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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설교/하나님과 친밀함

14. 동역자의 삶

by 오용주목사 2016. 9. 15.

14.동역자의 삶

왕상18:1

 

신앙생활

1.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1)하나님을 아는 것(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2)하나님을 사랑하는 것(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구세주, 주인, 생명)

핵심-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2.하나님의 행하심을 온 삶으로 동참

1)온전한 순종

2)온전한 신뢰

핵심 - P.L.O의 삶(동역자의 삶)


더치 쉬츠 가 지은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의 책 2장 기도의 필요성을 다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뇌사상태에 빠져 의사도 전혀 소망이 없는 살아나더라도 극심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런 소녀를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음) 가서 기도해 주는데 하나님이 강력하게 기도하길 원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로부터 차로 3,4시간 가는 거리를 매주 찾아가게 하시고 가면, 가면 그렇게 많이 울게 하시고 자기 경험에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많이 조롱받은 적이 없고, 그 문제가 그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고  그렇게 많이 배운 적이 없고, 1년 동안 그렇게 했는데 어느 날 의사가 장래준비를 해야 되겠다고 가족들에게 애기를 해서 가족들이 연락을 해서 병원에 부랴부랴 달려가 혼수에 빠져있어도 들을 수는 있다는 말들이 생각나 기도하는 중에 이런 말이 생각나 “이제 악몽은 끝났어요. 하나님과 당신 사이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소년이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그 소리 못 들었다고 그러면서 그렇게 하는데 기도가 필요했는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나았는가? 우리의 기도는 필요한가? 아니면 단지 내가 기도하기를 원하는가?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뜻이 실패하거나 성취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우리의 기도가 왜 필요한가? 이런 부분을 다루면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다룹니다.

기도가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본래의 계획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이름을 아담이라 했는데 그 아담이라는 이름은 “사람, 인간”을 뜻하는 것으로 아담이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담에 대해 계획하신 것은 전 인류에 대해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계획이 무엇입니까?

(창1:26-18)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시8:3-8)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 이다”


여기 “다스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은 아담(궁극적으로는 자의 자손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을 경영케 하시고, 경작케 하시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고, 통치자로 삼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중매자, 매개가 또는 하나님의 대표자였습니다.


(시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여기 주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땅의 소유권을 넘겨주신 것이 아니라 땅의 통치하는 책임을 인간에게 위임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에서 “지키다”라는 단어는 “수호하다 또는 보호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샤말 을 번역한 것으로 그것은 성경에서 일차적으로 파수꾼에 대해 쓰인 단어로 아담은 이 땅위에서 말 그대로 하나님의 파수꾼 또는 관리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땅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는 하는 것은 아담과 그의 후손에게 달려있는 겁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일하고자 하셨는가?

왜 그렇게 위험한 모험을 감수하고자 하셨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가족을 원하셨던 겁니다. 즉, 그분과 인격적으로 교제 할 수 있는 아들들과 딸들을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릴 권위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대한 아담의 그 권위가 얼마나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인지 이 권위를 아담이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 줄 수  있을 만큼이라고 완전하고 최종적인 권위였다는 겁니다.


예) 기업의 회장이 한 사람에게 회사를 다스릴 권위를 부여함, 그런데 이 권위가 얼마나 완전하고 최종적이었던지 이 사람이 그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을 만큼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권위라는 겁니다.


이것을 눅4:5,6,7절을 보면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5-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라고 사단이 말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반론하지 않습니다. 왜? 사탄에게 그 권세가 넘겨졌다는 것이 사실이었으며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복음서에서 세 번씩이나 사간을 “이 세상의 신”이라고 부르셨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요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요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결정은 너무나 완전하고 최종적이었기에 아담이 넘겨줘 버린 권세를 되찾기 위해서 그분은 성육신하셔야만 했다는 겁니다. 그분은 인간의 일원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만 일하시기로 결정하셨기에 아담이 사탄에게 넘겨버린 그 권위를 다시 찾기 위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권위를 다시 찾았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며, 죄가 없어야 하며 자원해야 한다는 조건에 만족해야만 합니다. 그러데 왜?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도 사람을 통하여 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성육신보다 더 경이로운 진리는 없을 것이며 인간을 통해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결정을 이것보다 더 비중 있게 증거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모든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 할지라도 이 땅의 일들에 대해서는 인간들을 통해 일하시기로 자신을 제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 땅에서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1.모세를 통한 홍해의 사건

(출14:15-16, 21) “1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21-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홍해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애굽 군대의 추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 이것은 누구의 능력으로 한 것입니까? 모세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전적(100%)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셨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는데 모세가 더한 것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가 지팡이를 들고 있었지만 모세의 지팡이에서 그 어떠한 능력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적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람을 불게 하셔서 물 벽을 세우시고, 땅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홍해바다 위로 손을 내 밀었다고 홍해가 갈라지는데 조금도 더한 것이 없습니다. 손에서 장풍이 나온 것도, 바케츠로 바닷물을 퍼 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홍해는 갈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로 결정하셨기에.....여러분!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이 삶을 우리 모두가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셨고 또 우리 모두가 그 삶을 살아야 할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다보니 인간의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모세를 훈련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 단독으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때문에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모세가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라고 말하고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민 것은 대단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홍해 앞에서 독단적으로 했다면 홍해는 절대 갈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것을 행하시려 할 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명령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동참하지 않으면  안 이루어집니다.


2.엘리야의 중보기도도 그래요

아합왕의 범죄로 인하여 엘리야를 통해 아합왕에게 가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겠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 말대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왕상18장에 보면 갈멜산 엘리야의 기도응답 후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 처단한 내용이 나옵니다.

왕상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여기보세요,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셨죠?


또 왕상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미 비를 내리겠다 말씀하셨고, 또 비의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 시겠다 약속하셨고, 또 비의 소리도 듣고 그러면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때 뭐합니까? 갈멜산에 올라가 머리를 무릎사이에(당시여인의 해산의 모습) 넣고 기도합니다. 7번, 7번째 종이 가서 볼 때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인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때 내려갔으며 큰 비 가 내린 것입니다.


이것을 야고보기자는 약5:17,18절에서 “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아니 오고 18-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비를 내리 시겠다 말씀 하셨지만, 엘리야의 그 기도에 응답해서 비를 내리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만약 엘리야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를 안 내리셨을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그렇다고 엘리야가 임의로 기도했다면 비를 내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겠다할 때 기도함으로 비를 내리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비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3.바울을 전도한 아나니아

실제는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직접 나타나서 사전 작업을 이미 다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기도해 주라고... 여러분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만약 아나니아가 그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소한 그날은 사울이 구원받지 못했을 겁니다. 치유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믿음의 사람을 세워야함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을 겁니다.


반대로 만약 아나니아가 제 스스로 사울에게 갔다면 잡혀죽었거나, 감옥에 갇혔을 겁니다. 동역자의 삶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니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동역자의 삶입니다.

전도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이실 때 -> 순종 -> 열매, 이것이 동역자의 삶입니다. 그런데 만약 보이셨는데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 이루어집니다.


죽천감리교회 - 꿈에 엉덩이 주사 (동서되는 분이 하나님 감동을 받고 순종) 만약 순종하지 않았다면 안 이루어짐, 그만큼 심각합니다. 최소 그 시간에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로 작정하셨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신과 목적과 길들을 보이시며 그 일로 초청하십니다.


4.회복과 부흥을 위한 기도

다니엘의 기도

회복에 있어서 다니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9장)

B.C 605년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다니엘서 9장에서 다니엘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책을 읽는 동안 이스라엘의 포로기간이 끝날 시기가 임박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포로생활뿐만 아니라 70년이라는 기간까지 예언했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우리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이 부흥과 해방과 치유 및 회복 등에 대한 약속을 받을 때 그 약속의 성취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참여를 필요로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9:3)

여러분 우리가 다니엘서를 살펴보면 다니엘에 기도했기에 이스라엘이 회복되었다고 말한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직후 천사 가브리엘이 파송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에 하늘에서의 전투를 뚫고 다니엘에게 기도응답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데에는 21일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와서 (단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이 70년이 차면 회복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기도가 없었다면 또 다시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 행하심에 동참하는 자를 세우기까지 그 약속은 지연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의 성취에 참여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폴 빌 하이머 는 그의 책 보좌에 이르는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니엘은 예언의 성취에 중보기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예언이 성취될 때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분은 기도라는 프로그램 벗어나서 독단적으로 그 예언을 성취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중보기도의 짐을 지울 만한 사람을 찾으셨다.... 항상 그렇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결정을 내리셨다. 그러나 중보와 믿음을 통해 이 땅에서 그 결정을 시행할 사람이 필요하였다


부흥을 위한 기도

로이드 존스, 부흥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게 강조 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원하실 때 시작하여 하나님이 원하실 때 끝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부흥은 하나님의 때에 오는데 기도가 필요한가? 여기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둉역자의 삶

보세요. 우리가 기도한다고 부흥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임의대로 기도한다고 부흥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부흥을 보낼 때가 되면 중보기도자를 세우셔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때가 되어서 오셨죠?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냈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때에 온 것입니다. 그러나 눅2장에 보면 알지만 예수님이 태어나 하나님께 봉헌될 때 시므온 나오고, 안나 나오고... 보면 알지만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낼 때가 되었을 때  시므온과 같은 자들, 안나와 같은 자들, 거기에 이름이 나와 있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이셨어요. 너희가 살아있는 동안에 메시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로 기도하게 하셨어요. 안나 같은 자는 84세가 되도록 기도했어요. 우리말 성경에는 과부 된지 84년이라 했는데 그 말은 84년 기도했다는 말이고, 어떤 성경에는 그 당시 14세 정도 결혼했으니 결혼하고 과부가 되었다는 60면 가까지 기도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기에도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정이지만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시려고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시고 움직이시는데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기도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쏟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하시려면 다시 일이 준비되어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있을 때까지 훈련시키시고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너무너무 절박한 것은 이러한 동역자의 삶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그러한 일들을 인식하고 깨닫고 하나님의 행하심에 민감해서 온 삶으로 곧바로 동참하는 깨어있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인데 하나님께서 하시겠지 그게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하신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적게 받아 심판을 받은 줄 압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1달란트는 그 당시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노동자 하루임금) 그러니 지금으로 환산하면 50,000 x 6,000 =3억, 그 당시 한 달란트는 절대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마25:24,25)  “25-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고, 권능의 하나님이니 나 같은 게 뭐 필요하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아무 때라도 하시죠, 그가 누구야?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그가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정확하게


보세요,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악한 길을 돌이키고, 하나님을 목적삼고 하나님의 길 가운데 행하며...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이 오십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그러면 하나님도 돌아오시리라 하였어요.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삶에 하나님의 실제가 없어요. 교회 가운데 이론은 많지만, 하나님 운행하심이 없어요. 하나님의 임재도 거의 없고, 우리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능력이시고, 힘이시고. 이론은 많은데 우리의 삶에 그 이론이 전혀 실제가 아니에요. 말뿐이에요. 대부분의 성도들의 오늘날 삶속에서, 물론 기도 열심히 하죠

새벽기도, 심야기도, 신앙기도...맹세도 서약도 해보지만, 그런데도 전혀 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말은 많은데 실제가 없습니다. 우리 신앙은 실제인데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앙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존재를 다하여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와 목적이며 열망인, 것으로 사랑하는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다면 거기에는 우리의 뭐나 포함되어야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알기에 우리의 삶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에서서 하나님의 길 가운데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뭐가 포함되느냐하면 내 악한 길, 내 악한 습성, 내 중심적인 사고와 내 중심적인 삶의 태도와 자세 목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 가운데 서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실제인데 우리의 삶에 실제가 없어요. 이론은 너무 많은데...이럴 때 핵심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죠. 철저하게 하나님을 아는 삶으로, 하나님만이 목적된 삶,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 그분을 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 던지 같이 있기를 열망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구하면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이 오셔서 앞서 가실 때 어차피 일은 주님이 하시는데 문제는 그분은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일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동역자를 통하여 하신다는 거예요. 동역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는데, 하나님이 일하실 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깨어서 거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축전교회 전도 말이에요. 그 일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그 영혼 얼마를 주고 살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순종의 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그 영향력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여러분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나아갈 때 자기가 그렇게 큰일하고 있는 줄 몰랐을 겁니다. 근데 그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오늘 우리까지 압니다. 근데 우리의 민감하지 못해서, 깨어 있지 못해서, 우리의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인해서, 우리의 영적인 무딤과 무지로 인해서, 우리의 자기 것을 챙기려는 욕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그 놀라운 계획이 쏟아진다면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너무너무 두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 한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한 백성을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택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어 가시고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오늘날 교회까지 세우시고.. 그 일하신 일을 계속하시기 위해여 이삭을 부르시고 야곱을 부르시고..모세를 부르시고..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진짜 예민하게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의 안일함과 불순종과 나태함은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을 무산 시킬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역자의 삶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참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나태함, 안일함, 민감하지 못함... 우리가 한 달란트 받았던 종과 같은 자세로 인해서 하나님의 너무나 소중한 일이 쏟아지지 않나 싶어서..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경각심을 가지고 서야합니다.


어떻게? 주님만을 구하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갈망가운데 서되 주님의 행하심을 보고 주님의 행하심을 발견하면 온 삶으로 기쁨으로 거기 있고자하는 그것이 기도든지, 섬김이든지, 헌금이든지 봉사든지, 전도든지... 그렇게


성령님 오시옵소서.

우리의 무딘 마음, 자기중심적인 사고, 내 문제에만 집착하는 눈, 안목, 용서하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한 달란트 받은 자세, 주여~ 깨뜨려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행하심에 진실로 감사할 수 있는 올바른 마음을 먼저 주시고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주 앞에 서서 주님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기쁨으로 동참할 그 자세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것이 중보기도든지, 헌금이든지, 봉사든지, 섬김이든지 아버지여! 엘리야의 기도가 우리에게 중요한 예가 됩니다. 하나님이 비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고 빗소리가 들렸는데 그때부터 그가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소리를 들으셔서 비를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기도가 의미하는 바를 우리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부흥을 위한 그 의미를 우리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빛을 비춰주시옵소서, 깨닫는 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그것이 단순히 성경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 오시옵소서,


참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신다 - 겔22: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