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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자료/내적치유

26. 분노하는 마음의 치유

by 오용주목사 2016. 9. 15.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26                                                                                                     분노하는 마음 ④


분노하는 마음의 치유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 눠 제비 뽑을쌔  (눅 23:34)


첫째, 분노를 억압하지 마십시오.


분노를 억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다 폭발하지도 마십시오.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분노가 생기면 잠깐 참아야 할 때도 있어야 되지만, 적당히 표현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참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분노를 표현할 때에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되며, 말로 해야 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나 지금 화가 난다” 식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분노는 말로 표현하자는 말입니다. 표현한 만큼 분노의 많은 부분이 소멸됩니다. 분노를 내는 입장이 될 때, “상대방이 내게 공격하고 있구나.”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며느리가 내게 덤벼들다니”, “아니 이럴 수가!상대방이 내게 대드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큼 분노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이 내게 관심이 있다라는 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게 화를 내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입시다. 실제로, 무관심하면 분노를 내지도 않는 법입니다.


둘째,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를 표현하기도 해야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 분노는 마음의 창고에다 일단 넣어둡시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는 표현해도 병들고, 표현을 하지 않아도 병이 듭니다. 이런 류의 분노는 표현하면 도리어 악순환만 계속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누군가가 분노의 덩어리를 먹어 치우면 됩니다. 그분이 주님이십니다.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로 인해 생겨난 모든 분노를 그분은 모두 꿀꺽 삼키셨습니다. 좌절되고 버림받았던 분노들을 몽땅 집어 삼키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바리새인, 제사장, 유대인들에게 분노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환영하던 그들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중은 굶주림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무서운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분노의 표     적이 되었습니다. 군중은 외칩니다.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를 못 박으소서.”


가룟 유다가 왜 예수를 팔았습니까? 3년 동안 예수를 따라 다녔지만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기는커녕 더 굶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굶주림은 곧 분노로 나타났습니다. 유다의 허무감이 예수를 판 것입니다. 제자들도 다 도망하였습니다. 왜요? 좌절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이 분노, 내가 가져도, 저 사람이 가져도 모두를 죽이는 분노,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분노를 대신 다 당하셨습니다. 멸시, 천대, 희롱, 채찍을 맞으시며 분노에 의해 그분은 찢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분노를 먹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서 분노가 소멸됩니다. 예수님이 분노의 쓰레기통이기 때문입니다. 분노의 배설물을 다 뒤집어쓰신 주님이었습니다. 우리를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배설물과 죄악을 다 먹었습니다. 우리의 분노, 모든 화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와 보혈 안에서만 분노가 없어집니다. 주님의 보혈은 우리에게 분노 없는 새 마음을 주십니다.


셋째, 분노의 배후에는 우리의 굶주림버림받음이 있습니다.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노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배후에 버림받음과 굶주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굶주려있는데, 자신이 버림받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착각입니다. 자기 속에 굶주림과 버림받음이 있다면 아무리 남을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해지지가 않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상대방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의 굶주림과 버림받음을 해결할 때입니다.

     

내 안이 선택받고,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내 속이 치유 받으면 분노도 사라집니다. 굶주림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니까 한편이 사라지면 다른 한편도 사라집니다.


넷째, 분노의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우리가 내 속의 굶주림을 채우려할 때, 가로막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분노입니다. 분노는 굶주림의 증상이기도 하지만 굶주림을 채우지 못하도록 역사하는 사단의 가시와도 같습니다.


분노가 있으면 분노로 인한 죄의식이 생겨납니다.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인간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느냐고 자학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내 속의 분노. 이제 주님께 맡깁시다. 굶주림과 모든 분노를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내 속에 주님의 사랑과 생명이 가득하기를 구합시다. 분노의 중심에 있는 마귀의 존재를 대적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 버립시다. 분노가 쌓은 여리고성을 십자가로 모조리 부숴 버립시다.


지금부터는 예수가 내 속의 주인이 되시도록 합시다. 그분의 사랑이 내 안을 채울 때, 화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용서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용서가 됩니다. 이미 십자가 안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십자가 앞에 드렸기 때문입니다. 분노에 사로잡혀서 묶여 있었던 나의 영혼을 십자가 앞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치유를 위한 기도


두 눈을 감고 묵상하며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시도록 기도드립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셨으며, 우리의 허물을 가려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능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열등하고 부족한 우리들입니다.

더 추하고 더 죄가 많은 우리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우리들을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까지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열등한 부분을 가려 주옵소서.

하늘의 은사와 능력과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들로 옷 입혀 주옵소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하게 하옵소서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워지게 하옵소서.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변화 받게 하옵소서.


나는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찢으며 경건하게 살고자 몸부림쳐 왔습니다.

주님,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내 속의 열등함을 잊어버렸습니다.

내가 죄인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들의 경건함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십자가 앞에 나아가 우리들의 원래의 모습을 배우기 원합니다.


내 속이 진정으로 주님 앞에서 열등하며 죄의식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하옵소서.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내가 무력한 존재임을 보게 하옵소서.


내적치유 시간을 통해 내 겉옷을 벗게 하옵소서.

솔직하게 내 속을 보게 하옵소서

깊은 자유함과 구원의 감격이 임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거짓된 영이 우리를 속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모든 옷을 벗으며 내 속의 열등하며 무력한 모습을 보게 하옵소서.


내 속을 성령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다.

내 겉모습으로 내 속을 속이지 않게 하옵소서.

내 속을 진실 되게 보이며 예수님의 보혈 앞에 빈 손 들고 나아갑니다.

나를 고쳐주옵소서.

나를 억누르며 속이는 영들을 제거하옵소서.


놀라운 치유와 구원의 감동이 내 속을 강타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