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 수준에서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아!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구나, 그들이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보모와 자녀 사이도 서로 이해 할 수 있도록 다가야합니다. 애들하고 전혀 함께 하지 않으면서, 집에 오기만 하면 화부터 내면서, 애들에게 할 말 못 할 말 가리고 않고 자기감정, 자기 기분, 다 내 쏱아 내면서 자기는 자녀들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한데요. 이거 말이 됩니까?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식당가서 자기가 돈 내고 음식을 사 먹으면서도 음식이 나오면 잘 먹겠다고, 다 먹고 나면 잘 먹었다고 인사하면서, 밥값도 받지 않고 이 더운 여름 불 앞에서 땀을 흘리는 아내에게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안하면서 아내를 사랑한다고요? 알 수 있도록 다가가야하고요, 이해할 수 있도록 다가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인격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선하심, 공의로우심, 신실하심, 전능하심 등 우리가 알 수 있는 성품과 능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 오시고 우리도 동일하게 그런 성품과 능력을 하나님께 나타내 보임을 통해서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격적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다가오시고 우리가 사랑으로 반응함으로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격적 교제를 위해 하나님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타내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어느 정도로만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볼 수 있게 이 땅에 오신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주님이 부활승천하시고 이제는 다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내 곁에서 나를 돕는 분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았듯이 우리 또한 성령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는 바로 성령의 하나님과 교제요,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는 성령에 의한 삶, 성령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한 삶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란?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말씀과 성령의 감동)

2)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

 

하나님과 관계의 또 하나님의 문제는 주도권의 문제입니다.

시간의 주도권

물질의 주도권

여러분 !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내면에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없다면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구약의 회개 - 슈브 - 돌아오다

신약의 회개 - 메타노이아 - 에피스트로페 - 마음의 변화, 행동의 변화

회개 하고 돌아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으로 기쁨이 회복되는 신앙생활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나에게는 신앙생활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복음이 주는 기쁨이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을 말하는데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받아들인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약에 나오는 복음은 헬) “유앙겔리온인데 이 말은 즐겁다’ ‘기쁘다’ ‘희락이 넘치다는 뜻을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그 자체가 기쁨의 회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물 = 기쁨이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여러분 이러한 선물을 받으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기쁨이라는 겁니다. 나는 선물을 받았는데 안 기쁘다, 이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복음을 받았다, 내가 구원 받았다. 그렇다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기쁨이라는 겁니다. 나는 복음을 받았는데 기쁘지 않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나는 성령 충만한데 기쁘지는 않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사는 것이 별로 기쁘지 않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받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살았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가 무엇이냐? 바로 기쁨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살전5: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이 말은 복음의 기쁨로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이 기쁨이 없다면 지금 여러분이 받았다고 하는 복음을 다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복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또한 내가 지금 기쁘고 한다면 그 기쁨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가짜가 더 득세한다는 것 아시죠?

그래서 기쁨도 가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가짜 기쁨을 세상적 쾌락이라 부릅니다. 이 세상적 쾌락의 극치를 살았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어떻게 됩니까?

2: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여러분 여기서 솔로몬이 수고한 그 모든 것이 헛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것은 세상 쾌락으로 통용되는 사이비 기쁨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쁨과 관련해서 우리 앞에 두 갈래 선택길이 놓여 있는데 하나는 성령님이 주시는 진품 기쁨, 다른 하나는 사이비 세상적 쾌락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 진짜 기쁨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기쁨입니다. 구원의 기쁨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는 구원의 기쁨이 넘쳤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기쁨도 점점 식어가더라,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국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식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뭡니까? 식으면 다시 끓이는 겁니다.

 

그래서 기뻐하다 이 말은 영어로 rejoice(리조이스)인데 RE() 다시라는 뜻으로 다시 기뻐하다, 기쁨이란 단어 안에 이처럼 반복이 들어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한 기쁨의 의미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이 여러분에게 실제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시한부 생명의 암 환자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제약회사에서 새로운 약을 개발했는데 이 약을 먹으면 어떤 암에 걸렸던지 또 그 암의 진행이 1기던 4기던 상관없이 완쾌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복음입니까? 복음이 아닙니까? 복음이죠?

그렇다면 약을 개발한 과정, 제조 과정, 약의 성분 등 이러한 이론이 복음입니까? 약 자체가 복음입니까? 약 자체가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이 암 환자에게 복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실제 복음이 됩니까? 약을 먹어야 합니다.

 

)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

 

마찬 가지로 내게 복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먹어야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령의 조명으로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깨달아지면 이 복음 유앙게리온인데 즐겁다. 기쁘다. 희락이 넘치다의 뜻으로 따라서 복음이 내게 복음 되면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내 일이 잘되고 안 되고, 가정이 어렵고 어렵지 않고 이러한 것들과 상관이 없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쁨이 있습니까? 이 기쁨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성경번역가 윌리엄 틴 데일은 이런 말을 합니다. “복음은 상처 입은 자를 기쁘게 하고, 찬송하게 하고, 춤추게 하고, 기쁨으로 뛰놀게 한다그러니까 복음 그 자체가 기쁨의 회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적질 하지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것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해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너희 마음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라,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가장 시급히 회복해야 할 것은 기쁨의 회복이라는 겁니다.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표준 새번역 시100:1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우리 예배도 더 밝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무슨 말입니까? 현상만으로 기뻐하지 말고 본질을 가지고 기뻐하라, 본질 회복의 기쁨, 그 기쁨이 바로 구원의 기쁨입니다.

 

3장 구걸하는 한 사람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동전 한입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은 동전한 잎을 준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 것입니다.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오늘 우리의 문제 영적 장애인이 많다는 겁니다. 영혼이 구원받아 기쁨을 누려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사건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15:11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어떻게 되는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부흥이라는 것은 주님의 기쁨이 내게 온전히 전이된 상태, 이게 부흥입니다.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부흥이 아닙니다.

애가 뚱뚱해 졌다고 건강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람 많이 모였다고 부흥했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진정한 부흥은 과연 주님의 그 기쁨이 내게 전이되고 있는가? 이 기쁨을 느끼고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복음으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