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5 오이코스 모임지
35.네가 어디 있느냐 / 창3:9-12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뭐냐? 바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 진단받는 것이 죽어도 싫은 겁니다. 그러나 육체의 질병이 든 자가 살기 위해 의사를 찾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만이 온전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왜 입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나가는 것은 성경 말씀 앞에서 자기를 비춰보는 것입니다.
1. 그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인간은 누구인가?
한 마디로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한 인간의 정의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죄인이 되었나, 추적해 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의 극치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타락을 합니다. 그 타락의 핵심이 뭡니까? 산악과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 거역은 한 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선언입니다. 지금 까지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하는 행동의 표시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저에게 타락이 뭐냐? 죄가 뭐냐?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자하는 인간의 모든 시도가 죄요, 타락이다.
2. 선악과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 죄의 결과
1) 두려움이 생김 (요14:27)
2) 선악과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 눈이 밝아짐으로 자기 나름대로 기준이 생겼습니다.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기준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이라면 선이고, 하나님이 악이라면 악이었는데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 자기의 기준이 생긴 것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가 기준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준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후욕을 일삼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3) 선악과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 수치심이 생겼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나니 수치심이 생긴 겁니다. 왜 수치심이 생기는가하면 그들의 눈이 밝아 지금까지는 하나님만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자신을 보게 된 겁니다. 바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입니다. 오늘도 선악과를 따 먹은 자의 보습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 한 자의 모습은 우월감과 열등감,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은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닙니다. 남보다 못나 보이고 없어 보여서 갖는 수치심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이후에 생긴 감정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보니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4) 책임전가 (창3:11-12)
3. 그런데 나는 따 먹지 않았는데 왜 따 먹었다고 하는가? 대표의 원리입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
4. 오늘 우리에게 정말 시급한 것은 무너지고, 뽑혀버린 선악과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1)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죄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소리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 찾으시는 음성이 복음이요, 이 음성을 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2) 그리고 이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기준이 생겨 자기에 대해 열등감, 죄책감, 수치심으로 가득하며 또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자기 기준을 들이댐으로 상처를 주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도 누군가를 미워합니다. 이 시간에도 누군가를 비판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 시간에도 저급한 생각을 합니다. 이 시간에도 자기중심적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악하고 더러운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마귀는 세상은 이런 나를 향하여 너 왜 그랬어? 왜 숨었어? 묻고 우리를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왜 숨었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십니다. 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씀은 “어쩌다가 네가 이렇게 되었니”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질문입니다. 용서하고 치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치료하시고 해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음성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보입니다. 가슴앓이가 보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 앞에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선악과를 따먹은 자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 말씀나눔
1)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왜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합니까?
* 삶의나눔
1) 당신은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2)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한 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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