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코스 모임의 꽃이 나눔인 이유
오이코스 모임을 시작한지 3월이 되면 꼭 1년이 됩니다. 흔히들 오이코스 모임의 꽃은 나눔의 시간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이유는 결국 우리가 오이코스를 통해서 기대하는 많은 것들이 나눔의 시간을 통해서 열매가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오이코스는 한 가족이 되어야 하는데, 나눔의 시간에 식구들이 마음을 터놓고 자기를 노출함으로써 서로를 잘 알게 되고, 그 결과로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한 가족이 되어갑니다. 또 오이코스는 치유가 일어나는 공동체여야 하는데, 우리가 삶 가운데서 갈등과 아픔을 느낄 때 그런 얘기들을 숨기지 않고 나누는 가운데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상처가 인식되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면서 치유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또한 오이코스는 우리가 신앙적으로 다듬어져 가는 장소여야 하는데, 나눔의 시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 주의 삶을 나누면서 잘못된 부분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감사를 나누면서 재헌신을 고백하고, 예배와 삶공부를 통해 내가 새롭게 깨달은 것을 함께 나누며 우리의 사고가 수정되어 가고, 태도가 교정되고, 그러는 가운데 우리가 신앙적으로 더 단단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눔의 시간이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 시간을 통해 내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해 가야 합니다. 내 마음속의 생각을 노출하고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나 허물, 미운 감정들, 그 외에도 간간히 보이는 죄성들을 드러낼 때, 우리는 서로 가족이 되어가고, 치유되고, 그러면서 믿음이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나눔의 시간에 말은 많이 하면서도 자신을 노출시키지는 않는 분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분주한 일상과 주변의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자기를 노출하지는 않습니다. 자매님들의 경우는 흔히 자녀들에 대한 얘기나 남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나눔으로는 가족의 정은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이런 나눔이 반복될 때, 서로를 향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나눔으로는 치유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앙도 자라지 않습니다.
오이코스에 빠지지 않고 참석은 하고, 오이코스 모임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더 이상 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은 많이 하되 더 이상 속 깊은 얘기를 하지 않을 때, 어쩌면 내 영성에 문제가 생긴 것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늘 익숙한 이야기 뒤에 본 모습을 감추고 사는 위선이 되기가 쉬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를 드러내는 나눔은 계속해서 훈련해 나가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말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내 내면에 숨어있는 기쁨과 감사, 슬픔과 좌절을 찾아내어 나누고 성경적으로 교정하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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