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해리슨 목사 내적치유 세미나]
0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1)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사랑을 경험하기 원하십니다
체험으로 아는 하나님
에베소서 3장 16~19절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구절들은 하나님과 우리의 속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사람을 돌보시며 우리가 속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18~19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서」아는것에 대해 말합니다.이 두가지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많은 정보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정작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알지 못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모두를 위
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열망이기도 합니다.
모든 아기에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아버지의 사랑은 아이에게 자유함과 자신감을 줍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를 보호하며 아이에게 안정감을 줍니다.또 위로를 얻게 해 줍니다. 우리에게는 이 두가지 다 필요합니다. 아기였을 때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 사랑이 필요합니다.
치유의 어려움 - 소극적인 태도
저는 먼저 왜 사람들이 치유되기 어려운지 두가지 이유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신명기를 보겠습니다. 30장 19~20절입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아이는 자라기 시작하면서 결정을 하게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정하는 자들로 창조하셨습니다.성경은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올바른 것을 선택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고린도전서를 보겠습니다.10장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속도로를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대구로 간다고 합시다.대구로 가는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그 고속도로가 끝날 때까지 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혹을 피할 길을 주십니다.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결정을 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우리는 이것을「소극적인 태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첫째,결정하기 어려워하고 둘째,결정한 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셋째,소극적인 사람은 「예」혹은 「아니오」라고 말을 해야 할 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소극적인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예」라고 말을 합니다. 넷째,소극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다섯째, 소극적인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그냥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났어요」.삶의 모든 일들이 살면서 그냥 일어나는 일들이고 거기에 대해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쓴 뿌리와 수치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섯째,소극적인 사람들은 종종 화를 잘 내고 좌절감을 자주 느낍니다.왜냐하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조차도 못하고 살것입니다.그래서 이런 분들은 종종 화를 내고 좌절감을 느낍니다.한가지 더 있습니다. 소극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화해하기를 매우 힘들어합니다.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있고 가족관계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역 속이나 일 속에서 문제들이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도 가지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소극적인 문제들을 치유해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소극적이라면 우리는 치유되고 회복되는 소망이 없습니다.변화될 소망도 없습니다.
소극적 태도의 원인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첫째는 개인적인 근원에서 옵니다.우리가 어릴적에 우리의 의지가 깨어졌다면 소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아이의 마음이 상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의지가 어떻게 깨어지게 됩니까? 어렸을 때 「하지마」라는 말을 계속 듣고 자랄 때 그렇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뭔가 하지 말라는 말만 듣고 자라면 의지는 깨어지고 소극적이 됩니다. 또한 너무 많은 책임을 갖고 자라게 될 때 그렇게 됩니다. 아마 부모님들이 너무 바쁘셨거나 부모님들이 어려움을 겪었거나 가족 안에 큰 어려움들이 있었거나 가족 안에 사랑이 없을 때 의지가 깨어집니다.
둘째 근원은 환경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부모님에게 배우게 됩니다.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이 소극적이면 아이들도 소극적이 됩니다.
두 번째 환경적인 원인은 종교적인 배경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다른 종교를 믿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믿던 종교가 아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종교라면 소극적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 운명적으로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소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세 번째로 국가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서 점령당한 적이 있다면 우리는 아주 소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나라가 점령당할 때는 땅만 점령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도 점령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점령당하고 있을 때는「예」와 「아니오」를 자유롭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선택할 수 없습니다.결정권이 없습니다.시키는대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치유받아야 하는지 모를 때 상처를 가지고 살게됩니다. 우리가 화를 내면서 살다보면 쓴 뿌리를 갖게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유케 되는줄도 모르고 어떻게 치유되는 줄도 모릅니다.그래서 이 쓴 뿌리는 증오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상처를 받습니까? 아이들입니다. 부모의 고통은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그 다음세대로 넘어가게 됩니다.부모님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부모들의 패턴을 답습하게 됩니다.고통당하고 분노를 갖게됩니다.이것은 다음 세대로 내려가 4~5대까지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이것이 이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상한 심령의 치유
잠언 18장 1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제가 살던 곳에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몸이 아주 약한 친구였습니다.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몸도 아주 마른 분이었습니다.그런데 이분이 자동차를 운전했습니다.기독교 사역의 리더이기도 했습니다.다른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해외로도 다녔습니다.비록 몸은 약하지만 그분의 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이 강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 말씀에「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합니다. 밑빠진 컵에다 물을 부어봐도 물은 밑으로 새고 맙니다.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가지고 있으면 이와 같습니다.세미나도 가고,교회에도 가고,어떤 훈련 프로그램에도 참석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메시지에 대해서도 반응을 합니다. 어떤 분이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해줄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되면 그것이 다 없어지고 맙니다.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아무 것도 변화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몇 번 하다보면 나중에는 반응을 하기에도 지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에 「불신」이 들어오게 됩니다.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변화를 받을 수 있고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 속에서 믿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도 믿지 않게 됩니다.우리 안에 상한 심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상한 심령을 치유해 주기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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