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실패(마26:31-35)
오늘 베드로의 실패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지방 출신으로 그의 직업은 고기잡이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날은 베드로가 고기잡이에 실패한 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대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이 주님의 말씀 앞에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눅5:5 시몬이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정말 멋진 고백이요 대단한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그 날 주님을 만났습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보고(에이도) - 단순히 고기 잡힌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하지 않음
에이도 - 인식하다, 느끼다, 감지하다, 인지하다, 발견하다' 경험하다, 체험하다
고기를 잡히게 하신 주님이 어떤 분임을 인식함.
선생이여 -> 주여
그리고 자기가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죄인임을 발견하게 됨
이러한 베드로 그는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부르심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막1: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눅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아내와 자녀들을 다 버려두고, 잘 나가던 사업 다 접고 주님을 따름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 ->베드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후
때론 믿음이 없다고 책망도 듣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는 책망도 들었지만, 그는 3년 동안 뒤 돌아서지 않고 주님을 잘 따라 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과 마지막 저녁을 하는 자리에 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다 말고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마26: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게 됨
베드로의 대답
마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헬) 나는 - 에고 - 강조
마2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런데 이 베드로는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베드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 (배와 그물)
주를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던 사람
주님을 따르는데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 물위에 뛰어든 사람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듣고 칼을 차고 다녔던 사람
나는 절대 예수님으로 인해 시험 들지 않겠습니다. 장담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성경을 읽으면서 제 눈을 멈추게 한 것이 있는데
요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 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이렇게 주님과 상관하고 싶었던 사람이 베드로 였지만 그는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왜 입니까?
1.베드로는 자신을 몰랐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를 알았고,
자기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이 있음을 알았고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지만
베드로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신을 몰랐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위대한 고백을 하였지만 자기의 확신과 고백과 상관없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찬양 (263장)
주님을 위해 내 시간, 물질, 생명도 드린다고 찬양하지만 내일 당장 삶의 현장에서 내 시간도, 물질도, 삶도 드리지 못합니다.
아니 드리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주님을 위해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내가 고백한 대로 선포한 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아님
우리가 말하고, 맹세하고, 결심하고, 결단하는 것, 이러한 것을 지킬 능력이 내게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속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주일 날 예배당에 나와 찬양과 경배 드리고, 헌금하고, 설교 듣고, 가끔 다윗의 장막에 머물고, 오이코스 모이고, 전도도 약간하고 하니 그런대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 이 정도의 그리스도인을 만들려고 주님이 하늘 보좌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쏟았을까요?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이 정도의 삶을 살라고 구원하셨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예) 국가대표로 부름
그것으로 만족하고 벤치에 앉아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부름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의 본질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 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수도 없이 들었지만 진정 이 삶을 사는 성도가 얼마나 되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주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몰려오지만 번성과 풍요의 축복을 바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보화가 되며,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 그 일에 동참하며, 그 길을 알아 그 길을 다라 행함으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이 일을 위해 주께로 나오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우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부름은 번성과 풍요로의 부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으로의 부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의 부름입니다.
딤후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심은 십자가로의 부름입니다.
[눅9: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14: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
무슨 말입니까? 죽음으로 부름입니다. 함께 죽자라는 겁니다.
예) 몇 년 전에 무주에 교역자 세미나를 갔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비롯하여, 제자들, 사도들의 삶을 다 실패의 삶입니다.
주일 예배드리고
성경공부
전도
오이코스 모임(리더)
다윗의 장막
->이 정도의 삶을 살라고 주님이 죽으셨을까요?
이렇게 믿믿한 신앙생활 하라고 우리를 예수님짜리로 만들어 주셨을까요?
근래 몇 건의 장례를 치르면서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성도님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오래도록 기도 -> 마지막에 주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심
그런데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지금 이날까지 기도했는데 만약 돌아가셨다. 얼마나 낙심될까요?
제 삶을 돌아보니 지난 50년 동안 주님이 용서해주시고,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 뭔가 주님이 용서하시고, 참고, 기다려주신 것에 대한 결론을 맺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용서하고, 참고, 기다리게 하는 이 삶을 언제 까지 살기를 원하십니까?
죽는 마지막 까지 용서하고 참아주고 기다려 주다가 가는 것 말고...
기다려 주니 내 기쁨이 되기도 하네
기다려 주니 열매를 맺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들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들
자녀가 돌아오기를 마음 조리며 기다리는 부모님들
성도가 온전히 세워지기를 기다리는 리더십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림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지...
아! 기다리니 돌아오는 구나, 기다리니 열매를 맺는구나
눈물로 씨를 뿌리니 기쁨을 단을 거두는 날이 오는구나(시126:5)
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기도
- 하나님 제 마음에 거룩한 불만족을 부어주세요.
- 멈출 수 없는 주님을 향한 불만족을 부어주세요
우리가 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실패하는가?
자기의 연약함을 모르기 때문
자기의 자원으로 하는 결단, 헌신, 기획, 설교, 심방, 가르침, 오이코스 인도, 다윗의 장막 인도,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내 안에 주를 향한 원함이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행할 능력이 없음
내 안에 주를 향한 고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 - 우리 영광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1000도 드리지 못하고 천국갈 수 있음
성도의 삶 - 이 정도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오이코스리더 - 그 정도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단순히 관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뒤집어지고 회복이 일어나는 것 경험
교사 - 이 정도의 일을 하기 위해 맡겨 주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내 안에 복음이 흘러 넘쳐 그 아니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세워져 가느냐
십자가의 복음이 그렇게 능력 없는 것이 아님
복음은 교양이 아님, 생명임, 죽은 영을 살리고 죽은 마음을 살리는 능력
예배 후 돌아가면 주님과 함께 거할 능력이 없음
오늘 우리가 이 시간 필요한 것 - 우리의 연약함을 자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처음 주님을 만나는 현장 - 주님의 은혜가 필요
그러한 베드로 그가 3년 동안 훈련을 받았지만 그 훈련이 베드로로 하여금 자기자원으로 할 수 있게 능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나 3년 훈련을 받고 난 이후나 여전히 자기자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요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21: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가?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무엇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과-눅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심
그 기도가 어떤 기도?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 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요,
신앙의 본질 앞에 머무는 기도
하나님님께서 오셔야
오시게 하는 것 - 신앙의 본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우리의 직분이, 신앙의 연수가 우리를 세워주지 않습니다.
원하지만 행할 수 없음
비전을 주셔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
모양은 있고 흉내는 내지만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없음
하늘이 열려야 땅의 것이 포기됨
하늘이 열려야 땅의 것을 죽일 수 있음
하늘이 열려야 삶이 움직여짐
보세요. 여러분 베드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주를 따랐으되 자기 열심히 따랐습니다. 열심히 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베드로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을 통해서 자기 힘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자기의 그 모든 열심은 결국 주님을 그렇게 부인하는 결과 밖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해서 서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베드로로 하여금 베드로 되게 한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의 열심과 노력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서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그 어떤 선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만약 우리 속에 어떠한 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어떤 선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모든 자기 의를 철저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서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 말은 순간순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4.성령의 조명이 필수적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사는데에는 성령의 조명이 필수적입니다. 십자가에 의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공로를 순간순간 믿음으로 의지하여 서야 하는데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의 공로가 우리에게 산명하게 깨달아져야 우리는 그것을 의지하고 설 수 있습니다.