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처를 받았을 때
오늘은 결혼하고 35년 동안 남편으로 인해 힘들게 살았다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일주일전 남편 몰래 집을 나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자매님입니다. 그 자매님을 만나자 마자 남편에 대한 불만과 불평과 원망을 쏱아 냅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는 참고 살았지만 이제는 남편의 떠나 혼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는 것을 선택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물론 교회를 떠나지 말고 교회 안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극복이 되고 나면 교회 안에 그런 문제를 바로 잡는 사람이 되어 보라고 권면하지만, 교회를 다니다가 받은 실망과 상처를 떠나는 것으로 해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우선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오해를 받아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된다고 할지라도 떠나면 그것이 기정사실처럼 될 뿐입니다. 또 나에게 상처준 사람, 미운 사람을 안 보기 때문에 그래도 속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소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겠나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떠날 때 피해의식은 더 커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상처가 커지면서 결국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보면 본인만 그 일의 피해자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그 일을 통해서 얻을 성숙의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입는 일은 누구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힘든 과정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어 낼 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상처가 되더라도 묵묵히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 그 안에서 인내를 배웁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계기로든지 오해는 풀리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도 떠나지 않았던 결정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면서 치유는 찾아오고 회복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에 하나가 Vindication 이라는 단어인데 ‘하나님께서 내 억울함을 풀어주심’ 이라는 뜻입니다. 시편의 저자들은 그것을 놓고 울고 기도하다가 그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의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약 우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 교회를 떠나면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그것은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사역하던 사람들이 사역을 하다가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자리에서 버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사역을 그만두고 숨어 버립니다. 숨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져 주었다. 또는 내가 양보했다. 내가 더 큰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면, 버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지 회복을 경험하고 믿음 안에 자라있는 반면, 숨었던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 나오지 못하고, 피해자가 되어서, 상처를 안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상처를 받거나 시험이 들 때, 교회를 떠나거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록 오해를 받고, 시선이 의식된다 해도 버티고 지내면, 그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선은 줄어들고, 결국 그 시선은 이해와 존경으로 바뀔 겁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꼭 그런 승리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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