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1 내적치유의 필요성 ①
내적치유에로의 초대
신앙생활이란 이론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단순히 성경 말씀 몇 구절을 암송하거나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이며 친밀한 교제입니다. 또한 길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매 순간마다, 매 사건마다 하나님을 알기를 소원하는 열망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계시해 주시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하여 전존재를 다 해 동참하는 삶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를 통해서 성취되어짐으로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게 되는 삶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신앙의 본질에 서 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로 삼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나 친밀함이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로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로의 회복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 속에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들입니다. 이 상처들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발목 잡습니다. 이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으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하나님의 은혜는 자칫 헛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감사한 것은 십자가의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를 능히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십자가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의 내면세계를 치유하시는지 살펴 볼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면세계에 깔려있는 상처들로 인해 십자가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스며 나오는 내면의 쓴 물을 맛 볼 때마다 무척 당황합니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그 쓴 물을 퍼내어 보기도 하고 묽어지도록 다른 물을 부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점점 쓴 물은 더 진하고 깊게 고여만 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쓴 물은 한 영혼을 꼼짝 못하도록 묶어놓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쓴 물은 이디서 스며 나오고 있는 걸까요? 더 나아가 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쓴 물을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쓴 물 곧 자신의 내면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쓴 물로 인한 고통이 싫어 나름대로 해결책을 모색해 보곤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선택해 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때뿐 그 쓴 물은 그치지 않고 스며 나와 영혼을 황폐화시킵니다. 여기서 실패를 맛 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기도가 안 된다 싶을 때에는 금식을 해보곤 합니다. 그러나 그 때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은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런 감격도 없는 채 신앙생활은 종교생활로 이어집니다. 정말 아무런 감동이나 감격도 없는 채 말입니다. 점점 주를 향한 열망이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애통함이 사라져갑니다. 남는 것은 교회를 다닌 세월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쓴 물을 맑은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구가 있는 엘림으로 치유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길을 우리에게 예비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입니다. 예수촌교회 지체들은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성령이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교회를 세우기 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회복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내적치유는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지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회복의 한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여 세워질 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의 교회가 공동체적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기준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임재로 교회 가운데 임하십니다. 그 결과 예배가 회복되고 감격과 기쁨이 예배 중에 넘치게 됩니다. 감격과 기쁨은 내면세계 깊숙이 하나님의 생명을 흐르게 만들고 영혼 깊숙이 뿌리를 내렸던 쓴 뿌리들과 상처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닿을 때 깨끗이 치유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적치유입니다.
내적 치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마음의 치유를 같이 나누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이 치유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치유와는 다릅니다.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치유자가 되어주셔서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속 깊은 내면을 드러내시고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그 결과 내면 깊은 곳에 갇힌 상한 감정들이 하나님의 치유의 빛을 받아 새 힘을 얻고 기뻐 뛰는 감격의 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감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시오. 십자가의 능력을 신뢰하십시오. 십자가의 복음에 연합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생을 나누어 가지십시오. 이 아름다운 치유의 자리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 외로운 마음, 불안한 마음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들을 보면서 우리 내면세계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내면세계를 잘 아는 의사에게로 가야합니다.
우리가 내면세계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 곳에 우리의 영혼이 있고, 그 곳에서만 하나님을 참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가 병이 들어있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암이 자라고 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빛을 비춰주셔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모르는 세계를 조명 받아야 합니다. 모르는 세계를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치유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내적치유와 연관하여 꼭 필요한 사안들을 점검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님께 집중하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내면세계에 대해 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습니다. 반면, 내면세계를 들여다보실 수 있는 분은 성령님뿐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분께 민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반드시 방해요소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시선을 외적인 곳으로 끄는 사건이 반드시 생깁니다. 물론, 반드시 필요한 사건은 바로 해결해야 하지만 모든 외적인 문제나 사건을 접어두고 우리의 내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방해요소가 있습니다. 내적치유를 공부하다보면 자꾸만 다른 사람이 떠오릅니다. 예를 들면 “이 얘기는 우리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이것은 누구누구에게 써먹어야지…”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다 보면 십자가의 복음이 개인에게 진정한 실재가 되지 못합니다.
둘째, 자신이 먼저 환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적용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경험을 하려고 하십시오. 진리란 적용하는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해들어가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 속을 들여다보시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합니다. 정말 뭐가 들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을 자주 만나고 있지만 나의 깊은 속인 내면이 성령님과 자주 만나고 있는지? 만난다면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 알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먼저 환자가 되어 철저하게 아파보고 회복하는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여기에 십자가의 군병 되는 첫 단계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진리 앞에 동의하는 과정입니다.
셋째, 성령님만이 의사이신 것을 잊지 맙시다.
마음이나 영혼은 말로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고치다가 더 큰 병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내면의 세계는 의지의 세계를 넘어서 있는 세계입니다. 또한 내면의 원리가 있습니다.
자, 이제 옷을 벗읍시다. 의식과 의지의 세계에는 자신의 역할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지만 내면의 세계에서는 이완 반대로 모든 옷들을 벗어야 합니다. 마치 병원에 오면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의사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 분 앞에서 죄인입니다. 우리는 분명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속은 아직도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채 병이 들어 있습니다. 자, 이제 옷을 벗고 그 분 앞에 누워 우리를 고치시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우리의 속을 드러내면서 “주님 이것이 내 속입니다. 이 모습을 X-ray찍으셔서 해부하시고, 상한 부분을 고치소서.”간구하십시오. “주여, 나의 병을 보게 하옵소서.”기도합시다.
넷째, 주일오후 성경공부 시간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섯째, 모임에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 자신이 경험한 사건 자체보다는 그 속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섯째, 실제 내적치유는 형제자매들의 모임 중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을 통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감당하지 못할 드러냄은 절제하셔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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